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 1004 고욱 오빠에게
진해 봉안당에 오빠의 유골함이 있다지만 정말 그곳에 오빠가 있을까 의문이 들어. 올해 오빠를 그곳에 안치하고 나서부터 종종 든 생각이야. 오빠는 아무래도 종로의 길거리 구석구석이나 이태원 골목 굽이진 곳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을 것만 같아. 그래서 이따금 오빠가 그리워져 어디라도 찾아갈 곳을 떠올려 보자면
종로 포차에 앉아 맥주 한잔 마시고 오는 것이 나만의 추모의 방법일 수도 있겠다,
라는 생각이 자꾸 든다고 (봉안당에 편지 적은 포스트잇을 붙이고 오는 것을 오빠는 분명 더 좋아할 테지만).
남겨진 이들에게 친구의 죽음이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는 이유는 평생 그리움을 마음속에 넣어두고 살아야
한다는 거야. 가끔 심장 깨가 아파와서 정신의학과라도 가 약이라도 타 먹어야 하나,
이런 생각도 든다니까. 살다가 보면 친구도 잃고 상심도 느끼고 할 수 있는 것인데 오빠는 나와 우리들에게
그냥 친구가 아니었으니까. 우리의 마음속 타격은 커. 자전거를 타고 가다가도 떠올라.
내 친구 지갑에 있는 오빠 증명사진 볼 적만 해도 머리를 망치로 맞은 것 같았어.
코로나여서 종로 포차에 가지도 못한다. 내 그리움을 어떻게 해야 할지 도저히 감을 못 잡겠어.
그래서 이렇게 망자에게 편지를 보내봐. 나는 내 마음을 다스리기 위해서 살 거야. 브런치에 쓰는 이유는 내가 브런치 글을 오랫동안 올리지 않아서야. 저승의 하데스가 이 편지를 읽길 허락한다면 잘 읽고 답장은 말아줘. 얼마 전에 무당들 나오는 프로그램을 봤는데 죽은 사람 손은 가시손이래. 죽은 사람이 꿈에 나오면 안 좋다나 뭐라나. 잊을 수 없겠지만 다 잊어버려. 너무 서운하지만 내 이름 까먹어도 좋아. 그만큼 다 훌훌 털어버리고
안식을 얹으라는 말이야. 오빠를 생각하다 보면 나는 어쩔 수 없이 이 우주를 생각하게 돼. 죽음과 삶, 인간의 정신과 혼, 서로 간에 느끼는 연대, 마음이 가는 것들... 작은 고양이에게도 마음이라는 것은 존재하겠지. 내가 사랑하는 사무실 건물 길냥이가 내 무릎 위에 폴짝 올라 몸을 웅크리고 편안히 잠드려는 것을 보면 말이야...
울컥울컥 하는 복잡하고 다방면의 감정들을 느낄 때면 스스로 컨트롤하기가 어려워. 과호흡이 오고 정신이 아득해지는데 일종의 트라우마 같아. 당연하겠지만 트라우마는 과거로부터 오는 것이고 과거는 더 멀리 있는 과거까지 소환해 내. 그럼 나는 과거에 빠져버리고 마는 거야. 그 생각과 기억에 잠겨 있는 시간들이 유쾌하진
않아. 대부분이 기억에서 후회를 발견하거든. 그래도 잊고 싶진 않아. 후회는 내 일부가 됐어.
하루라도 빨리 전 세계에 퍼져있는 이 바이러스가 사그라들었으면 해. 그럼 나는 더운 날이 든 추운 날이든
그 등받이 없는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 금방이라도 무너져 내릴듯한 테이블에 손을 얹고 한 병에 5000원이나
하는 맥주를 주문하여 안줏거리를 먹으며 오빠가 보고 싶다고 주정이라도 할 텐데...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곤 몸을 웅크리고 시간이 지나가길 바라는 일 밖엔 없어.
그래도 내년 오빠 생일 즈음엔 봉안당에 들를게. 자주는 아니지만 간혹 들릴 거야.
그래야 다른 영혼들 사이에서 오빠 기가 죽지 않을 것 같아.
지긋지긋하게 오래오래 기억하고 싶은 사람. 그럼 이만 안녕.
Form. 두연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