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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은한 온도 Jan 10. 2024

한식집에서 짜장면을 먹다니!

우리 딸은 편식이 매우 심한 편이다. 본인이 먹고 싶어 하는 음식을 먹을 때에는 '와 이거 괜찮나? 너무 많이 먹는데?' 싶을 정도로 먹지만 본인이 억지로 먹어야 할 때는 '와 진짜 그렇게 싫은가? 징글징글하다' 싶을 정도이다.



그때그때마다 좋아하는 음식이 바뀌는 데 요즘 우리 딸의 애정 음식은 '짜장면'이다. 짜장 떡볶이, 짜장밥, 짜파게티 등 어느 순간부터 '뭐 먹고 싶어?' 물으면 매번 짜장이라 난감할 때가 있다. 짜장면 사랑 덕에 요즘 외식을 하면 거의 80%는 중식이다.  



글속에 나오는 짜장면집의 짜장면 사진을 첨부하였다.



하지만 그런 날이 있지 않은가? 오늘은 도저히 짜장면은 안되겠다. 밥! 밥을 먹고 싶다! 중식의 기름진 볶음밥이 아닌 따뜻한 솥밥에 반찬을 얹어서 먹고 싶다! 싶은 그런 날. 지난 주말은 딱 그런 날이었다.



백화점에서 딸의 털 구두를 사고 식당가로 올라가며 나는 내가 들어갈 식당에 메뉴까지 정해놓은 상태였다. 그런데 아뿔싸! 식당가에 도착하자마자 익숙한 냄새가 코를 비집고 들어왔다. 딸은 그 냄새의 정체를 단박에 알아챘다.



"엄마, 나 짜장면 먹고 싶어"

"음... 오늘은 짜장면 말고 밥 먹자~ 엄마 오늘은 꼭 밥이 먹고 싶어"

"아~ 싫어요~ 짜장면! 짜장면! 제발요~~!!! 응? 응?"



오늘도 짜장면을 먹어야 하나 망설이는 순간 딸은 엄마 아빠의 흔들림을 눈치채고 더욱 심하게 짜장면 타령을 시작했다.



내가 반쯤 포기하고 중국집 가게로 들어가려는 찰나, 신랑이 도저히 오늘은 못 먹겠다며 다시 한번 딸을 설득했다. 슬프게도 설득은 전혀 통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날은 우리도 도저히 중국집에 발을 들이고 싶지가 않았다.



그래서 민폐인 줄 알면서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한식집 주인분께 짜장면을 포장해서 먹을 수 있나 물어보았다.



그랬더니 웬걸! 걱정과 다르게 너무나 흔쾌히 허락을 해 주셨다. 다시 중국집에 가서 포장을 물어보니 포장은 안되고 어느 가게냐며 직접 음식을 가져다주시겠다고 말씀하셨다.



세상에! 이게 대체 무슨 일일까? 양쪽에 이런 엄청난 배려를 받다니! 우리는 직접 기다렸다 가져가겠다고 했지만 중국집 주인분께서는 짜장면을 한식집으로 가져다주셨다. 가위와 포크, 앞접시까지 모두 준비해서 말이다.



나중에 식사 끝 무렵 둘째 분유를 줄 때도 식당에 있는 주인분과 직원분들이 아이를 예쁘게 바라봐 주시는 게 느껴졌다.


한식집의 솥밥과 짜장면


한식집 주인분의 배려 덕분에 우리는 한식으로 딸은 중식으로 만족스러운 점심 식사를 할 수 있었다. 다 먹은 뒤 계산하고 나올 때에 양쪽 식당 주인분들께 다시 한번 감사의 인사를 드렸다.



누군가는 그게 뭐 어렵나? 싶을 수도 있겠지만 나는 그런 생각이 들지 않았다. 엄연히 자기네 식당에서 다른 음식을 먹는 일이었다. 그것도 냄새로 존재감을 제대로 뽐내는 짜장면이라는 메뉴였다. 충분히 불쾌할 수 있었다.



이건 분명 아이의 마음과 부모의 마음을 동시에 헤아려주신 배려였다. 참으로 감사했다.



첫째를 키워봐서 요즘의 사회 분위기를 잘 안다. 아이가 뭐한 게 없음에도 아이의 등장 자체만으로도 눈총을 받을 때가 있다.



안다. 왜 그런 분위기가 형성되었는지. 물론 아이의 잘못은 없다. 아이의 부모가 더 신경 써서 예절을 가르쳐야 하는 일이고 주변 사람들이 약간의 배려를 나누어야 하는 일이다.



그동안 식당만 가면 혹시라도 맘충소리 들을까 봐 행동거지를 신경 썼던 나로서는 그날의 배려가 그토록 따뜻할 수가 없었다.



어느 한 쪽에서만 노력한다고 되는 부분은 아닌 것 같다. 아이를 키우는 부모도, 아이를 바라보는 사회의 따스한 시선도 모두 함께 노력해야 하는 일인 것 같다. 이런 따스함이 주변에 점점 많아지길. 그래서 아이들이 조금 더 살기 좋은 세상이 되길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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