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째와 둘째, 사랑의 다른 결

by 은은한 온도



첫아이가 태어난 이후, 나는 사랑에 대해 새롭게 알게 되었다.



그동안 내가 겪었던 사랑과는 전혀 다른 사랑이 나의 세포 안에서 춤을 췄다. 이토록 충만한 사랑이라니! 내가 그동안 이런 사랑을 모르고 지냈었다니!! 이렇게 사랑으로 가득 찼던 건 처음이었다.



이성과의 사랑과 자녀를 향한 사랑은 순도 면에서 꽤 다르다고 느껴졌다.



연인과의 사랑에선 이해하지 못했다. 받을 것을 생각하지 말고 오로지 그 사람만의 평화와 안녕을 위해서 사랑하는 것이 뭔지. 애인에게는 내가 사랑하는 만큼 사랑받고 싶은 것이 당연한 게 아니었던가.



하지만 아이와의 사랑에선 달랐다. 아직 초점도 없는 맹한 눈으로 나를 보는 건지 내 위에 천장을 보는 건지는 알 수 없었지만, 나는 아이를 쳐다보는 것만으로 행복했다.



먹고, 트림하고, 자고, 싸는 그 모든 순간이 사랑으로 가득할 수 있다니...!



더불어 어깨의 묵직함도 따라왔다. 나는 이 어린것을 잘 키워야 한다. 어린것이 행복할 수 있도록 충분히 나를 내 다 바치겠다. 아이가 나중에 커서 우리 "엄마 최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나는 최고의 엄마가 되겠다고 다짐했다.



하지만 그런 다짐이 무색하게 아이 키우는 방법을 몰랐다. 버벅댔고, 아이랑 같이 울었고, 실수를 반복했으며 죄책감을 느꼈고, 이것도 모르는 엄마라서 부족함을 느꼈다. 그래도 이겨낼 수 있었다. 내 사랑이 전부 아이에게 가 있었으므로.



하지만 아이가 점점 자라면서 그토록 충만했던 사랑 역시 서서히 익숙해져 갔다. 아이 또한 나만 바라보며 웃어주지 않았고 나 역시도 웃음보다는 찡그린 날이 늘어갔다.



저것이 나를 시험에 빠뜨리려고 이 세상에 태어났나 싶은 순간도 있었고,

저 작은 인간조차 내 말을 들어주지 않으니 절망적인 순간도 있었다.

이것은 육아인가 인내심 테스트인가 싶은 순간들과 미치게 사랑하는데 나를 미치게 만드는 것도 아이였다.



그리고 어느 시점부터인가 아이의 더 어릴 적 사진을 계속 찾아보며 미소 짓고 있었다. 딱 그맘때 평생 할 효도를 다 한다더니 정말이었다. 이제는 예전처럼 바라만 봐도 행복해지는 시기는 지나는가 싶었다.






그때 둘째가 태어났다.





첫째가 제법 자기 스스로 할 줄 아는 것이 많아진 시기였다. 더불어 나는 경력자였다.



내가 할 것은 육아의 대 혼란에서 벗어나 그저 아기를 예뻐해 주기만 하면 되었다. 그러니 얼마나 홀가분하게 사랑만 할 수 있겠는가.



알았다. 내리사랑의 의미를.



내리사랑은 불가피했다. 둘째에게는 첫째를 키우며 거쳤던 시행착오들이 없었다. 방법은 다 알았다. 심지어 아이가 내 뜻과는 전혀 다르게 커간다는 것도 알았다. 그러니 내가 할 수 있는 건 하나였다.



그저 아기를 사랑만 해주는 것.



그래서 둘째는 더 웃을 수 있었다. 그 시간이 그토록 짧다는 것을 알기에 그 귀한 시간을 더 눈에 담기 위해 노력했다. 마음 하나 피부 하나하나에 새겼다.


사랑의 결이 달랐다.

시행착오로 끈적하게 엉겨붙은

첫째와의 사랑은 눅진했고,

홀가분하게 마음만 쏟으면 되는

둘째와의 사랑은 사랑은 산뜻했다.



엄마는 첫째의 나이만큼 엄마 나이도 같이 먹는다. 그래서 첫째와의 사랑 속에서는 계속 시행착오가 있을 예정이다. 아무리 사랑만 할 수 있는 둘째라도 여전히 첫째에게 시선이 가는 것, 그것 또한 희한한 아이러니다.



이렇듯 첫째와 둘째의 사랑은 결은 다를 수밖에 없는 것 같다.



첫째는 첫째 나름대로,

둘째는 둘째 나름대로

각자의 사랑이 있다.



아이가 둘이라 순도 높은 사랑도 둘이다.



그러니 얼마나 행복한가! 내가 엄마라서. 이 세상에 태어나 나에게 여러 가지 사랑의 모습을 경험하게 해 준 우리 아이들에게 감사를 표한다.



아이들과의 사랑 속에서

오늘도 은은하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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