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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느린 위로 Nov 06. 2016

표백

하얀 도화지 위에 우리는 무엇을 더 어떻게


두 번째로 읽은 장강명의 소설이다.


장강명은 <그믐, 또는 당신이 세계를 기억하는 방식(이하 '그믐')>으로 처음 만났다. 글은 빠르게 읽혔고, 읽는 틈틈이 숨이 막혔다. 날카로운 유리 조각 같은 등장인물들과 그들의 대사 때문에.


그를 얼마간 잊고 있다가, 본격적으로 '책 일기'를 써보리라 다짐한 이번에 <표백>이란 책으로 다시 만났다. 무심코 책날개를 보다 두 소설을 쓴 인물이 동일인이라는 것을 인지했다. 책을 읽으며, 아 나는 앞으로 이 작가의 팬이 되겠구나, 싶었다.


  그런데 이제 나는 세상이 아주 흰색이라고 생각해. 너무너무 완벽해서 내가 더 보탤 것이 없는 흰색. 어떤 아이디어를 내더라도 이미 그보다 더 위대한 사상이 전에 나온 적이 있고, 어떤 문제점을 지적해도 그에 대한 답이 이미 있는, 그런 끝없이 흰 그림이야. 그런 세상에서 큰 틀의 획기적인 진보는 더 이상 없어. 그러니 우리도 세상의 획기적인 발전에 보탤 수 있는 게 없지. 누군가 밑그림을 그린 설계도를 따라 개선될 일은 많겠지만 그런 건 행동 대장들이 할 일이지. 참 완벽하고 시시한 세상이지 않니? _77p


소설을 관통하는 세연의 사상은 놀랍다. 단순히 "미쳤다"고 간주하기에는 꽤 논리적이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미친 것이 세상인지 그녀인지 분간하기 어려웠다. 그녀의 선택이 극단적인 것은 분명하지만, 용감해 보인다고 말하면 잘못된 것일까? 슬펐다. 소설에서 묘사하고 있는 세상이 내가 두발 간신히 딛고 있는 곳과 일치해보였기 때문이다.




패배가 만연한 시대.


세연에 따르면 (그리고 실제로도) 현재는 자유민주주의와 수정자본주의가 결합된 시대다. 이 새하얀 시대에서 '위대한 일을 할 기회를 박탈당한 세대'는 그 결과 '출세나 개인적인 성공과 같은 보다 작은 성취에 매달리게 된다.'

자유민주주의의 척도 아래 '군대를 일으켜 무공을 세우는 일은 어긋나며', 독재자나 범죄자가 될 수도 없다. 한편 '수정자본주의는 시장 가치를 바탕으로 하는 평가 척도를 한 가지만' 갖고 있기 때문에 이 시대에서 한 인간의 가치를 재는 방법은 '그 사람이 얼마나 높은 시장 가치를 갖고 있는가'가 된다.

따라서 '완성된 사회에서 표백 세대의 젊은이는 부에 대한 욕심이 크지 않더라도 자신의 능력과 야망을 증명하려면 돈을 버는 경쟁에 뛰어들어야 한다.'

이 대목에서 나는 무릎을 쳤다. 내가 심각하게 고민해오던 부분과 맞닿아 있었기 때문이다. 망할 그 돈이 대체 뭐길래 싶다가도, 어쨌거나 나의 능력과 야망을 증명하려면 돈을 버는 경쟁에 뛰어들어야 하는 엿 같은 세상.


  나는 그런 세상을 '그레이트 빅 화이트 월드'라고 불러. 그레이트 빅 화이트 월드에서 야심 있는 젊은이들은 위대한 좌절에 휩싸이게 되지. 여기서 우리가 해야 하는 일은 우리 자신이 품고 있던 질문을 재빨리 정답으로 대체하는 거야. 누가 빨리 책에서 정답을 읽어서 체화하느냐의 싸움이지. 나는 그 과정을 '표백'이라고 불러. _78p


나는 꽤 좋은 대학에 입학했고, 무난히 졸업하여 취업 전선에 뛰어들었다. 그렇게 들어간 첫 짓장에서 많이 벌지는 못했지만 내 힘으로 돈을 번다는 사실에 행복했다. 거기서 만족했어야 했다. 더 많은 돈을 벌고 싶었던 나는 별다른 대책도 없이 회사를 관뒀고, 그 뒤로 철저히 고통받았다.

'돈을 얼마나 많이 버느냐를 놓고 벌이는 시합에서도 표백 세대는 좌절할 수밖에 없다. 완성된 사회는 가능성이 그만큼 고갈된 사회기 때문에, ... 표백 세대들은 아주 적은 양의 부를 차지하기 위해 이전 세대들과는 비교도 안 되는 경쟁을 치러야 하며, 그들에게 열린 가능성은 사회가 완성되기 전 패기 있는 구성원들이 기대할 수 있었던 비하면 아주 하찮은 것에 불과하다.'

이제와 생각해보면, 내 고통은 이길 수 없는 시합에서 이기려고 했기 때문에 야기된 것이었다. 게다가 나는 표백 세대의 경쟁에 적합한 사람도 아니다. 그런 내가 어찌어찌 참가할 수 있었던 경기 종목에서 자진 탈퇴를 선언하고, 다른 종목에 뛰어들었으니. 그 선택의 결과는 끔찍하고 살벌했다.




<표백>을 덮으며 자문해본다. 내가 그레이트 빅 화이트 월드에서 자살하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마음 같아서는 도화지를 찢고, 구기고, 마음대로 색칠하고 싶다. 그러나 현재의 내겐 그럴만한 여력이 없다. 체력적, 정신적, 그리고 경제적으로도.

그렇다면 하찮은 가능성일지라도 만족하는 법을 배우면 어떨까. 혹자는 체념이라 할지도 모르겠으나 어쩌겠는가? 나는 비겁하게도 살아야겠다.

부끄럽지만 이런 패잔병의 모습으로라도 돌아가려 한다. 과거에 참가할 수 있었던 경기의 리그로. 어쨌거나 돈은 벌어야 한다면, 기왕이면 그곳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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