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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현대미술관, 그리고 백남준

by 자유 창조

K-POP, 세계적인 피아니스트들의 활약 그리고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으로 예술적 호황기를 맞고 있는 근래지만 1980년대까지만 해도 우리 예술가들이 세계적으로 알려지지 않았다. 그런 시기에 백남준 선생은 "미디어 아트"라는 독특한 장르를 창시하며 세계적인 이목을 우리나라에 집중시켰다.


고등학교 시절, 당시 미술 선생님은 실기 점수의 대부분을 미술관을 방문한 실적으로 할애하셨다. 수원에 살고 있었던 나로서는 토요일 오전 수업이 끝나면 지하철 1호선을 타고 종로를 다니며 수많은 갤러리를 찾아 들렀던 기억이 있다. 그때는 여간 귀찮지 않았는데 지나고 보면 팍팍한 수험생에게 비추는 따뜻한 햇살과도 같은 시간들이었다. 과천에 있는 국립현대미술관은 당시에 정말 깨끗하고 웅장하게 느껴졌었고 수많은 작품들을 한 번에 관람할 수 있어서 독특한 작품들을 찾던 나에게는 보물 같은 곳이었다.


그곳에 난 무려 30년 만에 재방문했다. 뭘 그렇게 바쁘게 살았는지 한번 올 생각을 하지 못했다. 30년이라는 시간이 짧으면 짧고 길다면 길지만 그땐 4호선을 타고 왔었고 지금은 자가용을 타고 온 차이가 있달까? 그곳에 미술관은 그때 그 자리에서 30년을 변함없이 앉아있었다. 다르다면 30년간 미술관 주변 나무들과 내가 자랐다는 것 밖에 없다. 그날 미술관은 1 원형전시장에서 뉴미디어 소장품 아더랜드 전과 3,4 전시장에서 한국 현대 도자공예를 전시 중이었다. 학생들과 노인들은 무료입장 가능하나 나머지는 아주 저렴한 가격에 유료 관람이니 방문하는 사람들은 참고하면 좋을 것 같다.




뉴미디어 소장품 전과 도자공예 전도 볼 만한 작품들이 너무 많아서 좋았지만 날 다시 30년 전 고등학생 시절로 되감기 한 작품은 백남준의 "다다익선"이라는 작품이다. 아마 내 또래의 중년들은 브라운관 TV가 탑처럼 쌓여 수많은 영상들을 송출하는 작품이라면 누구나 기억할 것이다. 30년 전에는 최신 TV를 저렇게나 많이 쌓아 올려 작품을 만든 기술에 대한 놀라움과 화려하게 상여되는 영상에 정신을 잃었던 기억이 있다. 하지만 중년이 된 지금 난 작가의 의도가 무엇인지 이 작품에서 말하고 하는 내용이 무엇인지 그 본질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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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은 1988년 서울 올림픽을 기념하여 철골구조에 당시 최첨단 삼성 브라운관 TV를 탑처럼 쌓아 올린 작품인데 재미있는 건 TV 개수다. 수가 총 1,003인데 개천절을 의미한다고 한다. 그만큼 서울 올림픽은 당시 우리나라에겐 급격한 경제성장의 결과물이었고 세계 속 대한민국을 열어 보여 자랑하고픈 의지가 컸다. 그런 의미에서 작가는 우리 민족의 발전을 축복하고자 이 작품을 제작했다고 생각한다.





작품명 "다다익선"은 한나라 시절 장수 한신의 고사에서 유래한 말이다. 많을수록 좋다는 의미인데 아마 작가는 분리하여 생각하던 동양의 철학과 서양의 기술문명을 융합하여 미래에 나아갈 방향을 제시한 게 아닌가 싶다. 아쉽게도 영상들은 요일제로 상영이 되어 방문한 날은 볼 수가 없었지만 고등학교 시절 영상의 기억들이 아직 남아있다. CRT 모니터의 노후로 인해 유지 보수의 문제가 있지 않을까 추측은 해본다. 이런 현상들을 보며 지금의 기술력으로 만들어간 또 다른 미디어아트 작품들은 수십 년 후 CRT 모니터와 같이 유지보수 문제가 또 발생할 것이다. 이는 미디어아트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어떻게 변화하고 유지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을 던진다. 이 또한 백남준 선생이 던진 또 다른 질문이 아닐까?


잊지 마세요. 오늘도 당신은 향기로울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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