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은은한 온도 Jan 26. 2024

갑자기, 어느 순간 울고 있었다.

<구의 증명> 최진영 작을 읽고.

가끔씩, 제 마음을 헤집어 놓고 가는 작품들이 있습니다.



당장 왜 그런지는 알지 못하지만, 몸과 마음이 먼저 반응하는 그런 작품들이 존재합니다. 이 소설 말미에 다다르자 갑자기, 어느 순간 울고 있는 저를 발견했습니다.



그럴 때 저는 제가 왜 이러는지 추적을 하는 편입니다. 반응이 격렬하게 나왔다는 것은 내 안 어딘가가 건드려졌다는 말이고, 도대체 무엇이 건드려졌는지 그 실체를 파악해야 비로소 안심이 되기 때문입니다.



깊은 진동을 내는 제 마음이 꽤 강렬해서 이 글을 쓰기까지 차마 다른 책을 시작할 수가 없었습니다.



이 책은 그런 작품이었습니다.





12월에 <밀리의 서재 독서 트렌드 리포트 2023>년 이 책을 처음 접했습니다. 이 책은 작년 역주행을 하는 도서였습니다. 출간 후 2년 동안 한 해 2천 부 정도 팔렸었는데 작년 1분기에만 무려 5만 부 이상이 팔렸다는 소식이었습니다.



궁금해서 책 소개를 살펴보게 됐고 리뷰도 읽어보았는데 사람이 사람을 먹는다는 설정이 있었습니다. 묘한 호기심에 전자책 서재에 넣어놨지만 또 선뜻 책장을 펴보는 건 겁이 났습니다. (사람 먹는 장면이 너무 기괴하면 어쩌지 하는 걱정 때문에요) 그렇게 넣어둔 지 수일이 지난 후에야 책을 읽을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아주 몰입감이 높은 소설이었습니다. 문장이 길지 않고 짧아서 등장인물들의 생각을 따라가기가 아주 수월했습니다. 아이들을 재우고 밤에 읽었었는데 잘 수가 없었습니다. 아마 책을 읽기 시작한 첫날 딸이 깨지 않았으면 밤을 새워 책을 다 읽었을 거예요.





책 속에는 두 명의 남과 여가 나옵니다. 남자'구' 여자는 '담'입니다. 사람을 먹는다는 것은 담이가 죽은 구를 먹는 것이었어요. 소설 맨 초입부터 구가 죽었기 때문에 우리는 '왜 구가 죽었는지' '담이는 왜 구를 먹는지' 그들의 과거로 가서 그들의 역사를 따라가는 소설이었습니다.



두 주인공의 삶이 참 처절했어요. 담이는 유일한 혈육인 이모랑 둘이 살고 있고요. 구는 부모님이 사채 빚까지 져서 고등학교 때부터 쉬지 않고 일을 해야만 했습니다.



그 둘에게서는 삶의 빛이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는 지독한 고독이 느껴졌어요. 그나마 그 둘이 서로의 숨 쉴 구멍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 둘을 단순히 연인이라고만 엮을 수도 없었고, 둘의 관계를 그저 사랑이라 부르기에도 얕았습니다.



<밀리의 서재 독서 트렌드 리포트 2023>에서 이 책 역주행하는 이유 드라마 <나의 행방일지>의 등장인물들을 떠올리게 한다고 적혀있었습니다. 그 드라마를 못 봤지만 저 역시도 같은 작가의 작품인 <나의 아저씨> 속 주인공이 떠올랐습니다.



tvn 나의 아저씨 공식홈페이지 발췌.



드라마를 볼 때 주인공을 보며 내내 가슴이 먹먹했는데, 확실히 드라마와 책의 결이 좀 비슷한 것 같습니다.



소설을 읽다가 제가 눈물이 나기 시작했던 페이지는  바로 이곳이었습니다.



구를 기다리는 마음에는 미움도 섞여 있었다는 것을 그제야 알았다.
그리고 구는, 내가 미워하는 유일한 사람이라는 사실도.
구를 보는 순간에야 이모에게 잘 가라는 인사를 할 수 있었다.



담이의 유일한 피붙이였던 이모가 죽었습니다. 구마저 없자 담이는 철저하게 혼자가 되었습니다. 담이가 살기 위해서 한 일은 자신을 기억하는 유일한 존재인 구를 기다리는 것이었습니다.



그건 구 또한 마찬가지였습니다. 구도 담이가 없으면 세상에 있었다가 사라졌는지도 모를 정도의 하찮은 물건과 같은 존재였습니다.  



그들의 모든 삶은 엉겨 붙어 있었습니다. 마치 서로가 서로에게 생착이 된 것 같은 인상을 받았어요. 이미 조직과 조직이 붙어버려 한 몸이 되었기 때문에 그 둘을 떼어내려 하면 오히려 더 망가지는 것 같았습니다.



담이가 죽은 구를 먹는다는 것은 '먹어야 했다'보다는 '먹을 수밖에 없었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지독히 슬펐어요. 구를 잃고 얼마나 가슴에 큰 구멍이 생겼으면 먹을 수밖에 없었을까요?



만약에 이 세상에서 모두가 나를 떠나고 나를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면, 나를 기억하는, 나를 나로 존재하게 만들어주었던 그이마저 떠났다면, 나는 정녕 그를 보낼 수 있을까?



도 그를 보내지 못할 것 같습니다. 어떻게든 내 안에 있게 만들고 싶을 것 같아요. 그살기 위해서.



물론 그를 보내지 않는 방식이 먹는다는 것은 다소 기괴하지만, 저는 오죽하면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담이 입장에서는 그들은 이미 생착된 존재들이기 때문에 먹어도 하등 이상할 것이 없었겠구나라고 저는 생각했습니다.



*



저도 과거에 철저하게 혼자가 된 느낌을 받아본 적이 있습니다. 그때는 엄마도 없고, 동생도 없고, 친구도 없고, 연인도 없고 이 넓은 세상에 그저 나 혼자라는 생각이 들 뿐이었습니다.



그땐 외로움이라는 단어도 제 마음을 표현하기에는 역부족이었어요. 저 혼자 심연 속에 가라앉은 기분이었습니다. 고독했어요. 지독하게 고독했습니다.



몇 달간 그 고독 속에서 살면서, 그래도 다행 그 고독에 끝이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어쩌면 그래서 견딜 수 있었는지도 모르겠어요.



하지만 담이는요. 구가 없으면, 구가 없이는 더 이상의 삶의 의미도 가치도 존재 이유도 없었습니다. 생착된 '나'의 일부가 사라지는 것인데요. 과연 나라면 견딜 수 있었을까? 반문했습니다.



그래서 담이만큼은 아니겠지만 제가 그 고독을 일부 이해하기에 이 책을 읽으며 경악이 아닌 눈물을 흘린 것 같습니다.






저는 이 책이 좋았습니다. 지금 이 글을 쓸 때도 여전히 먹먹함과 묵직한 마음이 듭니다. 등장인물의 사람을 먹는 행위 때문에 불호 이신 분들도 계실 것 같아요. 하지만 행위 자체보다 '그 행위를 할 수밖에 없는 어떤 가엾은 인간'이란 시선으로 보신다면 재밌게 읽으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애가 닳는 사랑, 격렬한 사랑이 아닌 서로에게 생착되어 그가 나고, 내가 곧 그가 되는 그런 사랑이 궁금하신 분들, 또 깊은 고독을 경험해 봤던 분들에게 이 책을 추천드립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내가 벽돌책을 읽었다니.. 독서모임 덕분이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