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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은한 온도 Dec 15. 2023

아이는 별 수 없이 부모의 행동을 먹고 자란다.

나는 최근에 둘째를 낳았다.  하루에 1~2번을 제외하고는 내내 모유 수유를 하고 있다.



일요일 어느 날이었다.



첫째 딸은 뭔가를 만들고 그리고 꾸미고 하는 등 손으로 사부작대는 것을 좋아하는데 그날도 어김없이 핫케이크를 만들어서 먹고 싶다고 했다. 핫케이크는 딸과 집에서 한 요리 중 단연 넘버 원인 음식으로 이제는 제법 익숙해져서 혼자 반죽을 뒤집는 경지까지 오르게 됐다. (물론 내가 옆에서 내내 지켜보고 있다.)   



함께 반죽을 섞고 구운 뒤에 과일로 예쁘게 데코까지 한 보기도 좋고 맛도 좋은 음식이 완성되었다.



자신과 꼭 닮은 신랑을 찾았다는 핫케이크 신부다.



데코도 끝났겠다 사진도 찍었겠다. 딱 먹으려는 찰나 둘째가 깨서 배고프다고 왕왕 울어댔다. 나는 어쩔 수 없이 딸에게 식기 전에 먼저 먹으라고 한 뒤 거실로 가 둘째에게 젖을 먹였다.



한 1분쯤 지났을까? 딸이 갑자기 다가오더니 내 입에 핫케이크 조각과 과일을 함께 넣어주었다. 내가 요구하지도 않았는데 딸이 스스로 한 행동이었다.



그 순간 나는 우리 신랑이 떠올랐다.  



모유 수유를 하다 보면 최소 15분에서 길게는 30분 정도 온전히 아이에게 묶여있게 된다. 아이는 엄마의 리듬을 따라주지 않고 자기가 배고플 때마다 밥 달라 소리치기 때문에 나는 이따금 가족의 리듬과 동떨어져 수유를 하게 된다.



즉, 신랑도 첫째도 둘째도 밥을 먹지만 나는 못 먹는다는 뜻이다.



그렇게 식사시간에 나 혼자 소파에 앉아 수유를 하고 있을 때면 어김없이 신랑이 와서 한 숟가락씩 내 입에 밥을 넣어주고 갔다. 가끔은 식탁에 있는 그들보다 내가 더 많이 먹는 것 같을 때도 있었다.



신랑이 딸을 시켜 "엄마 입에 넣어주고 와" 한 적도 없고 "아빠가 엄마 밥 주고 올게" 말 한 적도 없다. 그냥 나에게 와서 한 숟가락씩 먹여주었을 뿐이었고 딸은 그 광경을 온전히 지켜봤을 뿐이었다. 



그 누구도 말한 적 없지만 우리 딸은 자신의 아빠가 엄마에게 했던 것처럼 나에게 와서 음식을 먹여주었다. 그 모습을 보며 나는 다시 한번 느꼈다.




아.. 아이는 정말 부모의 행동을 고스란히 따라 하는구나.




'보고 배운다'라는 말이 있지 않은가! 무섭지만 정말 그러했다. 아이는 듣고 배우지 않고 보고 배웠다. 



아이의 행동을 보면 그 부모가 평소에 어떻게 했는지가 느껴진다. 아이의 말을 보면 그 부모의 말투가 어떤지 알 수 있다.



그래서 나는 아이가 자라면서 두려웠다. 내 안에 못난 면들이 많아서 그 면들을 아이가 보고 배울까 봐 그런 어른이 되면 안 되겠다 싶었다. 그래서 더 좋은 사람, 더 나은 사람, 몸과 마음과 정신이 건강한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했었다.



그날 딸의 행동을 보고 나는 나의 행동을 돌이켜 봤다. 역시나 나도 미성숙한 인간이기에 좋은 부모의 모습도 있었지만 엉망진창인 모습도 많았다. 엉망진창인 모습들을 아이가 고스란히 먹고 자랐을 것이라 생각하니 약간 슬퍼졌다. 



솔직히 나는 이대로 있고 그냥 아이만 바르게 잘 자랐으면 하는 소망이 피어올랐다. 나를 변화시키는 일은 너무 귀찮고 시간이 오래 걸리는 일이니까.



하지만 별 수 없었다.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은 자연의 이치가 있으니까. 아이을 바르게 키우려면 내가 바르고 건강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건 나의 말이 아닌 나의 행동을 아이에게 보여주는 수밖에는 없다는 결론으로 돌아왔다.



이렇게 되면 결국, 아이를 키우면서 자라는 건 내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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