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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컬쳐커넥터 김도희 Oct 28. 2017

스웨덴에 한식 배달 왔습니다

음식은 사람, 사랑 그리고 문화의 움직임이다.

    2017.10.25일 스웨덴 우메오에는 긴긴 겨울의 시작을 알리는 첫 함박눈이 펑펑 내렸다. 작년에 비하면 3일 정도 첫눈이 빨리 내렸다. 하늘에서 내리는 눈의 움직임을 보면, 이 눈이 소복소복 거리에 쌓일지, 땅에 닿자마자 금세 녹아 없어질지 조금은 가늠할 수 있다. 그렇게 하늘에서 펑펑 내리는 눈은 스웨덴 우메오의 긴긴 겨울이 시작되었음을 소곤소곤 말해주고 있었다. '움직인다는 것'은 기본적으로 물리적인 이동이나 흐름을 뜻하기도 하지만, 눈이 우리에게 어떤 이야기를 전달해주는 것처럼 움직임은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어떤 이야기나 생각을 전달해주기도 한다. 그런 의미에서 자신들의 목소리를 전달하기 위해 사람들이 조직적으로 벌이는 운동을 우리는 영어로 'Movement'라고도 하는 게 아닐까 생각해본다. 첫눈의 움직임을 보며 긴긴 겨울이 시작되었음을 깨달은 그 날 저녁, 나는 나의 '움직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우메오 시내의 한 레스토랑으로 향했다.

17.10.15 페차쿠차 우메오에서

    은은하게 빛나는 따뜻한 주황빛 조명 아래 잔잔한 재즈음악이 흐르고, 옹기종기 모여있는 테이블 위에는 주황빛 따뜻한 조명에 응답하듯 그를 따라 주황빛을 내는 작은 초들이 켜져 있었다. 식당 입구 한 편에 위치한 조그마한 스테이지 위에는 누군가의 발표를 기다리듯 마이크와 스크린이 준비되어 있었다. 그 무대를 보자마자 내 가슴이 쿵쾅거리기 시작했다. 그랬다, 나는 그날 저녁 PechaKucha(페차쿠차) Umeå(우메오)가 주최한 'Movement(움직임)'에 관한 이벤트에 스피커로 발표를 하게 되었다. 일본어로 PechaKucha (ペチャクチャ)는 수다를 의미한다. PechaKucha는 TED와 비슷한 형식의 자신의 이야기를 나누는 행사인데, 모든 발표자가 20장의 이미지 안에 각 20초씩 총 6분 40초 이내에 자신의 이야기를 담아내야 한다는 점이 TED와 다르다. 20 X20이라는 틀은 발표자가 중요한 내용만 군더더기 없이 전달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2003년 2월 일본 도쿄에서 Astrid Klein and Mark Dytham 두 건축가가 고안한 것으로,  페차쿠차 형식에 맞춰 자신의 이야기를 발표하는 PechaKucha Night이 도쿄의 여러 갤러리, 라운지, 클럽 등지에서 열리면서 전 세계의 움직임으로 커졌다. 페차쿠차는 자신의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누구나 설 수 있는 무대로, 나는 페차쿠차 우메오의 오거나이저로 참여하고 있는 한국인 언니의 제안을 받고 이번 행사에 참여하게 되었다. 사실 제안을 받았을 때 선뜻 나설 용기는 나지 않았지만, 나의 이야기가 또 다른 변화를 가져올 거라는 언니의 격려에 용기를 내고 참여하게 되었다. 총 여섯 명의 연사 중 나는 다섯 번째로 무대에 서서 이때까지 조금씩 행해온 음식을 통한 문화적 교류/움직임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음식, 사람과 사랑을 움직이다.

    어릴 적 나는 꿈이 있었다. 모든 사람이 인종, 성별, 나이 등 출신 배경에 상관없이 모두가 친구가 될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것. 차이로 인한 차별, 증오, 반목이 난무하는 세상의 본모습을 몰랐을 때, 그리고 알고도 외면하고자 했을 때도 있었다. 그때는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고자 노력하면 사랑, 평화, 이해, 배려로 가득한 세상을 곧 볼 수 있을 거라 믿었다. 하지만 머리가 크면서 그리고 외면하고자만 했던 세상의 어두운 이면을 직시하게 되었을 때, 나는 내 꿈이 너무나도 이상적임을 깨달았다. 하지만 이 생각이 닿을 수 없는 뜬 구름 같을지라도, 적어도 그 구름이 옳은 세상을 품고 있다면 내가 선 위치에서 구름에 닿기 위한 사다리를 잘 놓으면 되는 것이었다. 그 다리의 시발점이 나는 서로의 '문화'를 이해하는 것이라 믿었다. 이동성이 더 용이하고 확장된 지구촌 시대, 우리의 정체성은 단순히 나의 국적이나 인종에만 기반을 둔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나의 뿌리 문화는 우리 정체성의 큰 부분을 차지하기 때문이다.(개인적으로 뿌리란 국적, 인종만이 아니라 한 개인이 대부분의 성장 시간을 보낸 곳이라 생각한다). 문화는 한 사회의 개인이나 집단이 수 천년 동안 자연을 변화시켜 온 물질적, 정신적 과정의 산물이다. 우리 모두는 자신이 속한 사회 안에서 사람 및 제도와 상호 작용하며 개인의 정체성과 세계관을 만들어 왔다. 그래서 우리는 다르게 살아가고, 다르게 생각하며 다르게 행동한다.


    스웨덴에 오고 난 후, 전 세계에서 온 다양한 사람들을 만났다. 지금 당장 전 세계를 차별, 반목, 증오로부터 구출할 수 없다면 나의 어릴 적 꿈이었던 전 세계 모든 사람이 친구가 되는 세상을 내 주변에라도 구축하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서로의 문화를 공유하고, 이해하고 배려해주어야 했다. 그리고 그 이해의 다리가 연결되기를 마냥 기다리기보다 내가 먼저 놓기로 결심했다. 더욱이 중국이나 일본에 비해 한국에 대해 모르는 친구들이 많아 나의 문화를 공유해야겠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내가 먼저 손을 내밀면 누군가는 그 손을 잡을 테니까.  '곰곰이 어떻게 문화를 보다 재밌고 의미 있게 나눌 수 있을까?' 생각해보다 떠오른 것은 음식과 관련된 행사를 여는 것이었다. 맛있는 음식 앞에서 손사래를 칠 사람도 많이 없거니와, 음식을 통한 문화 체험은 언어의 장벽도 뛰어넘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음식은 단순히 먹는 것이 아니라 한 나라의 언어, 역사, 지리, 관습을 담고 있는 문화적 총체라고 생각했다. 가령, 비빔밥을 통해 '비벼먹는 밥'이라는 뜻을 설명하고, 비빔밥에 깃든 정신인 '조화'를 한국 사회의 중요한 가치로 전달하는 것처럼. 이에 더불어 전 세계 어떤 음식이라도 마다하지 않고 먹는 나의 식성과 애정은 덤이었다!


ⓒKorean Food Festival, 리투아니아, 2013

    '언제부터 나는 음식에 애정을 품게 되었을까?'. 기억을 조금씩 잇다 보면 음식을 나눔으로써 문화를 경험하는 장을 본격적으로 만들고자 노력했던 시절은 4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13년 리투아니아에서 교환학생으로 한 학기 머물던 시절, 함께 공부하던 한국인 교환학생들과 함께 Korean Food Festival을 기획한 적이 있다. 더 넓은 세상에 대한 궁금증을 품고 간 교환 프로그램에서, 극동 아시아의 작은 나라 한국에서 온 우리들을 더 궁금해하는 친구들을 만났다. 비빔밥, 김밥, 불고기를 선보임으로써 우리는 어떤 음식을 먹고 사는지, 이 음식이 우리에게 가지는 의미는 무엇인지, 어떻게 먹는 건지 등을 알려줄 수 있었다. 친구들에게는 새로운 문화를 경험하는 즐거움도 컸지만, 무엇보다도 한국음식은 이때까지 경험해보지 못한 새로운 맛이었다. 행사가 끝나자마자 우리의 페이스북 이벤트 페이지는 '한국 음식 없이 못 살아, 나 이제 어떡해', '덕분에 처음으로 한국을 경험했고, 더욱 궁금해졌다' 등 친구들의 메시지로 가득 찼고, 나의 마음은 행복감으로 충만해졌었다. 음식을 통해 사람과 세상을 이을 수 있음을 강렬하게 깨달았던 그 날. 그때의 기억이 얼마나 강렬했는지 여전히 그때를 되새길 때마다 마음이 충만해진다. 이후 한국에 돌아오고 나서도 한국의 학생들에게 다문화를 소개하는 봉사활동을 꾸준히 했는데, 봉사활동을 하며 깨달은 것은 문화를 소개하고 경험하기에 음식만큼 흥미롭고 신나는 매개체가 없다는 것이다.

인도친구와 함께 인도차를 만들며

언어, 지리, 역사 등 한 나라의 문화를 파워포인트, 춤, 전통 복장 체험 등 다양한 방법으로 소개했지만, 가장 사람들을 궁금하고 흥미롭게 하는 것은 역시나 음식이었다. 시각, 후각, 청각, 미각 그리고 촉각. 인간의 오감을 만족시키는 음식 경험은 우리의 감각이 극대화된 만큼 경험의 만족도도 커졌다. 좋아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볼 때마다 그만큼 나는 더 행복해졌다.




우메오 김밥 워크샵, 17년 2월.

    그런데, 나를 더욱 행복하고 음식을 통한 문화 교류에 빠지게 만든 것은 '음식'이 주는 다양한 움직임들이었다. 음식은 사람, 문화 그리고 이야기를 움직인다. 우메오에서 김밥 워크숍을 개최했을 때, 사람들은 한국 음식인 김밥을 만들기 위해 한 곳에 모였다. 사람들의 물리적인 이동은 그들의 문화와 이야기를 함께 동반했다. 우리는 함께 김밥을 만들고 나눠 먹는 동안 각자의 문화와 자신의 이야기를 서로 나누었다. 내가 기획했던 것은 단순히 한국음식을 통해 한국 문화를 체험하는 이벤트였지만, 그 이벤트는 본래 목적인 음식 문화 체험이라는 속성을 넘어 사람과 사람들을 연결하고 이야기를 나눔으로써 서로를 좀 더 잘 이해할 수 있는 다리를 놓아주었다. 더욱이 음식은 누군가에 대한 우리의 사랑을 한 그릇에 담아 보여준다. 내가 음식을 나누고자 하는 사람이 좋아하는 음식은 무엇인지, 못 먹는 것은 무엇인지 그리고 어떤 재료를 쓰는 게 가장 좋을지 등 이 모든 게 상대에 대한 배려이고, 이해이고, 사랑이다. 심지어 우리는 항상 안부를 물을 때 '밥은 먹었니?'라고 묻지 않나. 조금의 일련의 경험들을 통해 나는 음식이 내가 꿈꾸던 이상적인 세계에 닿기 위한 하나의 발판임을 느낄 수 있었다.



   작년 스웨덴으로 이주를 하면서 스스로 'Movement(움직임)'의 일부가 되었다. 나 스스로를 이주시키면서 나는 나의 문화, 이야기 그리고 내가 살아가고 있는 세상에 대한 사랑을 함께 스웨덴에 가져왔다. 사실 내가 나누고 싶어 시작한 음식을 통한 문화 교류가 조금이라도 사람들을 모이게 하고, 우리의 문화와 이야기를 나누게 함으로써 서로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었다면 그것만으로 정말 감사하다. 한국 음식에 대해 전혀 알지 못했던 스웨덴 사람들에게 새로운 맛(味)을 소개할 수 있었던 건 보너스! 내가 한국 음식을 통해 문화를 알리고, 사람들이 자신의 문화와 이야기를 나누는데 나의 조그만 움직임들이 도움이 된다면 나는 앞으로 이 움직임을 꾸준히 이끌어 나갈 것이다. 내가 좋아하는 일이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며, 이 작은 나의 움직임이 언젠간 나비효과가 되어 모든 사람이 서로를 이해하고 사랑하는 세상을 정말 가능하게 할지도 모른다는 희망이 있기 때문에...

음식 그 자체가 가진 다양한 움직임... 음식은 사람을 움직이고, 이야기를 옮기고, 문화를 교류시키고, 사랑을 전달한다. 생명을 유지하기 위한 에너지를 섭취하고, 우리의 기본적인 욕구인 식욕을 충족시키기 위해 인간은 음식을 섭취한다고 하지만, 어쩌면 우리의 몸과 마음은 '이해와 사랑'이라는 보다 고차원적이면서도 근본적인 욕구를 먼저 이해하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혼자 먹는 밥보다 여럿이 모여 담소를 나누며 먹는 밥이 더 맛있는 걸 보면. 함께 모여 먹는 밥이 더 맛있는 이유는 우리가 나누는 서로에 대한 관심, 이해, 사랑이 음식에 톡톡 뿌려지기 때문일 것이다.  





- 스웨덴 최초의 김밥 워크샵 이야기: https://brunch.co.kr/@enerdoheezer/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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