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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은한 온도 Mar 09. 2024

이름 없는 소녀의 마음이 나의 마음이었다.

<당신 옆을 스쳐간 그 소녀의 이름은> 최진영 作 을 읽고.



* 이 글에는 책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최근 최진영 작가의 <구의 증명>을 정말 재밌게 읽었습니다. 지인에게 책에 대한 감상을 이야기하자 다른 작품을 읽어보라는 추천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밀리의 서재에 '최진영'을 검색해 보았습니다.



그중 눈에 띄는 책이 있었습니다. 이름이 좀 길었지만 책 표지에 있는 소녀의 모습이 심상치가 않더군요.



아니나 다를까, 애들 재우고 캄캄한 침실에서 모조리 다 읽어 버렸습니다.



정말.. 구의 증명도 그러시더니 최진영 작가님 저한테 왜 이러시죠..?



책을 다 읽은 지 한 달 넘게 지났는데도 계속해서 제 마음에 이름 없는 그 소녀가 왔다 갑니다. 구의 증명 속 주인공들은 점점 옅어지는데 이 소설 속 주인공은 점점 짙어져만 갔습니다.



이 책이 절절하게 갖고 싶어 서점 가서 종이책도 구매하였습니다. 그리고 끝내 감상을 남기기로 했습니다.







이 책은 작가님의 첫 장편소설이자 제15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입니다.



개정판에 쓰인 작가의 말에는 이 책을 쓰지 않았다면, 작가님이 쓰는 존재로 살지 않았을 것이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그만큼 이 작품이 지금의 작가님을 있게 한 작품이라 할 수 있습니다.



와... 첫 장편소설에 이런 작품을 쓰시다니... 작가님.. 천재 아니십니까? 작가님의 책들이 계속해서 제 마음을 두드리고 있다고요!



언젠가 저자와의 만남이나 사인 전이 열린다면 작가님을 뵈러 발 벗고 찾아가고 싶은 충동이 들었습니다.



서두에도 밝혔듯이 저는 이 책의 첫 문장을 읽자마자 이미 책 속으로 빨려 들어가 버렸습니다.




내 이름은 언나다.
황금 다방 언니들은 나를 그렇게 부른다.
언나 이전의 이름은 이년 아니면 저년이었다.




제가 대체 뭘 읽은 것일까요?



저는 처음에 언나, 이년, 저년이란 호칭이 소녀를 하찮게 부르는 말인 줄만 알았습니다. 하지만 소녀는 실제로 이름이 없었습니다.



이름이 없는 사람이라니... 저는 태어나서 단 한 번도 '이름이 없는 사람이 있다'라는 생각을 해보지 못했습니다. 심지어 그간 숱하게 아동학대를 다룬 영화나 드라마를 봐왔었음에도 이름이 없는 아이가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을 미처 하지 못했었습니다.



이윽고 최근에 읽은 기사가 떠올랐습니다. 출생 미신고 아동이 무려 2000여 명이 넘는다는 기사였습니다.



출생신고가 되어있지 않으니 그들의 이름도 존재도 모두 이 세상에서 흔적이 없는 셈이었습니다.



책이 점점 진행될수록 기사의 활자로만 읽혔던 어떤 소녀가 생생한 사람이 되어 제 눈앞에 나타난 기분이 들었습니다.




네이버 기사검색 '한겨레' 기사 일부 캡처





다시 돌아와 이 책은 이름 없는 소녀의 여정을 다루고 있습니다. 이름 없는 소녀는 출생신고가 되어있지 않았기 때문에 나이가 정확하지 않습니다. 그저 가슴 밋밋한 10살 정도쯤부터 첫 생리를 하는 13~14살 정도라 추정할 뿐입니다.



이름 없는 소녀는 아빠, 엄마로부터 학대당하고 방치당합니다. 책의 초입에서 이름 없는 소녀는 이런 부모가 자신의 진짜 부모가 아닐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집이 아닌 근처 다방을 전전하다가 결국 자신의 진짜 엄마를 찾기 위해 동네 밖으로 뛰쳐나오게 됩니다.



이름 없는 소녀는 진짜 엄마를 찾으러 가는 여정에서 여러 사람을 만납니다. 처음에는 황금 다방의 장미 언니, 식당 할머니, 폐가의 남자, 각설이패의 삼촌들, 마지막으로 또래 여자아이인 유미와 나리도 만납니다.



이름 없는 소녀는 사람들을 만나며 자신의 시선으로 그들의 삶을 생생하게 쫓아갑니다.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 어른들의 행동을 보면서 스스로 질문을 던지기도 하고 스스로 답을 내리기도 합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름 없는 소녀는 자신이 정을 주었던 어른들에게서 계속해서 버려집니다. 정을 주지 않으려 노력하지만 어디 삶이 그러한가요. 어느새 많은 것을 어른들에게 주었지만 어른들에게 준 만큼 동일하게 받지는 못하였습니다.



이름 없는 소녀가 마음을 내어 준 자리에는 구멍이 생겼습니다. 어른들에게 버려질수록 그 구멍의 개수가 늘어갔습니다. 이별이 반복될수록 이름 없는 소녀의 마음은 어느덧 온통 구멍으로 뒤덮여 있었습니다.  그렇게 이름 없는 소녀는 부서져버렸습니다.








저는 이 책을 읽으며 여러 가지 감정들에 봉착했습니다. 특히 소녀의 가장 깊숙한 속 마음을 마주할 때마다 퍽 많은 공감을 했습니다.  



왜냐하면 저도 이름 없는 소녀처럼 가정폭력이 있는 집에서 자랐기 때문이었습니다. 소녀가 쏟아내는 물음들과 생각들 중 상당수가 저도 딱 그 나이 정도에 떠올렸던 생각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읽는 내내 슬프고 안타까웠습니다. 너무나 절실히 소녀의 마음에 공감했기에 소녀가 점점 부서질 때마다 제 마음 어딘가도 가루가 되어 흩날리는 기분이었습니다.



어린아이였기 때문에 생각의 한계가 있었고 그 한계가 부딫히는 시점에 꼭 사달이 났습니다.



저 소녀를 끝까지 데려갈 어른이 단 한 명이라도 있었더라면... 소녀가 저렇게까지 부서지지는 않았을 텐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쩌면 저렇게 부서지는 사람이 '과거의 나' 였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이 책은 픽션이 아니라 다큐 같았습니다.





하지만 한 편으로는 어른들의 마음도 충분히 이해가 됐습니다. 모두 소녀처럼 자신의 불행 속에서 사는 사람들이라 그 어른들 또한 여력이 없었습니다. 좋은 마음으로 소녀를 챙겼지만 그래봤자 결국 다른 사람의 자식이었습니다. 냉정하게 생각한다면 그 어른들도 이름 없는 소녀의 부모가 아니었기에 그 소녀를 끝까지 책임져야 할 의무가 있는 것은 아니었지요.   



저는 사실, 어른들이 이름 없는 소녀를 그마만큼 챙긴 것도 그 소녀에게 나름 최선을 다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제 커버린 저는 어른들의 상황과 마음 또한 전부 이해가 갔습니다. 양쪽의 마음을 전부 이해했기에 책을 읽으며 제 마음이 오도 가도 못하고 그 사이에 꽉 끼어 동동거렸습니다.



어른들의 상황을 전부 다 이해할 수 없는 어린아이와 돕고 싶어도 여력이 없던 어른들의 어긋남을 바라보는 게 안타깝다 못해 쓰렸습니다.








마지막으로 저는 읽는 내내 슬프고도 감사했습니다. 까딱하면 나도 저 이름 없는 소녀처럼 될 수도 있지 않았을까라는 생각과 더불어 내가 이름 없는 소녀처럼 되지 않아 정말 다행이라는 생각이 얼기설기 섞여 제 안에 떠돌았습니다.



결과적으로 저는 이름 없는 소녀보다는 훨씬 운이 좋았습니다. 저를 끝까지 책임진 엄마가 있었으니까요. 그래서 저는 지금 그들보다는 안락한 인생을 살고 있으니까요.



하지만 기사 속에 행방을 모르는 2000여 명의 아이들을 보면서, 제 옆을 스쳐갔을 수도 있는 이름 없는 소녀를 보면서 저는 마음에 어떤 부채감이 생겼습니다.  



이 부채감을 어떻게 해소해야 할지는 아직은 잘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그 부채감이 저를 끌어내 이렇게 글을 쓰게 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느새 이 책은 제 마음 한편에 깊숙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꽤 오랜시간동안 자리할 것 같 기분입니다.



궁금합니다. 이름 없는 소녀의 지금 마음은 어떤지.



분노에 가득 찼지만 역시나 아이처럼 순진했던, 너무나 사랑받고 싶어서 갑옷을 둘렀던 그 이름 없는 소녀가 이제는 편안함에 이르렀기를 바라고 또 바라봅니다.



다소 불운한 어린 시절을 겪었다 생각하시는 분들, 아동학대나 버려지는 아이들에 대해 관심이 있으신 분들, 어떤 가엾은 어린아이의 성장 여정을 지켜보고 싶으신 분들에게 이 책을 추천드립니다.



오늘도 은은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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