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드윅>을 보고
찌질의 역사를 써본 사람들은 안다. 그날을 회상하면서 '도대체 내가 왜 그랬지!!'하며 진절머리를 치지만, 솔직히 그때로 돌아가더라도 똑같이 행동할 거라는 사실을. 2010년 대학생이 된 나는 대한민국 스무 살이 할 수 있는 가장 흔한 방법으로 첫 연애를 했었다. 동아리에서 만난 친구와 1년 조금 넘는 시간을 사귀기 시작해 무엇 때문인지 기억도 안 나는 이유로 싸우다가 이별했다. 그리고 자그마치 6년에 걸친 대 집착의 시대가 시작되었다.
술에 취해 문자하고, 전화하고, 찾아가고 울고불고. 무엇이든 생각나는 대로 던져보시라! 그중에 내가 하지 않은 것을 고르는 것이 더 빠를지도 모른다. 이별한 지 2년이 지난 뒤에도 그 친구가 제대했다는 소식 한 번에 당시 만나고 있던 남자친구와 헤어져 버리거나, 그 친구가 새로운 연애를 시작했다는 말을 들으면 '그 애랑 헤어지면 나한테 연락해'라는 문자를 남기기도 했다. 그런 무시무시한 용기는 어디서 났는지, 생각할수록 아찔하다. 그 이후에도 간간이 연락이 닿을 때마다 놀랍도록 쉽게 흔들리는 마음을 어쩔 수가 없었다.
그 친구 다음으로 만났던 사람들과의 연애는 참 쉽게 느껴졌다. 정확하게는 이별이 쉬웠다. 그때 연애의 목적은 첫사랑을 대체할 누군가를 만나는 일이었으니까. 그 불가능한 관계는 항상 어디로도 흘러가지 못한 채 고여있다가 바닥을 드러내며 끝이 나곤 했다. 관계의 바닥에서 도돌이표처럼 마주했던 것들은 첫사랑의 추억, 처음이기 때문에 더 소중했던 순간들. 그리고 살면서 처음으로 받아본 무조건적인 타인의 애정이었다.
아니, 그렇게 믿었다고 하는 편이 맞는 말일 것이다.
소모적인 관계가 끝나고 어떤 갈증을 느낄 때마다 의식처럼 <헤드윅>을 봤다. 헤드윅의 인생은 사랑을 찾아 온전해지기 위한 여정의 연속이었다. 그는 첫 남자친구 루터와 함께하기 위해 여자가 되는 선택을 바쳤고, 새로운 사랑 토미에게는 본인의 유일한 위로였던 '음악'이라는 세계를 나누어줬다. 그러나 그 모든 관계의 끝에 헤드윅은 언제나 혼자 남겨졌다.
신의 장난으로 둘로 쪼개진 인간, 그리고 다시 하나가 되기 위해 평생을 방황하며 살아간다는 내용의 헤드윅의 사운드트랙 'Origin of love'는 아주 쉽게 내 인생 테마곡이 되었다.
헤드윅이 그토록 토미를 쫓아다닌 이유는 단순히 본인 노래의 저작권을 인정받는 문제 따위가 아니다. '반쪽'이라고 믿었던 사람에게 존재 자체를 부정당한다면 어느 누가 견딜 수 있을까. 헤드윅은 토미가 당장 돌아와 '반쪽'의 자리를 채우기를, 자신을 버리고 도망친 것에 대한 사죄의 말을 하기를 바랐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그토록 갈망하던 토미와의 재회에서 사실 자신이 찾고 있는 '반쪽'은 이 세상에 없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했다.
헤드윅은 애써 외면하던 불완전한 모양의 자신을 받아들였다. 영화의 끝에 벌거벗은 채 어둠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헤드윅의 뒷모습을 보면서, 여전히 그가 사랑을 찾기 위해 노력하며 사는 모습을 상상해보았다. 그리고 이제는 온전한 자기 모습으로 서로가 서로를 채우는 사랑을 하게 되길 바랐다.
나는 이별이 쉬운 이유를 ‘상대방이 충분한 사랑을 주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 밑 빠진 마음은 첫사랑이 혹여나 돌아왔더라도 채울 수 없었을 것이다. 자기 자신에게 줄 사랑이 없는 사람은 남이 주는 사랑도 온전히 받을 수 없다.
헤드윅이 온전하지 못한 자기 모습을 받아들인 것처럼, 나는 가난하고 초라한 마음을 마주하는 중이다. 마지막 연애를 끝내면서 다시는 이별이 쉬운 만남을 하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그래서 다른 사람이 알아주기를 바라던 마음을 스스로 들여다보는 연습을 한다. 서로 나눌 수 있는 사랑을 하기 위해서. 그러다 보면, 헤드윅을 보면서 위로받던 날들이 아득해지는 순간도 오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