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사람들은 자기만의 이야기보따리를 품고 산다.
<내 이야기를 써 내려가기 위해 펜을 들다>
내 나이 26살, 이젠 27살이라고 해야겠다. 26살도 한 달 남짓 남았으니.
올 6월 마지막 학기를 마치고 4개월간의 짧으면 짧고 길다면 긴 인턴 생활도 끝내고 어느새 쉬며 보낸 한 달이 지났다. 그만두고 가장 해보고 싶었던 것은 어디에도 소속되지 않은 채 내가 하고 싶은 나만의 프로젝트를 하는 것이었다. 어디도 기대지 않고 싶었던 이유는 혼자 무언가를 해보면서 나의 능력이 어디까지인지 시험해보고 싶었던 이유도 있었고, 오로지 나의 자유로운 선택을 스스로 보장하고 이에 책임지는 항해를 해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나는 어떤 프로젝트를 하고 싶었던 걸까?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나누고 그 이야기를 또 다른 사람들과 나누는 것. 그렇다면 왜?
아직도 기억에 선명한 노란색 책 한 권이 있다. 2012년 대학교 2학년 시절 수강했던 '글쓰기 2' 수업 책. 빛바랜 노란색이 아닌 샛노란 노란색이 삶의 한 희망을 상징하듯 그 속에 덤덤이 나의 진실된 이야기를 써 내려갔었다. 2012년 수업 중 그 책은 나에게 한 가지 질문을 던졌다. '지금까지 나를 키운 건 무엇이었는가?' 나를 키운 건 물론 부모님의 든든한 지원과 보살핌도 큰 몫을 차지하지만 과연 부모님의 그늘 아래 보살핌을 받은 것만이 지금의 나라는 사람을 만들었을까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1분이 지나고, 5분이 지나고... 그렇게 곰곰이 생각하다 내가 내린 답은 바로 이것이다. '만남'. 그렇다. 나를 키운 것은 8할이 사람과의 만남이었다.
진정한 나의 정체성과 가치관은 대학에 입학한 이후 형성되었다고 생각한다. 서울로 올라와 홀로 자취를 하면서 자유를 얻고 혼자서 이것저것 그 순간 관심 가는 것들을 직접 경험하려고 노력했다. 그리고 2011년, 빠르게 그리고 열정적으로 달려가기만 하던 내 삶에 나는 잠시 STOP을 외치게 되었다.
<2011년 10월, 아빠와 이별하다>
중간고사가 끝나고 친구들과 서울 상암동 하늘공원의 억새축제에 놀러 갔다. 그러다 걸려온 전화 한 통. 서울에 사는 사촌오빠였다. '니 어딘데? 빨리 우리 집으로 와라', '왜? 무슨 일 있나?', '아니, 일단 집으로 빨리 와라', '왜? 나 지금 친구들이랑 놀러 왔다. 왜?' 이유를 절대 말하지 않고 빨리 무조건 집으로 오라는 오빠. 그래도 내가 친구들을 데리고 왔으니 저녁까지는 같이 먹고 가자는 생각에 우동집으로 향했다. 또다시 오빠의 전화. 너무나 어수선했던 주변 분위기, 순간적으로 기분이 이상했다. 엄마에게 전화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따르릉따르릉. 한 참이 지나서야 엄마가 아닌 엄마의 친구가 전화를 받았다. '도희야, 아빠 돌아가셨다.' 어이가 없어서 처음에는 눈물조차 나오지 않았다. 그저 먹다만 우동을 남겨둔 채 나는 서울역으로 향했다. 이모와 외삼촌이 기다리는 곳으로. 하염없이 흐르는 눈물,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서울역으로 가는 지하철에서도 울산으로 가는 KTX 안에서도 말없이 울기만 했던 것 같다.
<2012년 2월, 혼자 여행을 처음 떠나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가장 슬펐던 점은 아빠는 아빠의 인생이 없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30년 동안 대기업에서 가족들을 위해 근무하신 아버지. 회사- 집, 회사- 집. 아버지 덕분에 나와 동생은 유복하게 자랐지만 아빠는 아빠만을 위한 온전히 시간과 삶이 있었던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일을 하기 위해 사는 것만이 답은 아닌 것 같았고 인생의 소중한 무언가를 놓치고 있는 것 같았다. 특히 20년간 울산이라는 현대 도시에서 근무하시는 수많은 아버님들을 보며. 내가 처한 환경에서 한 발 벗어나 내 삶을 바라볼 시간이 필요했다. 그래서 나는 떠났다. 답은 몰랐지만 일단 떠나야 할 것 같아서. 2012년, 2013년, 2014년 매년 떠났다. 그리고 그 곳에서 사람들을 만났고 나의 이야기를 나누고 그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모든 사람은 자기만의 이야기를 가지고 있다>
여행을 하면서 수많은 사람들을 만났고, 한국에서도 다양한 사람들을 만났다. 국적, 인종, 종교를 불문하고 각자가 살아온 이야기를 나누는 경험은 너무나도 즐겁고 감사한 시간이었다. 인생에는 A라는 답만 존재하는 줄 알았는데 B, C, D, E... 다양한 길을 걷는 사람들을 만났고 내 인생에도 다른 길이 있을 수가 있음을 깨달았다. 그리고 각자가 자신이 행복하기 위한 길을 찾거나 지키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내가 이 세상 모든 사람을 만나볼 수는 없겠지만 최대한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나누다 보면 어떠한 사람이 또 자기만의 이야기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나누고 싶었다. 내가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를 내가 만나는 사람들과 함께.
- 2015년 11월에 썼던 글, 오늘 1월 2일에서야 발행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