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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두연 May 11. 2021

[짧은 글] 서울의 밤

조계사를 다녀오며


정만씨는 귀여운 티셔츠 사 입는 걸 좋아했으며 매일 전자담배를 폈다. 나는 늘 오빠 담배 좀 작작 피우라고 하면서도 같이 술을 마실 일이 생기면 슬쩍 옆으로 가 한 개비 꺼내 피곤했다. 그는 꼭 전자담배를 옆으로 물며 여유가 있는 한쪽 입술로 연기를 뿜어대고는 실없는 소릴 했다. 대부분 조용한 흡연시간을 즐겁게 만들어 주려는 배려와 유머였다. 정만씨 머리는 늘 단정되어 있었으며 주로 짧은 아이비리그컷을 했고 종종 옆머리 파마를 했다. 잘 깎여진 그의 옆머리와 조금의 왁스로 멋을 낸 앞머리를 보고 있자면 마음이 정갈해지기까지 했다. 한편으로는 저게 다 돈인데. 오빠의 주머니 사정이 걱정되기도 하면서 말이다.


그는 아주 술꾼이었는데 술고래 스타일이 아닌, 누군가를 만나고 이야기 나누며 한잔 하는 술을 즐겼다. 간혹 혼자서 먹을  일이 생길 때는 곁들일 맛난 안주를 준비해 야무지게도 먹었다. 하여간에 부지런하게도 술과 담배를 진정으로 즐긴 호인이다. 그러다가 어느 날은 너무 취해버리면 친구들에게 사랑한다며 메시지를 보냈고 카카오톡 창을 오타로 가득 채운 적도 있었다. 정말 귀엽고 속 터지는 사람이었다.


인권이니 정치니 하는 조금 어려운 주제들은 그와 맞지 않았다. 그는 세상을 아름답고 좋은 것은 더욱 좋게만 바라보고 싶었으므로. 꽃과 나비가 일렁이는 세계를 구축하고 그 안에서 즐기며 재밌게 한 생 살아보려 노력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세상은 역시 그리 유순하지도, 우릴 위하는 것들이 그리 많지도 않았다. 하지만 그를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이라면 느꼈을 것이다. 그는 범상치 않다는 것을. 그는 범상치 않게 유별났고 범상치 않게 귀여웠다. 미움과 혐오가 떡칠된 세상에서 어쩌라고~ 내가 젤 귀여워! 를 외칠 수 있는 그가 밉지도 모자라 보이지도 않았다. 유쾌함은 종종 거대한 것들을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만들어버리니까. 우리는 각자 좋아하는 것들을 위해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었다. 


조계사 극락전에서 그의 극락왕생을 비는 기도가 한창이다. 신발을 벗고 들어가 무릎을 꿇었다. 이 삶에 대한 미련과 원망 아쉬움 분노 안타까움 내가 다 가져갈게. 오빠는 부처의 도움을 받아 미타찰에 도달해. 그곳은 고통이 없는 완전한 곳. 마음의 짐은 산 사람들의 몫이지. 스님이 기도를 읊고 쌓여있는 쌀가마니가 빛나는 극락전. 부처가 두루 살피는 그곳에서 부처님께 머리를 조아렸다. 제발 우리 오빠 잘 좀 봐주십시오. 잘 좀 봐주십시오. 극락에 무사히 도달하게 좀 봐주십시오. 술도 담배도 못 피우는 망자를 불쌍하게 여겨주십시오. 


조계사 기도가 끝나고 우리는 종로 포차로 자리를 옮겨 한잔 했다. 저녁 10시 영업제한이 있었던 터라 빨리 먹고 빨리 취했다. 모두가 오빠를 그리워하는 말 한마디씩을 했다. 그러고선 이따금 지나가는 귀여운 남자애들을 보며 오빠가 참 좋아했을 텐데 바보같은 정만씨... 개똥 밭이 최고라우. 취해서 도착한 게스트 하우스 천장이 빙빙 돌았다. 다시는 이렇게 마시지 말아야지. 그 맛있는 모둠전을 이제 오빠는 못 먹지. 그 좋아하던 소주 내가 마시고 내가 취했다. 내일은 또 친구들을 만나야지. 화장도 하고 멋쟁이처럼 입고 나가야지. 해장으로는 국밥 한그릇 사먹고 지하철을 타고... 서울의 밤이 빙빙 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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