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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은한 온도 Jan 22. 2024

날 보면 웃어주는 사람.


나와 눈만 마주치면 환하게 웃어주는 사람이 있다. 내가 무표정일 때도 온 기운을 다해서 웃어준다. 그 웃음에 나도 어느새 같이 웃게 된다. 웃을 일 없는 건조한 일상에서도 나만 보면 웃어주는 사람 때문에 내 삶이 조금 반짝거리는 기분이다.


나만 보면 웃어주는 사람은 우리 둘째 딸이다. 어쩌면 '아이'라고 표현하는 게 더 맞는지도 모르겠다. 첫째를 키웠을 때도 느꼈지만 세상의 모든 '아이' 들은 모두 엄마, 아빠를 보면 환하게 웃어준다.


첫째를 낳고 생각했다.


'와~ 진짜 너무 사랑해! 사람이 사람을 이렇게까지 사랑할 수가 있는 거야?'


그 정도로 내 새끼는 정말 정말 예쁘다. 어른들 말씀에 눈에 넣어도 안 아프고 밥 먹는 것만 봐도 예쁘다고 하셨는데, 정말 그랬다.  


이렇게 사랑 충만한 감정은 덤이고, 아이를 좀 더 키워가면서는 나라는 사람의 삶이 아이를 통해 좀 더 풍요로워진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어느 정도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딱히 웃을 일이 없다. 대학생 때도 그랬다. 나는 요란한 연극 영화과였음에도 삶이 <집-학교 수업-공연 연습> 이 세 가지가 반복되어 돌아갔다.  


졸업을 한 뒤 배우 생활을 하고 직장 생활을 했을 때도 비슷했다. 삶이.. 그냥  도돌이표처럼 매일매일 똑같이 흘러갔다.


어느 순간 생일이 와도 무덤덤, 크리스마스트리를 봐도 뜨뜻미지근, 멋진 사진이나 그림이나 영화나 그 어떤 아름다운 풍경을 봐도 딱히 설레거나 하지가 않았다. 그냥 그저 그런 매일이 똑같은 일상의 연속일 뿐이었다.


매년 함께 만드는 크리스마스 트리.



하지만, 엄마가 되고부터는 그런 잿빛 같은 일상에 색이 입혀졌다. 물론 어떤 날에는 화가 나고 혼란스러워서 짙은 회색이나 칠흑 같은 검은색으로 뒤덮일 때도 있.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100일에는 잔치를 한다고 온 집안에 풍선을 붙이고 조명을 달았다.
생일에는 예쁜 드레스를 입혀 생일 이벤트를 하고 노래를 부르며 초를 껐다.
명절에는 굳이 한복을 입혀 인사를 다녔고 보름달을 보며 소원을 빌었다.
성탄절에는 캐럴을 부르며 트리를 꾸미고 산타 할아버지한테 편지를 썼다. 크리스마스 전날 아이가 좋아할 얼굴을 상상하며 몰래 선물을 준비하는 그 마음을 통해 '받는 기쁨' 도 좋지만 '주는 기쁨'도 어마어마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만약 아이가 없었다면 내가 풍선과, 노래와, 보름달 소원과, 트리와, 몰래 하는 이벤트들을 과연 했을까?


아이가 있었기 때문에 이 번거로운 일들을 굳이 굳이 하게 되었다. 왜? 날 보며 환하게 웃어주는 아이를 위해서.


그렇게 번거로운 일들을 하나씩 하다 보니 어느덧 내 인생이 회색빛에서 무지갯빛으로 바뀌어 있었다. 나는 심지어 아이가 둘이니까 쌍무지개다.


이제 곧 첫째는 이가 빠질 것이다. 그럼 나는 첫째와 함께 헌 이를 아파트 어딘가로 던지면서 까치가 새 이 가져다줄 거라고 요란 떨며 엄청난 퍼포먼스를 할 것이다. 아니면 이빨요정에게 편지를 쓰거나.


이제 곧 둘째는 100일이다. 삼신할미에게 삼신상 차려 인사도 드려야 하고, 집에 풍선도 붙여야 하고, 한자로 백자가 적힌 백설기랑 수수팥떡을 준비해 파티를 해야 하며, 가족과 기념사진도 찍을 것이다.  


어쩌면 이런 게 사람 사는 일이 아닐까 싶다. 



날 보며 웃어주는 사람들과 번거롭지만 요란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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