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보, 그러다 쇼파랑 한 몸 되겠어.

by 은은한 온도


결혼하고 새로운 동거인과 살다 보면 같이 사는 남자에게서 그동안 연애할 때는 보지 못했던 새로운 면모를 아주 많이 발견하게 된다.



내가 신혼 초에 우리 신랑에게서 가장 충격받은 모습은 이것이었다.



'소파에 누워있기'



신랑은 집에서 도통 서있거나 앉아있지를 않았다. 늘 누워있었다. 신랑과 대화할 때 같은 선상에 시선을 두기보다는 시선을 좀 아래로 두어야 신랑과 눈을 마주칠 수 있었다. 나는 신랑의 세로인 모습 보다 가로인 모습을 더 많이 봤다.




난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왜 맨날 소파에 누워있냐고 물어보니 자기는 원래 집 오면 누워있다고 답을 했다.



원래???? 이상했다. 연애할 때 신랑이 사는 원룸에도 가봤었는데 그때 이렇게 누워만 있었었나? 싶었다. 곰곰이 그때 살던 원룸을 머릿속으로 그려봤다.



곧 답을 찾을 수 있었다. 그 원룸에는 소파가 없었다. 심지어 침대도 없었다. 정말 몸 하나 뉠 정도의 작은 원룸이었어서 그 공간에서는 집안에서 할 수 있는 일련의 행위 따위는 할 수가 없었다. 그저 '누워 있거나' '자거나' 하는 일이 그 집에서 할 수 있는 전부였다. 그래서 나도 신랑이 그 집에서 일종의 가로가 되는 일들을 했을 때 큰 이상함을 느끼지 못했던 것 같다. 할 수 있는 일이 그것밖에 없었으므로.



그런데 지금은 다르지 않나. 걸어 다닐 공간도 있고, 그때와 달리 '살림'이라는 것이 생겼고, 책도 있고, 티브이도 있고, 여러 가지 여가활동을 할 수 있는 공간이 있는데 여전히 신랑은 누워있다. 이제는 원룸 바닥이 아니라 거실 소파에 누워있다.



집에 도착한 뒤에 신랑의 행동 순서는 이러하다.


우선 밖에 나갔을 때 입고 있던 옷을 다 탈피한다. 그리고 자신의 잠옷인 트렁크 팬티와 면 티만 입고 나온다.


화장실에 가서 손을 씻은 뒤 바로 소파에 드러누워 핸드폰을 한다. 그리고 핸드폰을 한다. 또 핸드폰을 한다. 계속 핸드폰을 한다.


가끔 그대로 티브이를 본다. 오랜 시간 티브이를 본다. 여전히 소파에 누워 티브이를 본다.


이 집으로 이사 오고 나서는 거실에 티브이가 없어졌기 때문에 다시 핸드폰만 한다.



먹으려고 몸을 일으키지 않는 이상 언제나 그 자리 그대로 머물면서 핸드폰을 했다. 어떤 때는 소파에 그대로 붙어있다가 정말 한 몸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아.. 물아일체란 이런 것이구나 싶다.



19평 빌라 신혼집에서 29평 아파트로 이사 갔을 때 신랑이 절대 포기 못한 가구 역시 소파였다. 큰어머니 댁에서 집들이 선물을 해주셨는데 그때 신랑의 의견으로 우리 집 소파가 2인용에서 4인용으로 업그레이드가 됐다.



내 입장에서는 4인용으로 바꾸고 싶은 이유가 더 어이가 없었다. 2인용 소파는 누워 있을 때 다리가 소파 밖으로 빠져나온다나? 나 참, 큰 키 때문에 소파를 바꿔야 한다니.. 안 누워 있으면 될 일 아닌가? 심지어 다음에 소파를 바꿀 때는 리클라이너로 하겠다고 큰소리를 쳤다.



그에 반면 나는 집에 있으면 누워있을 겨를이 없다. 결혼 전에도 집에서 잘 누워있지 않았지만 결혼을 하고 아이가 생기니 더 누울 틈이 없어졌다.



아니, 집에서 할 일이 얼마나 많은데.. 맨날 저렇게 거실 한가운데에 누워 있기만 하니 내 속에서 천 불이 나지 않겠는가!



그러다가 문득 금쪽이에서 우리 신랑이 왜 자꾸 소파 일체가 되는지 힌트를 얻을 수 있었다.



채널 A 유튜브 영상 캡처본 첨부.



하..... 이것 때문이었어? 긴장을 풀기 위해 누워있는 거였어? 신랑의 성격을 생각해 보면 일리가 있었다. 시댁에 갔을 때도 항상 얕은 긴장을 하는 편인데 일터에서는 얼마나 더 긴장을 많이 하겠는가!



그래서 나는 이 정보를 입수한 뒤에 꽤 오랫동안 그를 이해해 보려 애썼다. 누워 있을 때마다 '우리 신랑이 밖에서 많이 힘들어서 그래~ 돈 버느라 얼마나 힘들어~ 집에서는 긴장을 좀 풀게 두 자~' 하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내가 누워있는 신랑을 한심한 듯 쳐다보면 날 놀리기 좋아하는 신랑은 오은영 박사님의 말씀을 들먹였다.



"히히~ 여보~ 나~ 긴장 풀고 있는 거야~" 누워서 발을 까딱이며 히죽거리는데 음.. 참을 수가 없었다.



하... 박사님 저에게 왜 이런 시련을..



최근 우리 집 거실 소파에는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둘째 때문에 아기 물건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수유쿠션, 역류 방지 쿠션, 아기 체육관까지.. 그렇게 소파에 누울 수 없었던 우리 신랑은 요새 침대에 누워있는다.


하하하^^ 도대체 집에서 얼마나 많은 긴장을 풀어재끼려고 이렇게 누워있을까? 과연 그 긴장은 언제쯤 다 풀어지는 것일까? 도무지 알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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