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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은한 온도 Feb 08. 2024

난 물욕이 없는 사람인데 어째서 맥시멀이 되었을까?

<이 많은 짐은 다 어디서 왔을까> 영글음 작. 을 읽고.

저는 딱히 물욕이 없는 사람입니다. 꼭 필요할 때만 지갑을 여는 편이에요.


투 플러스 원, 마감 세일, 블랙프라이데이, 단 한 번의 기회, 마지막 할인 등등 소비를 부추기는 강렬한 문구에도 딱히 휘둘리는 법이 없습니다.


쟁여놔도 딱 한 개 정도입니다. 쓰던 것이 떨어지면 바로 꺼내 쓸 수 있도록 말이지요.


나름대로 소비 적고 물욕 없는 미니멀리스트 같은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유난히 이 책의 제목이 눈에 확 들어왔습니다.





제가 자주 하는 생각이었습니다. 특히나 계절이 바뀌어 옷을 정리할 때면 이 생각은 두 배 세 배까지도 치솟았습니다.



'정말... 도대체 집구석구석에 있는 이 수많은 짐은 대체 다 어디서 왔을까?'



그래서 미니멀리즘에 관한 이 책을 펼쳐 보았습니다. 밀리 오리지널 전자책이고요. 제 인생 첫 미니멀리즘 책입니다.






이 책은 작가님이 미니멀리스트가 되고자 결심한 뒤, 그 과정을 쓴 책입니다. 집을 정리해 나가면서 펼쳐지는 여러 가지 상황들과 그 속에서 맞닥뜨린 생각들을 엿볼 수 있습니다.



톡톡 튀는 재밌는 문체와 찰떡같은 비유가 많아서 보는 내내 키득거렸습니다. 한 챕터씩 읽어 나갈 때마다 마치 맛있는 캐러멜을 까먹듯이 찬찬히 음미하며 읽어 내려갔습니다.



대부분의 챕터들 매우 공감이 되었습니다.  키득이다가도 한 번쯤 생각에 잠겼습니다.



참 이상했습니다. 저는 물욕이 없어서 물건을 마구 사들이는 사람이 아닌데, 왜 이토록 공감이 되던지요.



이렇게 고민을 하던 찰나, 이 <아이 있는 집에서 미니멀리즘 가능할까> 챕터에서 이 문장을 만났습니다.



'삶에서 불필요한 것을 정리하고 쓰지 않을 물건은 처음부터 사지 않는 태도를 기르는 것'이다.

이것이 내가 정의한 '나의 미니멀리즘'이다.
(50쪽)


이 챕터를 읽고 최근에 답답함을 느꼈던 일이 생각났습니다.

 
거실에서 100일짜리 아기랑 놀아 줄 때였습니다. 분명 이사 올 때는 거실이 널찍하고 트여있어서 좋았는데 주변을 둘러보니 온통 아기 짐 투성이었습니다. 앉아있기에도 비좁았습니다.





모두 선물로 받거나, 물려받거나, 당근으로 저렴하게 구입한 것들이었습니다. 엄청난 지출을 한 건 아니었는데 어쩐지 께름칙했습니다.



그리고 거실과 책 속 문구가 매칭이 되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정녕 이 물건들이 다 필요한 것일까?'


*

그래, 한 번 생각해 보자.

바운서와 아기 체육관은 첫째 때 아주 유용하게 써서 이번에도 들인 거고,

수유쿠션은 모유 수유할 때 꼭 필요하니까 들인 거고,

역류 방지 쿠션은 산부인과 출산선물이라 들어왔는데 지금 잘 게워내는 둘째에게 아주 필수 템이고,  

낮에 자는 신랑 때문에 방에서 재울 수가 없어서 간이침대도 들인 거고,

모빌은 아기 눈 초점 맞출 때 필요하니까 들인 거고,

이유식 먹을 때 꼭 필요하니까 아기의자도 들인 건데...
.
.
음.. 다 필.. 요.. 한데??

*


첫째 때 다 써보고 골라 골라서 딱 필요한 것만 집안에 들였다고 생각했는데.. 음.. 왜 이리 필요한 게 많은 것일까요?


저는 여전히 거실 물건들이 저를 조여 오는 것 같은 위기감을 느꼈고 다시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그 결과, 바운서와 아기체육관은 굳이? 싶었습니다.


바운서와 아기체육관은 수유쿠션과는 성격이 달랐습니다. 이 두 가지 물건은 없어서는 안 되는 물건이 아니라 '혹시 필요할까 봐' 미리 가져다 놓은 물건이란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러고 보니 저란 사람, 지독히도 강한 J입니다. '혹시 필요할까 봐'라는 미명하에 매번 모든 것을 다 구비해 두는 사람이 바로 저였습니다.




제 필통을 열어보면 네임펜, 형광펜, 검정펜, 빨간펜. 연필, 수정테이프, 포스트잇, 연필깎이, usb, 지우개, 스테이플러까지 들어있습니다.


허허.. 참.. 스테이플러랑 연필깎이는 왜 들어있는 걸까요?


마찬가지로 저는 과연 여기서 무엇을 덜어낼 수 있을까 생각해 봤습니다. 고민에 고민을 한끝에 딱 1개가 남았습니다.


'검정펜'


여기까지 이르자 물욕이 없다는 말이 '혹시 필요할까 봐'라는 말에 가려져 있던 것은 아닌가 생각했습니다. 저는 '갖고 싶어서'가 아니라 '필요해서' 구매한 것이니 괜찮다고 여겼습니다.


그러나 집에는 '혹시 필요할까 봐'의 마음으로 구매한 다양한 가짓수의 짐들이 가득했습니다.


수량의 맥시멀이 아니라 가짓수의 맥시멀이었습니다.


실제로 전쟁을 대비하여 '혹시 필요할까 봐' 재난 가방을 싸놓은 적도 있습니다.






책의 말미에 다다르자 작가님이 미니멀리즘을 하신 이유가 나왔습니다.



내가 미니멀리즘에 열광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나만의 속도로 가도 더 이상 알 수 없는 불안에 사로잡히지 않는다. (207쪽)



불안.. 저도 그랬던 것 같습니다. '혹시 필요할까 봐'라는 마음의 기저에는 혼란스러운 마음을 통제하려는 욕구가 있었고 그 통제 욕구 아래에는 '없으면 어쩌지?'라는 불안이 도사리고 있었습니다.


없으면 어쩌긴요. 없으면 없는 대로 살면 될 것을. 지구가 멸망하는 것도 아닌데 말이지요.


왜 이렇게까지 다 갖췄어야 했나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시 한번 집 안에 있는 물건들을 레이저 눈으로 스캔해 봤습니다. 전에는 필요도 100% 빵빵했던 물건들이 어떤 것은 30%, 어떤 것은 70% 로도 떨어졌습니다.



내가 지금 어떤 상태인지, 진짜 원하는 건 뭔지 골똘히 생각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미니멀리스트가 되는 건 요즘 유행하는 '나다움'을 찾는 과정과 비슷하다.

삶에서 불필요한 것을 없애려면 내게 정말 필요한 게 무엇인지부터 알아야 하니 말이다.  (266쪽)



작가님 말씀처럼, '나다움'을 찾으려면 저는 저에게 장착된 '혹시 필요할까 봐'를 내려놓아야 한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혹시 필요할까 봐' 불안해서 여러 가지를 구비해 두는 것이 아니라 정말로 나에게 그 물건이 필요한 것인지를 골똘히 생각한 뒤에 들여야 한다는 결론이 났습니다.



그리고 만약 없으면? 없으면 없는 대로!






매우 흥미롭게 읽었습니다. 저라는 사람이 '혹시 필요할까 봐' 물건을 구비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 준 책이었습니다.



더불어 단순히 물건을 줄이는 것이 아니라 '나다움'의 삶이 무엇일까? 고민하게 해 주었습니다.



모든 것이 다 들어있는 빵빵한 필통 같은 삶 대신, 펜 한 자루여도 괜찮다는 느슨한 마음을 지니고 살아야겠다는 생각도 하게 됐습니다.



무엇을 취하고 무엇을 버릴지. 어떤 물건을 남기고 어떤 물건을 보낼지 앞으로 찬찬히 살펴보고 싶어 졌니다. 



알고 보니 저는 물욕이 없는 줄 알았던 맥시멀 리스트였었네요. 저도 이제 맥시멀에서 꼭 필요한 것만 남기는 미니멀로 변화하고 싶니다.




**


꽉 찬 물건들에 답답함을 느끼셨던 분들.

미니멀리즘이 무엇인지 궁금하신 분들.

삶에서 변화의 물결을 일으키고 싶으신 분들께 이 책을 추천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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