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결국 사랑
나는 천재가 아니지만 이따금 천재들이 겪는 시련이나 아픔 같은 것들을 공감한다. 요컨대 천재들의 불안정함이라고 하면 이런 것들이 있지 않은가. 새파랗게 젊을 때 요절한다든가, 지독하게 가난하다던가, 가족과의 불화라든가, 어린 시절 트라우마나 결핍이라든가 그로 인해 얻은 정신병 같은 것들 말이다.
그런 것들은 어쩐지 천재의 존재를 더욱 흥미롭게 해 준다. 고통 속에서 피어난 천재성. 천재이기에 감내하는 고통. 그러다 아름다운 무언가를 세상에 놓고 파멸해버리는 죽어버리는 천재들. 그 천재들을 오래오래 칭송하는 사람들... 그리고... 죽어버리든 내내 살아있든 천재들의 비하인드 스토리엔 사랑이야기가 빠지지 않지.
일단 [뷰티풀 마인드]의 주인공은 친구도 없는 찐따다. 엘리트들이 모이는 대학원에 입학했지만 그 누군가와 정상적인 대화마저 불가능한 이 불쌍한 아웃사이더는 스스로의 망상으로 친구를 만들어 낸다. 스스로 만들어 낸 친구는 주인공에게 힘이 되는 말도 해주고 밥도 먹인다. 죽지 않게 돌봐주는 것이다. 그러다가 어느 날 찾아낸 균형이론으로 일약 학계의 스타덤에 오르고 승승장구한다. 승승장구만 하면 알아서 행복이 찾아올 텐데 이 망상병 환자는 또 다른 상상의 인물을 만들어낸다. 바로 정부의 비밀요원이다. 그 비밀요원은 주인공에게 소련의 암호를 해독하는 프로젝트에 투입시키고 그때부터 상상의 인물이 투입시킨 프로젝트를 푸는 삶이 시작된다. 풀어낸 암호를 전달하는 과정은 첩보영화를 방풀케한다. 스스로 셀프 고통을 받는 셈이다.
이 망상의 생활 속에서 주인공은 사랑에도 빠진다. 처음으로 진실된 진짜 인간이 그의 곁에 머문다. 결혼을 한 이후에도 그의 망상은 연장선이어서 망상의 프로젝트를 비밀리에 수행해야 하는데, 이로 인해 아내와 마찰까지 일어나고 만다. 후에 모든 사실을 알게 된 (남편이 정신병을 앓고 있다는 것을) 아내는 그를 떠나지 않고 끝까지 보살펴준다. 주인공은 고통스러운 전기치료와 약물치료를 받으며 망상이 조금 줄어들지만, 그의 천재성의 불씨는 꺼져간다. 한순간에 매력이 확 떨어지는 보통 사람이 된 것이다. 돈까지 벌어오지 못하니 아내는 지쳐간다. 한순간에 짐짝 같은 인생이 시작된다. 바보가 된 남편에 우는 갓난아이. 아찔하다. 그를 진작에 떠나지 못한 것을 아내는 무수히 후회했을지도 모른다. 삶은 거대하고 현실은 냉혹하기에.
하지만 사랑의 힘은 위대하다. 뻔하면서도 사실이다. 로맨틱만이 사랑이 아니지 않는가. 아내는 주인공의 삶을 묵묵히 돕는다. 주인공은 예전에 다니던 대학원 도서관에 매일 나가, 공부하고 연구한다. 천재성은 흐려졌지만 꾸준하니 상황은 나아진다. 결말에 희망이 보인다. 그 와중에도 상상 속 인물들은 주인공 곁에 머물며 괴롭힌다. 무수히 말을 걸고 무수히 쓰러지기를 고대한다. 스스로 병을 자각한 순간부터는 더욱 힘들어진다. 망상 속 인물들은 끝까지 그의 정신에서 살아남겠다는 듯 아우성이다.
하지만 이 영화는 그리 부정적인 영화가 아니다. 사랑의 힘으로 시련을 극복하는 영화다. 주인공은 끈질기게 성실하다. 매일 도서관에 나가 연구하니 결국 세상을 뒤집는 이론을 만들어 낸다. 그리고 그를 축하하는 자리 단상에 올라 아내에게 고백한다. 오로지 당신 덕분에 내가 이 자리까지 왔다고.
이건 천재에 대한 영화라기 보다 끈질기게 성실할 수 있게 도와준 끈질긴 사랑에 대한 영화다. 노인이 되어버린 주인공과 아내의 뒷모습에 내가 다 그 세월을 산 것 같다. 나의 불안전함을 견뎌내고 묵묵히 옆에 있어주는 사람이 있다는 건 눈물 나게 고마운 일이다. 인생에 그러한 사람이 옆에 있다는 건 엄청난 행운을 손에 거머쥔 채 사는 것이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