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CCTV를 가린 이유

by 은은한 온도

얼마 전의 일이다. 장염으로 며칠째 제대로 음식을 먹지 못했던 구름이와 드디어 저염식으로 아점을 먹기로 한 날이었다.



햇살이 등원 준비하며 구름이에게 물었다.



구름아 엄마랑 같이 갈 거야? 집에 있을 거야?

집에.


알겠어. 엄마 그러면 금방 다녀올 테니까 공부할 거 먼저 하고 있어~!

응. 엄마 근데 밥 먹기 전에 시리얼 조금 먹어도 돼?


시리얼?? 안 되지. 너 그거 먹으면 밥 못 먹어. 그리고 아직 시리얼은 좀 그런데. 안돼.

알았어.


어~ 엄마 금방 다녀올게~ 잘 있고. 무슨 일 있으면 전화해!



날이 엄청 추워서 빨리 갔다가 뛰듯이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무사히 도착해 손을 씻고 바로 음식 준비를 했다. 오늘의 메뉴는 장염 기간 동안 구름이가 먹고 싶다고 했던 스크램블 에그와 어묵볶음이었다. 어묵을 소분한 뒤에 일부는 잘랐고, 양파와 당근도 얇게 썰었다. 막 소스를 만들려는데 갑자기 구름이가 다가왔다.



엄마.. 나... 실은 엄마 몰래 CCTV 가리고 시리얼 조금 먹었어..

으응???????? 가리고 먹었다고???



발걸음을 옮겨 카메라를 확인했다.





솔직히 어이가 없어서 웃음이 튀어나오려 했다. 애써 웃음을 삼키고 물었다.



배는 안 아파?

응.


많이는 안 먹었지?

후르트링 5개.


알았어. 엄마가 솔직하게 말했으니 용서할게. 다음부터는 CCTV 가리는 거 하지 마. 나쁜 행동이야.

응.



그리고 마저 반찬을 만들었다. 다시 한번 확신했다. 우리 아이는 금지하면 몰래 한다는 걸. 나는 진작부터 구름이의 이런 성향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나에게 솔직할 수 있도록 구름이와의 관계를 가장 우선으로 생각했다.



혼자 실소가 났다. 카메라 렌즈가 아닌 가장 윗부분에 모자처럼 붙어있는 종이가 계속 떠올랐다. 그래도 아직은 아이구나 싶었다. 그동안 밥도 못 먹고, 동생이 먹는 거 보며 얼마나 먹고 싶었을까. 귀여웠다.



오랜만에 구름이가 밥 두 그릇을 비우는 걸 봤다. 역시 시장이 반찬이다.






설거지를 마친 뒤, 나와 구름이 모두 책상에 앉아 서로의 공부를 했다. 문득 궁금해져서 구름에게 물었다.



근데, 엄마한테 왜 말했어? 말 안 했으면 엄마 몰랐을 텐데.

몰라!


구름이 양심에 찔렸구나?



일부러 '양심에 찔렸다'라는 말을 구름이 마음에 새겨지도록 힘주어 말했다. 하지만 구름이에게서 답은 없었다.



그래도 나는 구름이가 양심이란 단어를 몰랐을 뿐, 누구를 속였을 때 이상한 기분이 들어서 실토했을 거라 생각한다.



내가 그러니까.



나 역시 자라면서 엄마에게 '솔직하게 말하면 용서해 준다' 주문에 걸렸고, 사고 친 뒤에는 꼭 고백을 했다. 너~~~무하고 싶어서 했지만 몰래 딴짓을 하고 나면 그렇게 찝찝할 수가 없었다. 다행히 정말로 용서해 준 엄마 덕분에 나는 지금도 거짓말을 잘 못한다.



아마 앞으로도 구름이는 나 몰래 또 뭔가를 저지르고 양심에 찔려 고백할 것이다. 그럼 난 또 놀라면서 그녀를 어쩔 수 없이 용서해 줄 것이다. 용서해 줘야만 한다. 내가 한 말에 책임을 져야 하니까.



구름이는 늘 나의 예상을 벗어나는 아이니까 내가 했던 것들은 다 해본다고 생각 중이다.



그래도 구름이가 양심이 있어서 다행이었다. 그리고 나한테 자신의 잘못을 솔직히 털어놓아 주어 그저 고마울 따름이었다.



앞으로도 이런 우리의 관계가 잘 유지되려면 내가 잘해야 할 테다. 솔직히 털어놓았을 때 절대적으로 분노는 금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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