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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느린 위로 Oct 19. 2017

우울의 정체 2

보고 싶어도 볼 수 없는 사람이 생기는 것은 얼마나 슬픈 일인지


    불쑥 찾아온 우울을 견딜 수 없어 그저 울기만 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때,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커져 버린 우울감은 나를 처절하게 무너뜨렸다. 자존감이나 자긍심 같은 말은 당시의 내겐 사어(死語)에 불과했다. 나는 그때 오로지 '시간'만을 내 편으로 둔 채 외로이 겨울을 났고, 꽤 많은 시간이 흐른 뒤 상처는 아물었다. 상처가 아문 자리 뒤편에는 아직 완전히 치유되지 못한 우울감이 늘 자리하고 있었다. 그 우울은 내게 안 좋은 일들이 생길 때마다 쓰나미처럼 몰아쳐 나를 덮치곤 했다.

    할머니의 알츠하이머 진단 소식을 접한 뒤 나는 한참을 울었다. 누군가가 나의 존재를 완전히 잊을 수 있다는 사실이 믿기 어려울 정도로 슬펐다. 나는 몇 날 며칠을 술로 지새웠고, 결국 몸이 견디질 못해 병이 났다. 그렇게 비틀대던 무렵, 나는 나와 너무도 닮은 사람을 우연히 만났다. 그는 부서질 듯 야윈 몸에서 짙은 우울감을 뿜어내고 있었다. 함께 미래를 약속했던 여자친구와 이별한 지 이제 겨우 한 달이 되었다고 고백한 그는, 슬픈 눈망울로 나를 사로잡았다.

    그가 나를 데리고 간 바(Bar)는 웬만해선 쉽게 찾을 수 없는 비밀 아지트 같은 곳이었다. 그와 나는 한꺼번에 이런저런 이야기를 쏟아내었고, 나는 그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그가 하려는 말을 직감했다. 더 없이 말이 잘 통한다는 느낌을 받은 나는, 어느새 그 밤이 끝나지 않기를 바라고 있었다. 그는 발걸음이 다소 느렸고, 말투는 상냥했다. 나는 마치 악마에게 홀린 양 그에게 완전히 매혹되었다. 처음 보는 사람에게 그토록 강렬한 감정을 느낀 것은 처음이었다. 얼마간의 시간이 흐른 뒤, 그는 오래 참았다는 듯 약봉지를 꺼내 들었다. 알고 보니 그는 조울증을 앓고 있었다. 함께 있을 땐 몰랐지만, 나중에 듣고 보니 상당히 불안정한 심리 상태에 빠졌던 적도 있었던 듯했다.

    그와 하룻밤을 보낸 뒤 나는 할머니를 뵈러 고향으로 내려갔다. 예상치도 못한 전개에 나는 조금 들떴던 것도 같다. 할머니를 뵙고 올라오는 길에 그에게서 연락이 왔다. 만나자는 문자였다. 그의 문자 이후, 나는 아직도 그 경위를 알 수 없는 사건에 휘말리게 된다. KTX에서 내려 집에 오는 길에 수상한 여자의 목소리가 계속해서 나를 따라다니고 있음을 인지했다. 택시를 잡기 위해 짐을 들고 서 있는데, 그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거 쟤 엄마 꺼 아냐? 엄마가 골프 치나 보네. 얘 취향은 아닌 것 같은데?" 나는 환청을 들었나 싶을 정도로 놀라 그녀를 돌아봤다. 처음 보는 사람에게 너무도 무례하게 구는 그녀가 몹시도 싫었던 나머지, 나는 택시 문을 쾅 하고 닫았다.

    나는 집으로 곧바로 향했다. 그런데 그녀의 목소리가 택시에서 내리고 난 뒤에도 들렸다. 나는 그녀가 나를 따라오고 있다고 믿었고, 집 앞 현관문에서 바로 집으로 들어가지 않고 그녀를 기다렸다. 그녀는 나를 따라오다가 "대박, 저 애 문 앞에 있어"라고 말했다. 어쩌면 집으로 가는 방향이 같았을 수도 있다. 어찌 되었건 그녀 때문에 나는 무척 불쾌했고, 집에 들어가서 한참을 씩씩거렸다. 그때 그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집 앞으로 오겠다는 전화였다. 나는 불쾌한 마음을 진정시키고 그를 만나러 나갔다. 정말 어이가 없는 사건은 그 이후에 일어났다.

    그는 나를 보면 마치 과거의 자신을 보는 것 같다는 말만 남긴 채, 그 밤을 마지막으로 사라져버렸다. 그는 내게 조울증이 의심된다고 했다. 내가 걱정된다며, 꼭 병원에 가보라는 말도 함께였다. 또, 자신은 그다지 좋은 사람이 못 된다고 했다. 요즘의 인생에 있어 더 이상의 드라마를 원하지 않는다고도 말했다. 간단히 말해, 남자친구가 있는 나와 복잡하게 엮이는 게 싫다는 거였다. 어쩌면 그는 전형적인 나쁜 남자인데, 내가 눈치를 채지 못한 걸지도 모른다. 그는 자신이 조울증을 갖게 된 계기가 첫 연애의 실패라고 말했다. 나는 첫사랑의 아픔을 똑같이 겪은 그에게 동질감을 느꼈다. 나는 그를 꼭 안아주었고, 우리는 그렇게 헤어졌다.

    그의 갑작스러운 연락 두절에 나는 중심을 잃고 휘청거렸다. 평생의 소울메이트를 잃기라도 한 양, 나는 울고 싶은 마음이 되었다. 정말 그가 떠난 것인지, 이미 자취를 감춘 그의 빈 자리를 몇 번이고 확인했다. 그는 내게 어울리는 칵테일을 직접 추천해줄 정도로 친절했다. 좋아하는 음악 리스트도 공유했다. 무엇보다도 섬세하고 부드럽게 대화가 이어졌다. 그 모든 조각이 그의 존재를 증명하고 있는데, 나는 무엇을 놓쳤기에 그를 잃게 된 걸까. 슬펐다. 그러나 그와 함께 공유한 그 짧은 하룻밤이 이후에 겪게 된 모든 아픔을 상쇄시킬 만큼 아름다운 것이었음은 틀림없다. 나는 당시 사귀고 있던 남자친구에게 바로 다음 날 이별을 고할 정도로 그에게 빠져 있었다. 그러니 그는 죄가 없다. 너무나도 쉽게 사랑에 빠져버린 나를 탓할 수밖에.

    운명과도 같다고 생각했던 만남이 그저 스치듯 지나 가버린 인연이 되자, 나는 또다시 우울이라는 마음의 병을 앓게 되었다. 감정은 한곳에 머무르지 못하고 방황을 거듭했고, 마음은 갈기갈기 찢긴 채 너덜거렸다. 쇠약해질 대로 쇠약해진 이후에는 환청까지 들렸다. 보고 싶어도 볼 수 없는 사람이 생기는 것은 얼마나 슬픈 일인지. 나는 나를 둘러싼 세계가 하나의 스테이지가 되어 나를 공격하는 느낌을 받았다. 좀 더 상세히 당시의 상태를 서술하자면 다음과 같다. 나는 길 위에 떨어져 있는 음료 캔을 보고, 누군가 내게 그 음료를 먹고 싶은지 묻고 있다고 여겼다. 그래서 나는 "아니"라고 실제로 웅얼거렸다. 눈에 띄는 모든 간판이 내게 말을 걸기 시작했고, 나는 결국 "그만!"이라고 소리를 질러야 했다. 정말 그가 말한 대로 조울증에다, 조현증 증상까지 덮친 것이다.

    다음 날 아침, 결국 회사에서 일찍 조퇴한 나는 집에 가서 쉬기로 했다. 집으로 가는 길도 내내 환청이 들려 진땀을 뺐다. 집에 가면 누군가가 - 가능하면 그가 - 와 있을 것 같다는 착각에 사로잡히기도 했다. 환청도 환청이지만, 이상하게도 자꾸만 누군가가 나를 미행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집에 도착한 나는 곧바로 침대에 누워 끙끙 앓았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오른쪽 옆구리까지 찌르듯 아팠다. 옆집에서 들리는 소리부터 밖에서 나는 소리까지 모든 소리가 잠자리에 들려는 나를 공격했다. 나는 결국 세브란스 병원 응급실로 향했고, 거기에서 극심한 조울증이라는 진단을 받게 된다.

    어쩌다가 이야기가 여기까지 온 건지 모르겠다. 분명한 건, 내게 찾아온 조울증에는 어느 날 문득 나타났다 홀연히 사라진 그의 영향이 컸다는 점이다. 처음에 나는 그를 무척 원망했다. 한편으론 그가 동정심에라도 내게 다시 얼굴을 비춰주길 바랐다. 나는 그를 탓했고, 그는 그런 내가 부담스러웠는지 나를 차단해버렸다. 이제 어떤 방법을 써도 다시 그를 불러낼 방법이 없다. 지금에 와선 구차하게 불러내고 싶은 마음도 없다. 그저 홀로 오롯이 견뎌내야 하는 이 우울의 시간이 안타까울 뿐이다.

    조울증은 길게는 1~2년의 투약 기간을 거쳐야 할 정도로 끈질긴 정신적 질병이다. 나는 우울을 제대로 다스리지 못해 이 병을 얻게 되었다. 남들보다 민감한 감정의 레이더를 가진 나는 항상 조심할 필요가 있다. 누군가에게 마음을 허락하는 문제에 있어선 특히 그렇다. 또, 내 병이 완전히 낫기 위해서는 누구의 탓도 해서는 안 된다. 누군가에게 책임이 있다면,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에게 너무도 쉽게 마음을 줘 버린 내가 그 책임을 물어야 할 것이다. 우울의 정체는 내가 그것을 온전히 마주하고 인지하게 되었을 때 옅어진다. 우울의 정체를 직시하고 나면, 이길 수 없는 우울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것을 깨닫기 위해, 나는 그렇게도 아팠나 보다.

    요즘 나의 기도 제목은 "사랑하는 사람이 제 눈앞에 나타나게 해주시고, 제가 그를 알아볼 수 있도록 해주소서"다. 기도처럼, 이제 다시는 사랑에 실패하는 일이 없기를 바란다. 아니, 사랑에 실패하더라도 그 우울함에 잠식되지 않을 자신이 있기에 괜찮다. 나는 오늘 이렇게 또 하나를 배운다. 직접 경험하지 않고는 알 수 없는 소중한 지혜들이다. 내 눈앞에 진정한 사랑이 나타났을 때, 겁 없이 뛰어들 수 있기를. 혹여 너무 쉽게 마음을 줘서 다치지 않기를. 다치더라도 그것을 발판 삼아 더 강한 내가 될 수 있기를. 오늘의 내가 내일의 나를 위해,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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