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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컬쳐커넥터 김도희 Feb 08. 2017

스웨덴에서 김밥 100줄 만 사연

전 세계인이 김밥으로 대동 단결

'나는 한국에서 왔어. 아시아에 가봤니? 가장 관심 있는 아시아 국가는 어디니?'


스웨덴에서 지내는 동안 만난 수많은 사람들에게 이 질문을 던졌다. 이 곳에서 공부하는 학생들과의 접점을 찾고자 이 질문을 던지면, 대부분 일본 또는 중국을 말한다. 일본은 세계대전 이후부터 꾸준히 국력을 키워가며 전 세계 강대국들 사이에서 아시아의 강대국으로 자리매김해 왔다. 일본의 애니메이션, 소설 등 일본의 색채가 뚜렷한 문화도 일본의 인지도를 높이는 데 한 몫했음은 물론이다. 한편 중국은 급속한 경제성장과 더불어 국방, 하이테크, 자본, 인구수 등에서 끊임없이 발전해나가며 미국과 쌍벽을 이루고 있기에 슬프지만 어느 정도 이해할 수는 있는 대답이었다.


하지만 '한국 문화는 중국 문화랑 똑같지 않아?'나 김밥을 보고 '이거 초밥 아니야?'라고 친구들이 대답할 때마다 한국인으로서 굉장히 화가 나면서도 답답했다. 자신들의 고향인 유럽 국가들도 한 대륙에 오밀조밀 모여 살아 서로 유사하면서도 각 나라마다 고유한 문화가 있는데, 자신들이 익숙하지 않거나 모른다는 이유만으로 우리의 정체성을 이루는 한국의 고유한 문화를 부정해버리는 친구들이 가끔은 얄밉기도 했다.


사실, 우리나라에 대해 잘 모르는 것은 친구들의 탓이 아니라 생각한다. 역사의 어쩔 수 없는 파워게임의 결과이며, 스포트라이트는 모두가 받을 수 없기에 그럴 수도 있다고 스스로를 위로했다. 또한, 우리나라의 관광 마케팅이 한류가 강한 동남아시아를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에, 이곳의 대부분 유학생인 유럽이나 아프리카 친구들은 한국 문화 콘텐츠에 노출될 일이 적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런 현실 앞에서 마냥 손을 놓고만 있고 싶지는 않았다. 상투적이지만 한 명의 '민간 외교관'으로서 우리나라를 홍보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해보고 조금씩 시도해보았다. 한국문화는 나의 정체성의 큰 부분이며, 문화는 개인을 이해할 수 있는 기초라고 생각했다. 내 문화를 먼저 나누면, 자연스레 상대방은 자신의 문화를 나누게 되니까.


'어떻게 효과적으로 친구들에게 한국 문화를 소개할까?' 고민하다 국어를 가르쳐주기도 했고, 한국 관련한 책자를 선물하거나 영상을 보여주기도 했지만 가장 효과적인 수단은 '음식을 나눠 먹는 것'이었다. 우선, 친구들이 한식을 매우 좋아했다. 여러 가지 양념이 어우러져 풍부한 을 내는 한식을 한 번 맛보고 나면 계속 만들어 달라고 했다. 더군다나 친구들과 함께 요리를 하고 식탁에 둘러앉아 음식을 나눠 먹으면서 자연스레 음식에 녹아있는 우리 문화와 언어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고, 식사 시간 동안 우리의 관심 주제는 경제, 정치, 역사로도 뻗어 나갔다. 식탁은 음식뿐만 아니라 다양한 이야기들로 가득 찼다. 그래서 나는 음식을 만들기로 했다.


왜 김밥인가?

우리가 준비한 재료와 친구들이 만 김밥

특히 나는 친구들과 함께 맛있는 음식을 만들고 싶기도 했지만, 친구들이 평소에 잘 체험할 수 없는 것을 알려주고 재미를 선물하고 싶었다. '체험'할 때 느낀 '재미'와 손에 익은 감각은 쉽게 잊히지 않는 법이다. 불고기, 비빔밥, 호떡 등 외국인들에게 유명한 한국 음식들을 제치고 김밥을 선택한 이유는 외국인 친구들이 익숙하지 않은 '손'을 이용해 만드는 음식이기 때문이다. 친구들은 김밥을 손으로 그것도 집에서 직접 만들 수 있다는 사실에 놀라워했다.  일본 음식인 '초밥 롤'의 인기도 한 몫했다. 김밥을 만들 때마다 '이거 초밥 아니야?', '나도 초밥 만들어보고 싶어', '초밥이랑 김밥 뭐가 달라?' 등 수많은 질문 세례를 받을 때마다 직접 김밥을 만들 수 있는 자리를 만들어 그 차이점을 이해하고, 김밥의 참맛(!)을 보여줘야겠다고 생각했다. 특히, 각자의 두 손으로 자신의 아름다운 작품을 만들어낸다면 맛과 더불어 뿌듯함도 배가될 것이기 때문이었다.



교환학생들과 함께 추진한 글로벌 빌리지 행사(비빔밥, 잡채 호떡을 매년 만들었다)

학교에서 주최한 글로벌 빌리지에서 한국 테이블을 만들어 많은 사람들에게 한국 문화를 알리면서 김밥 워크숍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다. 잘 알지 못했던 한국 문화에 대해 한국 사람들과 함께 한국 음식을 먹고, 이야기를 나누면서 우리나라에 대해 조금씩 알아가고 적극적으로 관심을 표명한 친구들을 보면서 더욱 적극적으로 우리나라에 대해 알릴 수 있는 일들을 해나가야겠다고 다짐했다. 생각이 생각에만 머무르면 그 어떤 파장도 일으키지 못하는 법. 필요한 것들을 생각하며 내게 주어진 네트워크를 이용하기로 하여 함께 준비하기로 했다. 혼자 하기는 불가능해도 여러 명이 모이면 불가능한 것은 없기 때문이다. 


햄, 참치, 오이, 당근 등 김밥의 기본적인 속재료는 스웨덴에서도 구할 수 있지만 김밥 김, 단무지, 우엉, 김밥말이 등과 같이 특이한 재료들은 이 곳에서 절대로 구할 수가 없었다. 어떻게 하면 이 난관을 헤쳐나갈 수 있을지 고민을 하다 1월에 우메오 대학으로 오는 한국 학생들이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국제교류처에 연락을 드려 새로 파견 오는 학생들의 이메일 접수를 요청해 받았고, 일면식도 없는 학생들에게 메일로 나의 행사 취지를 설명하고 김밥 김, 김밥말이, 단무지 및 우엉을 사 와 달라고 부탁드렸다. 학생들 외에도 한국을 방문한 국제교류처 직원 분 김과 단무지/우엉을 사다 주셨고, 학생들이 이메일을 읽고 출국 전 시간을 내어 필요한 재료들을 사서 우메오로 도착해서 우리는 한인/아시안 마트 없이도 스웨덴 북부 우메오에서 김밥을 만드는데 필요한 재료들을 모두 갖출 수 있었다. 이 외에 우리 손으로 친구들의 한글 이름을 포스트잇에 적어주었고, 한국에서 가져온 커피 믹스, 미숫가루 등으로 피카(Fika)를 준비하고, 대사관 이메일을 보내 스폰으로 받은 한식 관련한 책자들을 전시해 사람들에게 나누어주었다. 여러분들의 도움으로 김밥 외에도 한국 문화를 경험할 수 있는 다양한 도구들이 마련되었다!




Do you want to build a Kimbap?

우메오 김밥 워크샵 포스터

12명의 한국 학생들이 모여 김밥 워크숍 콘셉트 기획을 하고, 프로그램을 짰다. '겨울왕국'인 우메오에 진짜(Authentic) 한국의 김밥이 도착했다는 것이 우리의 콘셉트였다. 콘셉트를 바탕으로 포스터를 만들고, 짤막한 로고송도 만들어 이벤트 페이지에 홍보를 했다. 50여 명을 수용할 수 있는 큰 장소를 찾을 수가 없어 어려움을 겪던 중 여러모로 수소문한 끝에 국제교류처의 도움으로 우메오 강가가 내려다보이는 곳에 조그마한 키친을 빌릴 수 있었다. 세션을 2개로 나누어 20명씩 구글 폼을 이용해 접수를 받았는데, 접수가 마감된 이후에도 참가를 하고 싶다고 연락 온 사람이 많았다. 많은 관심에 모두가 힘입어 50여인 분의 김밥 재료 준비를 마치고, D-day인 2월 5일 우리는 스웨덴 북부 우메오에서 '최초'로 김밥 워크숍을 개최했다.







2017년 2월 5일, 우메오에 참기름 냄새가 진동하다

    

12시부터 진행되어 4시쯤에 마무리된 워크숍에는 총 45여 명이 참석했고, 1인당 기본 두 줄의 김밥을 만들었다. 한국 친구들이 주방에서 따뜻한 된장국을 끓이고 밥을 만들어 제공하는 동안, 우리의 게스트들은 열심히 또 다른 한국 친구들의 도움을 받아 자신의 김밥을 만들었다. 참치, 소고기, 채식 소시지 등 각자의 식성에 따라 재료를 골라 자신의 손으로 직접 김밥을 만드는 친구들은 그 어느 때보다 신나 보였다. 서로 다른 문화를 가진 우리들이었지만 김밥을 말며 김밥에 담긴 이야기뿐만 아니라 서로의 문화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또한 김밥을 말아 밥을 먹는 동안 모든 이들은 각자 어떻게 스웨덴에 오게 되었는지, 어떤 공부를 왜 하고 있는지 등 각자의 역사를 들려주었다. 테이블에는 각양각색의 다양한 김밥 재료들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서 스웨덴 우메오로 온 각양각색의 이야기들이 놓였고, 여러 재료가 어우러져 맛있는 김밥으로 테이블을 꽉 채웠듯이, 여러 사람들의 이야기가 어우러져 더욱 풍성하고 맛깔 난 워크숍이 되었다. , 집에서 가족들과 밥을 먹는 느낌이었다. 각자의 집을 떠나 스웨덴에 모인 우리는 김밥을 함께 만들고 먹는 동안 가족이 되었고, 스웨덴은 우리의 집이 되었다.


처음 한국 음식을 만들어 먹은 친구들은 우리에게 멋진 워크숍을 기획해주어 고맙다고 했지만, 오히려 한국 문화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직접 비용을 지불하며 워크숍에 참여해 준 친구들에게 고마웠다. 이번 김밥 워크숍이 계기가 되어 우리나라의 문화에 대해 조금이라도 친구들이 더 큰 관심을 가진다면, 내가 김밥 워크숍을 기획한 소기의 목적은 달성했다고 생각한다. 더군다나 나와 한국 친구들 역시 더 넓은 세상에 대해 배운 시간이었다. 


이 날의 김밥은  스웨덴이라는 새로운 집에서 전 세계인을 대동 단결시켰다. 김밥을 함께 나눠먹으며, 우리는 가족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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