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땅에 헤딩하며 터득한 스웨덴 유학 준비기
내 인생의 터닝포인트가 되는 기념일로 지정해본다. 바로 그 동안의 한국 생활을 잠시 접고 머나먼 북유럽 스웨덴으로 가는 날이다. 2015년 11월 인턴으로 일하던 회사를 그만두고, 11월 중순 부터 부랴부랴 준비한 스웨덴 유학의 마침내 결실을 맺었다. 11, 12, 1월 이렇게 3개월 동안 급하게 원서 쓰고, 에세이 쓰고, 토플 치고 유학을 준비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도피성 유학을 떠나는 것은 아니다. 대학원에서의 공부에 대한 갈증은 대학 초기부터 가지고 있었고, 특히 해외 대학원 진학이라는 목표는 대학 교육 기간 내내 내 마음에서 떠난 적이 없다. 다만, 금전적인 문제와 스스로 목표의식에 대한 불안함과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이 나의 발목을 붙잡았을 뿐. 하지만 잠시나마의 회사 생활은 내가 어떤 커리어를 쌓고 싶은지 깨닫게 해주었다. 혹자는 짧은 인턴생활을 통해 단편적으로 사회와 자기 자신의 모든 일면을 다 아는 것처럼 결정을 내렸다고 느낄지도 모르지만 자기 자신은 자기가 가장 잘 아는 법이다. 단지 사회 생활 뿐만 아니라 나의 성격과 재미를 느끼는 부분, 인생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 직업에 관한 기준 등을 고려했을 때 유학은 도피라기보다 새로운 도전이 될 거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 순간 스웨덴 유학 기회가 내게 찾아왔다. 이 글에서는 내가 왜 하필 '스웨덴' 이라는 국가로 가는지와 스웨덴 유학을 준비한 과정 및 유학에 관한 다양한 기회를 공유하고자 한다. 국내에 스웨덴으로 유학을 가는 학생도 적을 뿐더러 잘 정리정돈된 정보가 부족한데 이글이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길 바라본다.
이상을 품다
스웨덴 유학에 관한 관심은 전반적인 북유럽 국가들에 관심에서 비롯되었다. 2012년 아버지를 갑작스럽게 여의고 '행복'에 대한 관심이 커졌다. 국내 대기업의 평범하고 정직한 사원으로 일만 하시다가 갑작스레 돌아가신 아빠를 보면서 아빠의 삶이 없음에 너무나 가슴이 아팠고, 과연 '삶'이라는게 무엇인지 고민되기 시작했다. 우리는 모두 우주에 던져진 존재이나 내 삶을 내가 스스로 던져버리거나 포기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살아있음의 이유는 결국 내 삶을 찬란하고 소중한 순간들로 채워 한 줄기의 '빛'으로 만들기 위함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선택은 스스로에게 달려있다는 것도 분명하고. 하지만 안타깝게도 선택은 상황에 의해 제한되기 마련이다. 인간에게 선택의 자유가 있다고 하더라도 무한한 자유는 없으며, 이 자유는 결국 구조나 시스템에 의해 영향을 받기때문이다. 아버지의 죽음은 국내 대기업의 근무 환경 및 우리 사회의 복지시스템과 사람들의 행복에 대해 생각해보게 했다. OECD국가 중 근무 시간이 가장 길고, 생산성은 낮으며, 자살률은 세계 최고, 행복도는 최저라는 수식을 달고 다니는 대한민국에 대한 반감도 생긴 것이 사실이다. 이러한 감정은 '전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복지국가'라는 타이틀을 단 북유럽 국가들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졌고, 언젠가는 이 곳에서 정착을 하고 싶다는 막연한 이상을 품게했다.
북유럽 국가들에 대한 막연한 이상은 이 국가들의 시스템에 관한 책, 기사,다큐멘터리와 같은 다양한 자료들을 찾아보게 했지만 이런 자료들이 내 유학 결정에 적극적으로 영향을 끼친 것은 아니다. 가장 일찍이 영향을 끼친 존재는 대학 수업에서 만난 북유럽 출신의 친구들이었다. 그들은 수업 시간에 자신의 의견을 내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으며, 그렇다고해서 독선적이지도 않았다. 주장은 하되 고집하지 않는 자세와 아르바이트, 여행, 유학을 통해 기른 독립성은 귀감이 되기에 충분했다. 내 또래의 똑같이 고등 교육을 받은 학생들이 나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학생들과는 다르게 삶을 살아나가는 모습을 보면서 그들이 어떻게 이러한 사고를 하고 살아가게되었는지 궁금해 물었을 때 우리와 배워온 방식이 철저하게 다름을 깨달았다. 단순히 학교의 교육방식 뿐만 아니라 삶을 대하는 방식이 달랐던 것이다. 평등을 가장 중요한 가치로 여기며, 교육은 지식을 학습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비판적인 사고를 통해 자신이 '행복'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가는 과정이기에 우리의 자율성이 보장되어야 한다는 생각은 나를 매료시키기에 충분했다.
KOREA TALENT RACE
2015년 11월 인턴 생활을 그만두고 2016년 2월 졸업을 앞 둔 시점에서 무엇을 해야 방황하던 중 학교 국제교류처 선생님의 추천으로 인해 'KOREA TALENT RACE(코리아 탤런트 레이스)' 라는 장학금 경쟁 프로그램을 알게 되었다. 이 프로그램은 한국인만을 대상으로 하는 것으로 특전은 스웨덴 내의 명문 5개교에서 전액장학금을 받고 공부할 수 있는 기회였다. 2012년까지는 전 세계 모든 학생들이 학비를 내지 않고도 스웨덴에서 공부할 수 있었지만 이후부터는 유럽 외의 국가에서 오는 모든 학생들은 학비를 내야했기에 나에게는 천금과도 같은 기회였다. 모든 학생들에게 주어진 임무는 Verbal Reasoning(언어추론능력), Numerical Reasoning(수리추론능력), Swedish sustainability(스웨덴의 지속가능성), 그리고 Sweden life(스웨덴 생활 및 역사)에 관한 총 네 분야의 주어진 퀴즈를 풀고, 스웨덴의 혁신에 관한 에세이를 제출하는 것이었다. 물론, 이외에 자신이 입학하고자 하는 대학에서 요구하는 TOEFL이나 I-ELTS 점수는 기본이다. 제출 마감이 1월 15일까지었는데, 12월 토플을 준비하며 시험을 치르는 동시에 장학금 라운드에도 참여했다.
나는 스웨덴 사람과 에스토니와 사람이 합작하여 만든 Skype(스카이프)를 에세이 주제로 골랐고, Skype(스카이프)가 우리나라의 교육에 어떻게 영향을 끼쳤는지 조사를 시작했다. 조사를 하다보니 Skype(스카이프)가 Microsoft(마이크로소프트, MS)사에 2011년 인수된 이후 MS 공공사업부에서 스카이프를 이용한 국내 원격 교육사업을 진행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한 기사를 통해 담당자님의 성함을 알게되었다. 홍보성 자료 외에는 공식적인 자료가 충분치 않던터라 담당자님께 인터뷰를 요청해야겠다는 결심을 했는데 역시나 공식 이메일 주소를 찾기는 너무나 어려웠다. 그래서 기사를 쓰신 기자님께 연락을 부탁하는 이메일을 보냈지만 연락이 닿지 않던 찰나에, 모든 사람을 연결해준다는 페이스북이 떠올랐다. 페이스북에 담당자님의 성함을 치니 나와 함께 아는 친구가 있던 덕분인지 바로 계정이 떴다.(주커버그에게 무한히 감사한 순간이었다) 사적인 SNS계정을 통해 연락드리는 것이 죄송하기도 하고 조심스러웠지만 용기를 내어 내가 누구인지, 어떤 연유로 연락을 드리게 되었는지 메세지를 보냈다. 그런데 이게 왠일! 담당부장님께서는 흔쾌히 광화문 본사로 와서 인터뷰를 하고 같이 자료를 찾아보자고 제안해주셨다. 감사히도 이 인터뷰는 내 에세이의 주된 내용이 되었으며 여러 친구들의 첨삭을 통해 에세이를 다듬어 나갔고, 1월 15일에 제출을 완료했다. 다행히 토플도 점수가 기간 내에 점수가 나왔고, 에세이도 소신있게 완성하였으며 준비 기간동안 경희대에서 열린 Study in Sweden 박람회를 통해 내가 가고 싶은 학교와 과정에 대해 상세히 안내받을 수 있었다. 특히 박람회에서 만난 대학교 관계자들은 이메일을 통해서도 추후 스웨덴에서 내게 다양한 정보를 주셔 큰 도움이 되었다. 그렇게 지원을 잘 마무리하고 나는 결과만을 손꼽아 기다렸다.
간절히 원하면 우주가 돕는다
지원이 끝난 후로부터 3개월이 흘렀다. 4월 초 KOREA TALENT RACE 결과가 났다. 다행히 최종 Finalist로 선정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장학금을 너무나 간절히 원했기에 장학금에 대한 기대감은 커져만 갔다. Finalist로 선정된 1주일 이후 드디어 결과가 났다. 그 결과는......가슴을 졸여가며 홈페이지를 여는 순간은 아카데미 시상식의 배우들보다도 더 떨렸다. 사실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다고 자신할 정도로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은 다했고, 준비를 하는 동안 너무나도 행복했으며 퀴즈나 에세이에 대한 자신이 있었기에(그렇다고 자만은 아니었다)기대했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우승자 명단에서는 내 이름을 찾을 수가 없었다. 단 한명을 뽑는 그 자리에서 결국 나는 선택받지 못한 것이었다. 현실적으로 국내에 취업하기에는 나이도 많고, 졸업도 늦어졌기에 이번 도전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고, 주변 사람들에게 자신있다고 공언했기에 장학금 수혜자로 뽑히지 못했다는 사실에 며칠간 너무나도 슬펐다. 최선을 다했고 도전하는 동안 행복했기에 후회는 없었지만, 너무나도 간절했기에 아쉬움이 컸다.
그렇게 1-2주가 흘렀다. KOREA TALENT RACE에 떨어진 후 취업을 알아보고 있을 때였다. 내가 지원한 우메오대학교 장학금 소식이 이메일로 날아왔다. 한국인을 대상으로하는 장학금 라운드에서도 패했는데, 과연 내가 전 세계 학생들이 지원한 학교 장학금을 받을 수 있을지는 생각도 못했던 터였다. 그런데 이메일에는 내가 장학금 수혜자 후보자로 뽑혔다는 내용이 들어 있었다. 생각지도 못한 소식이었지만 장학금에 한 발 다가섰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새로운 기회가 생겨 너무나도 기뻤다. 그러나 여전히 자신감은 바닥이었다. 수백명의 지원자와 다시 경쟁을 해야했기 때문이다. 기대감이 크면 실망감도 큰 법이기에 내가 할 수 있는 Plan B를 짜며 최종 소식을 기다렸다. 그 후 2주 후... 자포자기 한 상태였던 나에게 우메오 대학교에서 좋은 소식을 보내왔다! 내가 전액 장학금을 받고 수학할 수 있게 되었다는 소식이었다! 꿈만 같았다. 소식을 듣자마자 눈물이 터졌다. 그간 들어온 서러운 말들과 스스로에 대한 무너진 자신감 때문에 나를 잃고 있었던 아픔 때문이었으리라. 너무나도 감사하게도, 이렇게 나는 내가 꿈꾸던 스웨덴으로 유학을 갈 수 있는 기회를 잡았다. '정말 간절히 원하면 우주가 돕는다'는 파울로코엘료의 말이 가슴에 새겨지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