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유치원에서 주기적으로 있는 독서 골든벨의 날이었다. 첫 번째 골든벨은 이사 온 지 얼마 안 된 터라 참가에 의의를 뒀었고, 두 번째 골든벨은 집에서도 책을 여러 차례 읽어간 정도로만 준비했었다.
6세의 마지막 골든벨을 이주 가량 앞둔 어느 날이었다. 딸이 자기도 Y처럼 골든벨에서 1등을 해보고 싶다는 것이 아닌가.
딸이 1등 한 번 해보고 싶다는데 아예 준비를 안 시키는 건 아닌 것 같아서 부랴부랴 책을 사서 딸과 수차례 읽었다. 골든벨은 <O, X>와 <4지 선다> 이렇게 두 가지 유형으로 출제가 되었다. 골든벨 당일 아침, 나와 신랑은 책을 토대로 예상문제를 냈고 딸은 답 맞히는 연습을 했다. (일명 퀴즈 연습)
그렇게 두둑이 연습을 한 뒤 유치원에 갔고, 어느덧 하원 시간이 되어 딸을 마중 갔다.
딸과 집으로 걸어오면서 오늘 골든벨 잘했냐고 물어보니, 또 Y가 1등을 했다고 했다. (Y는 벌써 두 번이나 1등을 했다.) 너는 문제 많이 맞혔냐고 물어보니 아침에 우리가 연습했던 문제가 나왔다고 엄청 신나 했다. 자기는 많이 맞추긴 했는데 헷갈리는 게 나와서 아쉽게 떨어졌다고 했다.
다음에는 집에서 퀴즈 연습 더 하고 골든벨에 도전하자고 이야기를 마무리 지었다.
1등은 못했지만 상장을 받았다고 기뻐했다.
새벽 4시 반쯤 둘째의 밤중 수유를 하는데 갑자기 딸이 일어났다. 둘째를 재운 뒤 나도 딸과 함께 자려고 누웠는데 갑자기 골든벨 얘기를 했다.
"J는 이번에도 Y가 이겨서 속상해서 울었어."
"아~ J가 많이 속상했나 보네~ 위로해 줬어?"
"아니. 다음에도 기회 있는데 왜 울지? 7살 형님 반 되면 또 할 수 있는데. 괜찮아."
"그렇게 생각했다는 거야? J한테 그렇게 말했다는 거야?"
"생각만 했어"
그 대화를 하고 나서 너무나 T스러운 답변에 웃음이 나면서도 또 한 편으로는 대견하단 생각이 들었다.
우리 딸은 나와 신랑을 닮아 완벽주의가 있다. 나는 완벽주의가 있긴 하지만 기본적으로 호기심이 많고 행동파라서 대부분 우선하고 보는 편이다. <일단 해보고 아니면 말고>가 기본적으로 깔려있다. 예를 들어 자주 가는 식당에 갔는데 신 메뉴가 생겼다. 그럼 나는 신 메뉴에 도전한다. 먹어 보고 맛없으면 다음에 안 먹으면 되지 이런 사고방식이다.
우리 신랑은 나보다 훨씬 완벽주의가 높고 안정지향적인 성격이다. 뭐랄까 두뇌 파라고 해야 할까? 실패를 싫어해서 웬만한 건 직접 해보기보단 머리로 계산한다. 내가 얼마만큼의 성과에 도달할 수 있을지, 그걸 끝까지 잘할 수 있을지, 여러 가지 상황들을 다 머리로 굴려본다. 그러다가 아닌 것 같다 싶으면 애초에 시도하질 않는다.
그래서 만약 똑같이 자주 가는 식당에 신메뉴가 나왔다. 그럼 신랑은 신메뉴를 살펴보고 나서 그냥 먹던 걸로 주문하는 사람이다. 신메뉴는 맛있는지 맛없는지 모르지만 원래 먹던 메뉴는 확실하게 맛있으니까 굳이 시도해서 실패하고 싶지 않다는 이유에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