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구하러 온 작은 구원자, 아이

by 은은한 온도


지난주에 워터파크를 놀러 갔다. 놀 때는 정말 즐거웠는데 다 끝나고 나왔을 즈음, 내가 폭주했다.



눈이 뒤집힐 정도로 감정이 매우 격해졌고, 달님에게 벼락같이 쏟아부었다.



분위기는 얼어붙었다. 그렇게 떼쓰던 햇살이조차 삽시간에 조용해져 내 말을 잘 들었다. 구름이는 말할 것도 없고.



원래는 외식이 예정되어 있었지만 다 취소하고 집으로 향했다. 차 안에서 아이들은 잠에 들었고 차 안은 냉기와 적막으로 가득했다.



머릿속으로 생각했다. '왜 이렇게 된 거지?' 차 안에서 상황을 곱씹어 보니 내가 과한 게 맞았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뻔했는데 내가 지레 화를 먹고 크게 화를 낸 것이었다.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랐다고나 할까. 화로 뱉어내기 전에 솥뚜껑이라는 걸 확인하면 됐었는데 화부터 내버렸다.



아이들이 자고 있었기에 집 주차장에 주차를 해놓고 한참을 앉아있었다. 차 안에서 둘이 어색한 시간을 보냈다. 이런저런 대화를 해봤지만 소용없었다.



나는 계속 달님에게

'당신이 나를 반복적으로 화가 나게 했어!'

달님은 나에게

'그래도 말로 하면 되지, 왜 화를 냈어!'로 대립했다.



접점이 찾아지지 않는 와중, 달님이 애들 자는 동안 집에 짐을 올려두고 오겠다며 자리를 비웠다.



바로 그때, 구름이가 깼다. 우선 구름에게 사과를 했다.



"구름아, 갑자기 엄마가 화내서 놀랬지? 잘 놀았는데 갑자기 분위기 망쳐서 미안해."

"... 응.. (끄덕끄덕).. 엄마... 무서웠어..."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동안 나는 나의 이 욱하는 성미를 고치기 위해 무던히 노력했다. 유전자 탓인지, 보고 자란 환경 탓인지, 아니면 습관이 들어버린 건지 나에게는 애석하게도 아빠를 닮은 난폭한 성미가 있다.



이따금 고삐가 풀려 내 안에 있는 성난 코끼리가 튀어나와 주변을 망가뜨리곤 한다. 더 못된 건 이 비겁한 코끼리가 절대 타인 앞에서는 나타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오로지 가족이라는 테두리 안에서만 등장한다. 못 됐다.



나는 구름이를 키우면서 집안에 매를 두지 않았다. 한 번을 허용하면 이성을 잃고 폭주할 코끼리가 두려웠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애초에 시작도 안 했다. 문이 열릴 것 같거든 내가 동굴로 피해버렸다.



그렇게 잘 길들여온 코끼리였다. 그런데 어쩌다 문이 열렸다. 내 잘못이 맞다. 화가 난다고 누구나 다 그렇게 퍼붓지는 않는다. 내가 선택할 수 있다.



구름이의 말 한마디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즉각 구름에게 사과를 한 번 더 했다. 노력하겠다는 말도 덧붙였다.



그리고 생각했다. '어차피 이 상황을 아이에게 그대로 보여준 김에 아이 눈앞에서 사과까지 해야겠다.'



이 상황은 싸운 건 아닌지만 엄마 아빠의 분쟁을 눈으로 봤으면 화해하는 장면도 눈으로 보여줘야 될 것 같았다.



그래서 달님이 돌아왔을 때 바로 사과했다. 미안하다고 다음부터 더 신경 써서 노력하겠다는 말도 함께.



구름이에게도 다시 알려줬다. 엄마가 아빠한테 사과했다고. 걱정하지 말라고.






애초에 내가 잘못한 것을 알았다. 하지만 달님 앞에서는 사과를 망설였다. 사과를 하긴 해야 하는데 괜히 자존심도 상하는 것 같고, 애초에 원인을 제공한 달님 탓 같았다.



남편을 생각하면서는 사과를 망설였지만

아이를 생각하면서는 바로 사과할 수 있었다.



남편 앞에서는 부끄러움 따위 개나 줬지만

아이 앞에서는 부끄러움이 나를 집어삼켰다.



구름이한테 고마웠다. 이 못난 엄마를 정신 차리게 해 줘서. 그리고 달님에게도 고마웠다. 내가 폭주했을 때, 같이 폭주하지 않고 차분하게 나를 기다려줘서.



아이들은 부모의 말을 먹고 자라지 않는다. 부모의 행동을 보고 자란다. 아이들이 잘 자라길 바란다면 늘 내 행동을 점검해야 한다.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은 법이니까.



아이 덕분에 나는 조금씩 더 좋은 사람이 되어간다. 아이는 아무래도 나를 구하러 온 구원자가 맞는 것 같다.


아이를 낳길 참 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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