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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은한 온도 Jan 19. 2024

괜찮아, 아기 줄게. 나는 언니니까!


요즘 저희 집은 분위기가 화기애애합니다. 생각보다 저희 첫째 딸이 큰 질투 없이 동생을 잘 받아들인 덕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첫째가 동생을 참 좋아해요. 요즘은 최애였던 저를 버리고 저보다 동생을 더 사랑한다고 말합니다.


둘째가 막 집에서 같이 살기 시작했을 때는 '앗! 이런 것이 첫째의 질투인가? 이것이 바로 듣기만 했던 발달 퇴행인가?' 싶은 순간들이 있었고, 실제로 서러움에 눈물도 흘리곤 했었는데요. 요즘은 잘 적응해서 진심으로 동생을 아껴주고 있습니다.



첫째가 그린 동생 그림.



어린 아기가 있다면 집에 무조건 필수로 있는 기저귀 발진 연고가 있습니다. 효과가 좋고 유용해서 지금까지 저희 집 필수 비상 연고입니다.



어느 날은 첫째도 연고를 발라야 하고, 둘째도 연고를 발라야 하는 밤이었어요. 저는 나름 언니의 권위를 높여주고자 딸에게 먼저 바를 것을 권유했습니다.



"네가 언니니까 먼저 바르자~"


그랬더니


"괜찮아. 내가 언니니까 아기한테 양보할게. 아기 먼저 발라."



오.. 그때 약간 놀랬습니다. 사실 첫째들은 부모로부터 필연적으로 동생에 대한 양보를 강요받는 부분이 있습니다.



"네가 첫째니까 참아" "네가 첫째니까 먼저 사과해" "네가 첫째니까 동생 챙겨야 해!" "엄마 없으면 네가 엄마야!" 기타 등등.



어떻게 아냐고요? 제가 첫째거든요.



어찌 되었든 저는 첫째의 심정을 아니까 굳이 딸에게 양보를 강요하지 않았습니다. 또 둘째가 집에 오는 건 남편이 외도한 여자를 집에 들이는 것과 같다는 무시무시한 소리 때문에 혹시라도 서러울까 봐 첫째 마음 살피기에 좀 더 집중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웬걸. 양보라는 단어를 써가며 동생을 챙기다니요! 자기 좋아하는 음식은 절대 저에게 주지 않는 딸인데 진짜 많이 컸구나 그리고 동생을 정말 사랑하는구나 생각했습니다.






또 어제는 무슨 선물 얘기를 하다가 갑자기 동생한테 용돈을 주고 싶다고 했습니다. 그러더니 용돈을 넣을 지갑을 만들어야겠다며 종이접기 유튜브를 틀어달라고 했습니다.


딸은 혼자 영상을 보며 멈췄다가 다시 틀었다가 접었다가 폈다가 오리고 붙이고를 하더니 지갑을 완성했습니다. 그리고 자기 지갑에 있는 전 재산을 털어 동생 지갑에 넣어주었습니다.   


제가 깜짝 놀라서



"네 용돈 다 주지 마. 어차피 아기는 돈 있어도 쓸 곳이 없어. 그리고 네 돈 없으면 너 앞으로 젤리나 과자 못 사 먹는데 다 줘도 괜찮겠어?"

그랬더니 아주 쿨하게

"괜찮아! 아기 줄게. 아기가 나중에 커서 쓰면 되지. 그리고 나는 좀 있으면 세배하니까 또 용돈 생겨!"


그래서 지금 첫째의 지갑은 텅장이 되었습니다.


저희 집에서는 간식을 사 먹거나 자기가 필요한 것 (뽑기, 액세서리 사기 등)을 사는 돈은 제가 따로 주지 않고 본인 용돈을 씁니다.


만약 돈이 없다면 치명적일 텐데 그 위험을 감수하면서 전 재산을 양보하는 언니라니 기특하면서도 걱정이 되기도 했습니다. (내 걱정 : 나한테 과자 사달라고 떼쓰는 거 아닌가 몰라)



첫째가 만든 동생 지갑. 센스있게 안에 용돈까지^^



마지막으로 동생한테 뽀뽀를 해대는 딸에게 물었습니다.



"만약에 동생 없었으면 어땠을 것 같아?"


"슬퍼서 울었을 것 같아"



딸이 이런 반응이니 저 또한 둘째 낳길 참 잘했다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질투 없이 동생을 잘 받아들이고, 양보라는 이타적인 감정도 스무스하게 가르쳐 줄 수 있어서 여러모로 다행인 요즘입니다.




앞으로 둘째가 좀 더 크면 분명 자매의 난이 펼쳐지겠지만 지금은 이 평화를 좀 더 누려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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