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컬쳐커넥터 김도희 Oct 25. 2017

영국 남자 조쉬가 있다면, 스웨덴 여자 티니카가 있다.

[작가인터뷰]자칭 푸른 눈의 한국인, 한국과 스웨덴 사이에서 꿈을 꾸다



177cm의 큰 키에, 푸르면서도 초록색이 감도는 눈동자, 새하얀 피부, 금갈색 머리칼을 휘날리며 걸어오는 친구의 입에서 “안녕, 도희! 주말 잘 보냈어?”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한국어가 먼저 나온다. “저는 한국 사람이에요. 사실 스웨덴에 사는 교포예요”라고 주장하는 티니카! 우리나라도 스웨덴, 미국, 호주 등 이민자들이 많은 나라였다면, 티니카의 농담은 진담으로 받아들여졌을지도 모르겠다. 귀여운 새빨간 거짓말로 한국인임을 자청하며, 한국에 대한 애정을 더 드러내는 푸른 눈의 한국인, 스웨덴 여자, 티니카. 그녀는 어떻게 한국과 사랑에 빠졌을까?



스웨덴의 작은 마을에서 자란 아이, 세상을 만나다.

     나는 스웨덴 북부 우메오 근처의 작은 마을, 2,500여 명 정도가 모여 사는 Nordmaling(놀드말링)에서 태어나고 자랐어. 스웨덴도 한국과 마찬가지로 데이케어 센터부터 유치원, 초등학교, 중/고등학교, 대학교 등 비슷한 교육과정을 가지고 있어. 하지만 스웨덴의 많은 아이들은 교육 기관을 선택할 때 집에서 그다지 먼 곳으로 가지는 않아. 스웨덴에는 지방자치가 활발해서 Kommun(코뮨, 한국으로 치면 ‘시’)이라고 불리는 지방자치단체에서 각 Kommun(코뮨)마다 필요한 시설들을 인구 대비 설치를 굳이 멀리 갈 필요가 없어. 나도 태어나서부터 고등 교육을 받을 때까지 줄곧 놀드말링에서 살았지. 그런데 내가 12살이 되던 해에, 지구 반대편에 위치한 브라질에 갈 수 있는 기회가 생겼어. CISV 라고 70여 개의 국가에서 문화교류를 위한 교육 캠프를 주관하는 글로벌 단체가 있는데, 나는 스웨덴 지부를 통해서 브라질로 가게 됐어! 브라질에는 브라질 학생들 외에도 나와 같은 방법으로 브라질에 온 전 세계 여러 나라에서 온 친구들이 있었는데, 그때 처음으로 세상을 접한 느낌이었어. 내가 몰랐던 세상에서 온 친구들, 다른 언어를 쓰고 문화를 접하며 살아온 친구들을 보고 다른 세상에 대한 궁금함이 더 커졌지. 정말 그런 느낌은 처음이었어. 내가 살아온 세상만이 세상이 아닌, 진짜 ‘이 세상’을 만난 느낌!! 12살 티니카가 온몸이 짜릿할 정도로.    

    그때가 12살이니까 지금도 돌아보면 정말 어렸어. 그런데 브라질에 다녀온 이후로는 스웨덴에서 딱히 외국에 나갈 기회가 없었어. 평범하게 중,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교에 진학했지. 대학교에서도 딱히 외국에 나가서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을 해보진 않았었어. 교환학생을 갈 수 있다는 생각도 못했고. 그런데 대학에 진학 후 교환학생에 대한 정보를 얻고 나서, 12살 티니카가 경험했던 그때의 짜릿한 느낌이 다시 온몸에 전해지더라구. 그때 ‘다시 스웨덴이라는 좁은 세상 밖으로 나가고 싶다!’라는 생각을 하게 됐지. 그리고 이미 어린 티니카가 12살 때 잘 해냈으니까 어느 나라든  ‘혼자 가서 지낼 수 있겠네!’라는 생각이 들었어. 스스로 혼자 살아보고, 부모님을 떠나는 게 크게 두렵지도 않았고, 오히려 흔히 말하는 Safety Zone 안에 있으면 더욱 소심해지고, 아무것도 해내지 못할 것 같았어. 그렇게 스물두 살 티니카는 Comfort Zone 밖으로 나갈 준비를 하게 됐지.



티니카와 한국, 어쩌면 운명이었다.
ⓒ티니카와 친구들, 서울에서

 ‘왜 하필 한국이었어?’

     이런 질문 굉장히 많이 받아. 대부분 유럽이나 서구권에서 아시아에 관심을 가지는 학생들은 일본을 선호하니까 의아한 거지. 내 대답이 조금 실망스러울지도 모르지만, 솔직히 얘기해볼게…

교환학생 프로그램을 지원할 시기에 사실 내가 일본 애니메이션에 관심이 많았어. 일본 애니메이션은 세계적으로 워낙 유명하니까 자연스럽게 일본 애니메이션을 통해 아시아 문화를 처음으로 접하게 된 것 같아. 그래서 사실 처음에는 일본에 가고 싶었어. 그쯤 동생이랑 일본 여행을 계획했기도 했으니 일석이조였지! 아직까지 사실 한국에 대한 인지도가 스웨덴 사람들에게 높지는 않아. 사람들에게 ‘나 도쿄로 교환학생 가!’ 하면 ‘Wow, Tokyo!!!!!!’ 엄청나게 부러운 반응인데, ‘나 서울로 교환학생 가’ 하면 ‘서울이 어디야?’라고 하는 사람도 있는가 하면, 좀 의아하다는 반응이지. 나 역시도 일본을 염두에 두고 교환학생 프로그램을 찾았는데 불행인지 다행인지(지금 생각하면 일본으로 갈 수  없었던 게 행운이었어) 내가 지원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없더라구. 그러다가 마침 한국으로 가는 생각을 하게 된 거야. 애초부터 ‘한국에 안 가야지!’ 이런 생각은 아니었고, 단지 생각을 미처 해보지 못했었던 것뿐이었어. 그런데 스웨덴에서는 사람들이 무술(Martial art)에 관심이 많은데, 나는 특히 태권도에 관심이 생겨서 배우기 시작했었고(나 사실 그린벨트야:D), 케이팝과 한국 드라마, 영화도 보기 시작했어서 한국에 대한 관심이 더 커졌지! 신기하게도, 지원할 때는 내가 얼마나 한국에 가고 싶은지 깨닫게 되었어. 심지어 지원 서류 내는데도 덜덜 떨었을 정도로 합격하지 못하면 어떡할지 발표날까지 매일 마음을 졸였다니까(스웨덴은 교환학생을 가기 위한 조건이 엄청 까다롭고 경쟁이 치열하다). 서강대학교에 지원했는데, 고백하자면 사실 한국의 지리학적인 위치는 잘 몰랐지만 홍대가 젊음의 에너지로 가득한, 엄청나게 힙한 문화가 자리 잡힌 문화공간이라는 건 익히 알고 있었어. 그래서 지도를 보고 한국 대학교 위치를 파악한 후(그녀는 전략가였다) 홍대에 가까운 서강대에 지원을 한 거야! 심심한 스웨덴 생활에서 빨리 탈출하고 엄청 놀고 싶었거든!(공부도 했어..)



티니카, 한국을 만나다: 기대했던 한국과 직접 가 본 한국
ⓒ티니카가 상상한 한국에서의 티니카

미지의 나라 한국에 대한 나의 기대와 지식은 대부분 스웨덴에서 본 한국 드라마나 한국에서 살던 외국인들이 찍은 유투브 비디오에서 왔어.. 유투브와 드라마가 나의 지식창고였지! 휘황찬란한 네온사인, 많은 사람들, 음악과 소음으로 가득한 거리, 내가 공부하던 우메오랑은 완전 반대였지.. 정말 재밌어 보였어!! 한국 사람들에게 스웨덴은 굉장히 평화롭고 조용한 곳이지만, 나에게는 너무나 지루한 곳이었거든. 한국에 가기 전 한국 드라마를 보며 나도 드라마 여주인공럼 편의점 앞에서나 포장마차(티니카는 Plastic tent라고 했는데, 한동안 도희는 알아듣지 못했다)에서 소주 들이켜는 생활 상상하기도 했지.


한국에 도착한 후 내가 느낀 한국은 사실 기대했던 것과 많이 비슷했어. 특히 유흥면에서! 스웨덴에는 거의 유흥거리가 없으니까 굉장히 신선하고 재미기도 했고. 교환학생 첫 주에 많은 외국인 친구들과 버디와 한국식 치맥을 즐기기 시작한 후 나는 내가 살던 홍대 신촌 거리를 사랑했어. 시끌벅적한 밤문화, 휘황찬란한 네온사인, 버스킹, 수많은 사람들… 도시가 생생하게 살아있는 느낌이었어(티니카는 진심으로 I loved it이라 말했다)! 교환학생 기간이 한 학기밖에 안 되어서, 깊숙이 한국 사회를 경험했다고 할 수는 없었지만, 사람이 적고, 평화롭기 그지없는 스웨덴에서 온 나에게는 한국의 역동적인 도시의 모습이 정말 인상 깊었지.


티니카, 다시 한국으로 향하다.
ⓒ티니카 인스타그램

    서강대학교에서 한 학기는 너무 짧았어! 스웨덴으로 돌아오고 나서도 반복적인 생활, 이미 다 익숙해진 환경에 싫증이 났고, 뭔가 내 삶에 변화를 주고 싶었지. 그렇잖아. 우리가 여행을 할 때는 평소에는 신경도 쓰지 않는 아주 작은 사소한 것도 굉장히 의미 있게 다가오잖아. 예를 들면, 호텔의 발코니가 너무 예뻐서 그 아름다움에 감동하고, 어쩌면 그냥 평범한 카페일지도 모르는 로컬 카페에서 커피 한 잔을 꼭 마시고 싶다던가.. 사람은 새로운 환경에서 온 몸의 감각이 깨고,  더 적극적으로 느끼는 것 같아. 내 삶의 변화를 위해 다시 스웨덴을 떠나고 싶었지. 더군다나 교환학생 시절 방과 후 수업으로 한글을 배웠는데, 언어가 정말 아름다워서 더 배우고 싶었지만 학기가 끝나 다시 우메오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거든. 한국어를 더 배우고 싶은 마음도 컸고, 한국에서 만난 좋은 친구들이 그립기도 해서 다시 한국으로 갈 준비를 했어. 스웨덴으로 돌아온 후 8개월 간 학업과 아르바이트를 병행하며 열심히 돈을 모으고, 교환학생이 아닌 한국어학당 학생으로 다시 서강대로 이듬해 8월에 돌아갔어! 한국어를 배워서 한국의 정치, 역사, 한국 사람들의 생각을 더 이해하고 싶었고, 특히 택시 탔을 때 한국어로 택시기사님과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어. 그 대화가 진짜 살아있는 대화잖아. 책이나 드라마, 영화를 통해 배우는 게 아닌…

    한국어는 1년 반 동안 배웠어. 교환학생 시절에는 ‘안녕하세요, 감사합니다’ 정도의 기본적인 표현만 알았지 내가 의사소통할 정도는 아니었거든. 하지만 언어를 조금씩 배우면서 내가 사랑하는 한국 사회, 한국 사람들을 좀 더 이해할 수 있게 된 것 같아. 교환학생 시절 김밥 천국에 갔을 때는 주인아주머니가 말을 걸어도 하나도 이해하지 못했는데, 한국어를 꾸준히 배우고 나서는 어느 정도 대화를 이어나갈 수 있게 되었어. 언어를 통해 한 사람과 연결된다는 사실은 정말 멋진 것 같아. 하지만 사실 한국어를 사용하면서 존댓말 때문에 불편한 점도 있었긴 해. 한 번은 내가  관심 있는 분야인 젠더 스터디가 한국에서는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궁금해서 서강대 교수님께 한국어로 이메일을 쓴 적이 있어. 한국어로 특히 교수님께 쓰다 보니 맞춤법이나, 존댓말 표현이 틀리지는 않을까 땀을 뻘뻘 흘리며 이메일을 보냈지. 운 좋게도 교수님과 이야기할 기회가 생겼는데, 참 희한한 게 한국어로, 이메일을 쓸 땐 굉장히 공손했고 교수님이 너무나 어렵게 느껴졌는데, 대화를 할 때 영어로 말하니 교수님과 나의 관계도 평등하고 좀 더 편안한 느낌이었어. 또, 스웨덴은 ‘평등’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나라이고, 위계가 거의 없는 나라여서 한국의 존댓말 문화, 언어와 나이 그리고 지위에서 파생되는 위계는 적응하기가 어려웠던 것 같아.



한국어를 배우면서 더 잘 알게 된 한국 사회, 티니카가 더 궁금한 것

    나는 젠더 스터디에 관심이 많아. 지금 내가 대학에서 공부하고 있는 분야이기도 하고. 내가 인생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나 스스로에 대해 아는 것’이야. 사실, 나는 중산층 백인에, 스웨덴이라는 그래도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기에 잘 사는 나라에서 태어나서 다양한 특권들을 누려왔다고 생각해. 하지만 젠더라는 프레임으로 보면 나는 역사적으로 사회적 약자였고, 여전히 약자로 여겨지지. 젠더는 사회를 규정짓는 큰 프레임 중 하나이고, 젠더 프레임이 교육, 직업, 성역할 등 다양한 사회제도와 가치관에 영향을 끼치고 있는 건 분명한 사실이야. 젠더 질서가 우리 인생에 끼치는 영향이 엄청난데, 가만히 팔짱을 끼고 불합리한 것을 보고 싶지만도 않았어. 우리가 변화를 원한다면  행동해야 하니까. 하지만 행동전에 내 행동에 타당성을 부여할만한 지식이 부족하다는 걸 깨달았어. 누군가가 젠더 프레임을 가지고 논쟁을 일으킬 때 단순한 나의 느낌이 아니라 리서치로 증명하고 싶었거든. 그래서 나는 젠더 스터디를 공부하게 되었어.

    그런데, 한국에는 젠더 스터디가 활발하지 않다는 걸 느꼈어. 스웨덴에는 굉장히 중요하면서도 사람들이 많이 공부하는 학문이거든. 그래서 한국에는 왜 그렇지 않은지 그 이유가 궁금해졌지. 한국에도 여성들이 살고 있고, 특히 한국 사회에는 사회구조적으로 또는 문화적으로 차별이나 압박받는 여성들이 많은데, 젠더 스터디를 가르치는 대학이 많지는 않더라고. 사실 스웨덴은 양성평등이 가장 잘 확립된 나라로 알려져 있지만 북유럽 국가 중에는 여성 참정권이 가장 늦게 인정된 곳이야. 19세기 초 스웨덴에의 여성들은 정치에 참여할 권리가 없어서, 고위층 여성들을 중심으로 여성들이 왜 정치에 참여해야 하는지 항의하고, 목소리를 높였지. 하지만 여전히 스웨덴 남자들은 여성들의 참정권을 인정하지 않으려 했어. 다행히도 열렬한 투쟁을 거쳐 스웨덴 여성들은 결국 1921년 참정권을 얻었지! 하지만 참정권을 얻은 이후에도 스웨덴 사회는 1960-70년 초까지 굉장히 가부장적인 사회였어. 대부분 여성들이 집안일을 하고 남성이 경제활동을 하는 오늘날의 한국과 비슷한 상황이었지. 그렇지만, 평등이라는 가치를 쟁취하기 위해, 또 노동시장의 경제활동 인구를 늘려 경제를 부흥시킬 목적으로 정부가 여성들의 노동시장 참여를 장려하고, 1974년 육아휴직 제도를 만들면서 양성평등이 조금씩 자리 잡혔던 것 같아. 사실 한국에 오기 전 한국 여성들에게 가해지는 성범죄나 불합리함을 익히 들어 알고 있었는데, 여성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통로는 많지 않다고 생각해. 그래서 계속 왜 한국에는 페미니즘 무브먼트가 없는가 자문하게 되었지. 기회가 되면 한국에서 젠더스터디를 해보고 싶어.



스웨덴과 한국 그 사이, 티니카가 하고 싶은 일

    많은 사람들이 스웨덴을 굉장히 살기좋은 이상적인 사회라고 생각하잖아. 하지만 스웨덴도 완벽한 사회는 아니야. 하지만 나는 양성평등, 육아휴직, 젠더평등 등 스웨덴 사회가 지켜온 또는 나아가고 있는 방향이 옳은 방향이라 생각해.  그래서 후에 여성학이나 페미니즘 리서치가 한국에서 유명해지면, 내가 스웨덴에서 배운 지식을  한국 사회에 나누고, 한국 사회에 대해서도 많이 배우고 싶어. 역사적으로 지식이 서구중심적으로 발전해왔지만 나는 지식이 서구중심적인 거에 동의하지 않거든. 또, 젠더 프레임을 넘어서 평등은 모든 인간이 추구해야하는 목표라고 생각해. 굉장히 이상적이지만 평등을 성취한다면 계층, 인종, 젠더 등 많은 차별로 인해 발생하는 사회적 문제가 해결될 거라고 믿어. 이 외에도 한국에 스웨덴을 더 알리고, 스웨덴에도 한국을 더 적극적으로 소개하고 싶어. 서로 두 나라를 모를 뿐이지, 알면 알수록 묘하게 닮은 부분도 많고 서로 배울 점도 많다고 생각해. 앞으로 한국 그리고 스웨덴에 대한 이야기를 양국의 많은 사람들에게 나누고 싶어.



티니카와 인터뷰를 하며, 나는 내 나라 한국에 대해 새로운 인상을 많이 받았다. 정신없고, 복잡하고, 소란스럽다고 생각한 거리가 다른 사람에게는 역동적이고, 활기차고, 살아있고, 문화로 가득한 공간이 될 수 있음을 느꼈다. 티니카와 대화하면서 내 마음 속 깊숙이 숨겨져 있었던 한국에 대한 그리움이 고개를 빼꼼 내민다. 긴긴 어둠과 추위에 포획되는 겨울에 접어들고 있는 우메오에서 휘황찬란한 서울의 익숙한 밤 공기를 상상해본다. 살기에는 편안하지 않아서 스웨덴에 대한 동경을 품고 한국을 도망치듯 왔는데, 어딜가든 사람 냄새 나는 우리 나라가 그립기도 하다. 나와 다른 배경에서 자란 친구를 통해 나의 고국을 새로운 프레임으로 바라보게 되는 것은 참 흥미로운 경험이다. 내가 익숙했던 것들이 티니카에게는 무척이나 흥미롭기도 하고 새로웠고, 부당하기도 했으며, 불편하기도 했다. 내가 경험한 스웨덴은 티니카에게 어떤 느낌으로 다가갈까? 우리의 다음 이야기가 기대된다.





× 스웨덴 페미니스트들과의 만남: https://brunch.co.kr/@enerdoheezer/69





작가의 이전글 스웨덴 사람이 알려주는 스웨덴 대표 음식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