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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은한 온도 Feb 03. 2024

딸에게 돈 공부 시키려다 내가 배우고 있다.

(feat. 부루마블)

딸의 나이가 많아지면서 좋은 건 놀거리가 다양해진다는 점이다. 어릴 때는 단편적이고도 일방적으로 내가 놀아줘야 한다면, 요즘은 딸이랑 동등한 플레이어로서 보드게임이 가능하다.



작년 초까지만 해도 어른들이 용돈 주시면 나는 이거 필요 없다고 바닥에 흘리고 갔었는데 어느 순간 용돈을 받으면 야무지게 접어 지갑에 챙긴다.



그렇다면 딸이여! 이제 '돈'이 무엇을 하는 친구인지 알았으니 이제부터는 '돈' 공부를 시작해 보자!



자연스럽고 재미있게 알려주고 싶어서 집에 있는 <부루마블>을 꺼내 들었다.



예전에는 잘 몰랐는데 하다 보니 부루마블, 이거 이거 자본주의가 그대로 녹아있는 지독히 현실적인 게임이었다. 정말 부루마블 이 녀석 다시 봤다



처음은 분명 같은 돈으로 시작했다. (물론 현실에서는 이미 시작부터 차이가 나지만.) 좋은 땅에 건물을 올려 투자를 잘 한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통행료를 자주 받았다. 그 결과 돈이 더 많아졌고 많아진 돈으로 더 많은 땅에 건물을 올리니 돈이 더더 많아졌다. 돈이 더 큰돈을 가져다주는 순환이 반복되었다.



한 번 흐름을 타기 시작한 자는 더 부자가 되었고 한 번 무너지기 시작한 자는 속절없이 무너졌다. 돈도 잃고 땅도 잃고 결국 파산을 했다. 더 슬펐던 건 무너지기 시작할 때는 황금열쇠도 도와주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신랑은 위기에 몰렸을 때 반액 대매출이라는 악재가 나와서 가지고 있던 가장 큰 자산을 매각하기도 했다.



이것이야 말로 <부익부 빈익빈> 을 제대로 보여주는 것이 아닌가! 경제감각세포가 없는 내가 부루마블을 하면서 머리에 띵 맞았던 순간을 공개해 본다.     






1) 게임에 제법 익숙해진 딸은 이제 비싼 땅들을 잘 공략한다. 게임을 시작하면 우선 서울을 향해 돌진했다. 만약 서울에 도착했는데 돈이 없다? 그러면 동남아시아의 땅을 팔아 서울을 구매했다.



작은 땅을 팔아서 큰 땅을 사다니... (입지가 안 좋은 땅을 팔아 입지 좋은 땅을 사다니...) 나는 이 게임하면서 한 번도 그런 생각 못 했었는데 나보다 한 수 위였다. 심지어 딸은 우주여행이 나오면 사용자에게 돈까지 지불하고 서울을 사러 갔다. 어떻게든 서울을 사수하고 보는 우리 딸이다.



2) 한 번은 딸이 돈도 없이 서울 딱 하나만 든 채 버티고 있었다. (나는 이미 파산해서 은행을 맡아하고 있었다.)



신랑 역시도 돈은 거의 없었지만 그래도 땅을 좀 소유한 편이었다. 겨우 주사위 개수 하나 차이로 간신히 서울을 피해 황금열쇠에 도착했는데 아뿔싸... 황금열쇠에서 '서울로 가시오'가 나오는 것이 아닌가.



200만 원이라는 거금을 내기 위해 신랑은 가지고 있던 땅 여러 개를 매각했다. 매각하면서 역시 투자를 할 거면 좋고 비싼 땅에서 버텨야 하는 거라면서 아쉬워했다. 순식간에 기세가 역전된 신랑은 하는 족족 뭔가 안 풀리기 시작하더니 심지어 종합소득세까지 나와 땅 팔아 세금도 냈다.



요새 딸의 승률이 아주 높다. 나보다 투자를 더 잘하는 것 같다...



3) 또 한 번은 내가 땅도 돈도 거의 다 잃은 상황이었다. 요리조리 주사위를 잘 굴려 남의 땅들을 피하거나 황금열쇠의 행운을 바라며 겨우겨우 게임을 이어가고 있었다. 내 유일한 소득 수단은 월급뿐이라 나는 한 바퀴 도는데 혈안이 되어있었다.



내가 무심코 신랑에게 "나는 이제 월급밖에 없어." 했더니 신랑이 답했다. "와.. 이거 우리잖아.. 투자 못하면 이렇게 월급만 바라보며 사는 거야..."  



아... 이것이야말로 웃긴데 슬픈 그런 상황이 아닌가. 투자도 없이 행운이 있기를 바라면서 월급의 종속돼서 사는 우리 부부의 삶. 게임에 제대로 뼈를 맞았다.



4)  마지막으로 딸은 돈이 넉넉할 때 미리 자기 땅에 건물을 여러 채 올린다. 그래서 저번에는 서울 통행료인 200만 원보다 더 큰 260만 원짜리 땅이 있었다. 신랑은 또 그 땅을 밟고 전 재산을 다 잃었다.  



나는 이미 건물 한 개로 넉넉한 통행료 받고 있는데 뭘 또 올려? 했었다. 그런데 딸이 한꺼번에 더 많은 돈을 버는 것을 보고 '아.. 역시 남는 돈으로는 저금이 아니라 투자를 해야 하는 거구나.. 지금 보다 훨씬 더 수입이 많아질 수 있는 기회였어.' 싶었다.






요즘 우리는 둘째를 낳고부터 부쩍 더 돈 얘기를 많이 하고 있다. 같이 경제 서적을 읽고, 자기 계발서를 읽으며 앞으로 우리가 어떻게 부를 쌓아 나갈 것인지 의논을 하고 있다.



앞으로 우리는 먹는 것도 두 배, 놀러 가도 입장료 두 배, 학원비도 두 배, 모든 것이 다 두 배로 들 테니 좀 더 우리 머릿속에 경제적 경각심이 더 생겼달까. 한 명은 그럭저럭 버틸만했는데, 확실히 둘째까지 생기니 미래에 대한 걱정을 안 할 수가 없다.



우리가 한참 돈에 대해 이야기하고, 돈 공부하고 있어서 그런지 <부루마블>도 단순히 게임으로만 봐지지가 않았다. 사실 아이에게 돈 공부 시키려고 시작했는데 도리어 내가 투자에 대해 배우고 있다. 게임 자체에서도 배웠지만 딸의 플레이를 보면서도 많이 배우고 있다.



자녀가 있다면 <부루마블> 꼭 해보시길 추천드린다. <부루마블>이 아니라면 <모노폴리> 도 있다. <모노폴리>는 한국버전의 k청약도 있고, k 부동산도 있어서 이것도 꽤 재미있을 것 같다. 나도 딸이 <부루마블>을 지루해 할 때쯤 다른 경제 게임을 도전해보려 한다.



딸과 함께 여러모로 성장하고 있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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