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에 우열이 있나요, 내가 좋으면 장땡이죠.
'Hello Korea, 안녕하세요, 대한민국'. 분명 한국어인데, 이벤트 메인 페이지 사진 속에는 우리와는 전혀 다르게 생긴 낯선 소녀 두 명이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한 패션을 하고 서 있었다. 이벤트를 소개하는 스웨덴어로 적힌 본문을 잘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구글 번역기에 의하면 한국 대중가요(K-pop)를 좋아하는 스웨덴 사람들로 구성된 댄스팀이 공연을 연다는 것이었다. '스웨덴 북부 인구 13만의 작은 도시 우메오에 K-pop을 공연하는 스웨덴 사람들이라니?'. 우메오에 살면서 K-pop댄스 그룹을 만나게 될 거라는 생각은 하지도 못했는데, K-pop으로 공연을 한다고 까지 생각하니 놀랍고 반가운 마음 반과 의아한 마음 반이었다. 사실 한국 문화가 우리나라나 아시아를 벗어난 지역에서는 주류 문화도 아닐 뿐더러, 스웨덴에는 한국 자체에 대해 무관심하거나 무지한 사람이 더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더 반갑고 궁금한 마음이 앞서 지난 5월 우메오 시내의 한 아시아 식당에서 열린 우메오 최초(?)의 스웨덴 K-pop 그룹 콘서트에 참가했다. 식당 한편에 자리 잡은 무대에서는 내 귀에 익숙한 한국 노래들이 흘러나오고 있었고, 무대에는 낯설지만 어딘가 낯설지 않은 스웨덴 사람들이 익숙한 멜로디에 맞춰 멋진 안무를 선보이고 있었다. K-pop 그룹을 대표하는 군무까지 완벽하게 선보이며. 내가 처음으로 스웨덴 K-pop 댄스그룹 UnPretty Dance Crew(UPDC)를 만난 날이었다. 그 날 공연이 끝난 후 UPDC의 연락처를 받았었는데, 지난주 오랜만에 그들을 우메오 시내 한 카페에서 다시 만났다. 그들의 이야기가 궁금했던 나는 멤버들에게 인터뷰를 요청했고, 흔쾌히 내 인터뷰 요청에 응해주었다.
UPDC, 그 것이 알고 싶다.
각자의 개성이 뚜렷한 멋지고 아름다운 멤버들로 구성된 UnPretty Dance Crew(UPDC). 왜 하필이면 그룹 이름을 UPDC로 지었냐는 나의 질문에 그들은 "별다른 이유는 없어요. 한국 방송 Unpretty Rap Star에서 따왔어요"라고 웃으며 말한다. 팀 이름을 지을 때 굉장히 고심하며 작명했을 거라 생각했던 나의 기대는 한순간에 깨지고 말아 적잖이 당황했다. 전 세계를 휩쓸고 있는 K-pop 아이돌 그룹 BTS가 '방시혁이 탄생시킨 소년단'이라는 루머를 들었을 때의 느낌이랄까? 물론, 방탄소년단의 그룹 이름은 '10대의 편견과 억압을 막아주는 소년들'이라는 뜻이라곤 하지만!
UPDC는 2014년 가을 결성되었다. 현재 UPDC의 주요 멤버 중 한 명인 Julia(율리아-스웨덴에서는 J를 무음으로 읽는다)가 우연히 YouTube(유투브)에서 K-pop을 접하게 되면서부터다. 발레, 재즈, 스트릿댄스 등 다양한 댄스 장르를 어렸을 때부터 접했던 그녀는 K-pop을 처음 접했을 때 한 번도 접하지 못했던 새로운 댄스와 음악 장르라 굉장히 흥분되었다고 한다.
"멋진 안무, 퀄리티가 높은 뮤직비디오, 새로운 비트의 음악 등 새로운 음악 장르에 너무 흥분됐죠. 그래서 평소 친하게 지내던 Olivia(올리비아)에게 함께 K-pop 그룹을 결성하자고 제안했어요. 그리고 흔쾌히 그녀가 받아 들였구요".
Julia(율리아)와 함께 항상 UPDC의 댄스 커버를 담당하는 Olivia(올리비아) 역시 댄스에는 일가견이 있다. 발레, 탭댄스, 재즈, 모던댄스 등 다양한 댄스 장르를 어렸을 때부터 익혀온 그녀에게도 K-pop은 전혀 새로운 세상이었다.
"저는 J-pop을 통해 K-pop을 처음 접했어요. 평소에 일본 문화에 관심이 많아 애니메이션이나 J-pop을 듣곤 했거든요. 주변에 저와 관심사가 비슷한 친구들이 '한국 가요 한 번 들어볼래?'라고 제안했던 것이 지금까지 이르렀죠. K-pop은 J-pop과는 많이 달랐어요. 음악, 댄스, 스타일, 아티스트들이 팬들과 적극적으로 소통하는 자세 등 K-pop의 총체적인 문화가 매력적이었죠."
Julia(율리아)와 Olivia(올리비아)는 K-pop을 단순히 한 음악 장르로 여기기보다 종합 예술이라 생각했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K-pop은 대부분 아이돌 그룹의 곡들을 의미한다. 아무래도 인터넷에는 아이돌 그룹의 커버 동영상을 더 접하기가 쉬울뿐만 아니라, 퍼포먼스적인 요소가 강해 언어의 제약이 있더라도 더욱 강렬하게 남는다고 말했다. 함께 인터뷰에 참가한 음악을 공부하는 Marcus(마르커스)도 이에 힘을 보탠다. "저는 한국 힙합도 좋아해요. K-pop은 음악, 춤, 공연 구성, 팬과의 소통 등이 종합된 총체적인 문화 예술이에요. 어떤 사람들은 K-pop 아이돌 그룹 노래가 후킹적인 요소가 많고, 멜로디나 비트가 뻔하지 않느냐고도 하지만 우리에게 기존에 익숙한 미국이나 영국의 대중적인 팝과는 달라요. 사실 미국이나 영국의 팝의 비트도 뻔할지도 모르죠". 자신이 좋아하는 예술을 다른 사람들과 함께 즐기고 싶어 UPDC초기 멤버들은 그룹 멤버들을 더 모으기 시작했다.
"사실 아직까지 한국 문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스웨덴에는 많지는 않아요. 한국 문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고는 있지만 여전히 하위문화로 여겨지죠. 때문에 제 생각에는 사람들이 자신이 한국 문화를 좋아한다는 것을 드러내기를 꺼려하고 방 안에서만 홀로 즐기는 것 같아요. 그래서 더욱 그 사람들을 한 데 모아 함께 재밌게 즐기고 싶었고, 우리 그룹 홍보를 하는데 더 열심히 노력하게 되었죠"라고 Olivia(올리비아) 의견을 보탰다. 처음 단 두 명으로 시작한 UPDC는 매년 더 많은 사람들이 참여하고 있다고 하는데, 올 해는 20명 정도가 모였다고 한다.
UPDC, 무엇을 하나요?
UPDC의 주된 활동은 두 가지다. 첫 째는 매주 화요일과 일요일 두 시간씩 K-pop 안무를 연습하는 것이다. 따로 안무를 가르쳐주는 선생님이 있느냐는 질문에 "YouTube(유투브) 동영상과 우리 멤버들이 최고의 선생님이에요"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멤버들이 서로 YouTube(유투브) 동영상 커버를 보고 안무를 파악한 후 서로 상의하며 한 곡 전체 안무를 배워나가는데, 각자 멤버들이 기존에 다양한 댄스 장르에서 경험이 있어 기본적인 스텝이나 팔 동작 등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많이 된다고 한다. 그리고 한 곡을 완성하면 매주 화요일과 일요일 그룹 멤버들에게 그 안무를 가르쳐 주며 함께 K-pop을 연습하고 즐기는 것이다. 둘 째는 한국 문화를 알리기 위한 다양한 행사들을 기획하고 참여하는 것이다. UPDC의 멤버들은 댄스 그룹 외에 별개의 비영리 조직을 만들어 댄스 워크숍이나, 한국 문화를 소개하는 이벤트를 기획하고 운영하고 있다. "학교에서 10대 학생들에게 K-pop을 가르치기도 했고, 쇼핑몰이나 대학교에서 공연이나 플래시몹을 하기도 했어요. 앞으로는 좀 더 체계적이고 파급력 있는 행사들을 진행하고 싶어요." 자발적으로 한국문화를 알리는 스웨덴 사람들. 이익단체가 아니기에 별도로 수익이 없는 상태에서 이 행사들을 어떻게 운영하는 것일까? 너무나도 현실적인 질문에 UPDC는 댄스그룹이 아닌 별도로 설립한 비영리조직을 통해 스웨덴의 지방자치단체 격인 Kommun(코뮨)에 예산지원을 요청해 행사를 운영하기 위한 자금을 지원받는다고 했다.
좋아하는 일을 열심히 노력하며 연습하다 보니 작년 8월 UPDC에게는 큰 경사도 있었다. 바로 UPDC가 K-pop World Festival 스웨덴 예선에서 우승을 한 것이다. 걸그룹 여자친구의 노래 Fingertip을 커버했는데, 두 번째 도전한 끝에 따낸 소중한 우승이었다. "정말 믿기지 않았어요. 그동안 열심히 노력한 것이 보상받는 느낌이어서 기쁘기도 했고, 우리가 좋아하는 일을 통해 스스로의 힘으로 이뤄낸 결과물이라 더욱 뿌듯했죠." 아쉽게도 창원에서 열린 제 1회 K-pop World Festival에 진출하지는 못했지만, UPDC는 올해 2018년 여름에 열릴 K-pop World Festival에 다시 도전장을 내민다고 한다. "우승 후 단 이틀 동안 저희가 공연했던 곡을 안무뿐만 아니라 노래까지 마스터해서 커버를 만들었어야 했는데, 한국어가 익숙지 않았던 멤버들이 많았기에 노래까지 마스터하는 것은 무리였어요. 전 세계에서 단 12팀만 한국으로 갈 수 있었고, 유럽에서는 단 두 팀만 결선에 진출했었죠. 아쉽게 저희는 결선까지 가지 못했지만 정말 소중하고 값진 경험이었죠!"
UPDC, 앞으로의 계획은?
자신들이 좋아하는 일을 더 많은 사람들과 함께하기 위해 끊임없는 도전을 해 가는 UPDC의 앞으로의 계획은 무엇일까? "사실 스웨덴에서의 한류 붐은 덴마크나 핀란드 등 이웃나라 북유럽 국가에 비하면 작은 편이에요. 또 스웨덴은 영토가 너무 커서 한국 문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결집되기도 쉽지 않죠. 더군다나 저희가 사는 우메오는 스웨덴 내에서도 북쪽에 위치해있어 한류 문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상대적으로 많은 수도 스톡홀름이나 예테보리의 단체들과 결집하기가 굉장히 어려워요. 대신에 저희는 스웨덴 북부의 구심점이 되어 한국 문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을 많이 모으고, 그 즐거움을 함께 나누고 싶어요." 가까운 미래 올 4월 말 우메오에서 열리는 하위문화를 소개하는 축제에 참가하는 UPDC는 이 행사에서 K-pop뿐만 아니라 한국을 소개하는 자리를 기획하고 있다고 전하며 인터뷰를 마무리했다. "궁극적으로는 스웨덴과 한국을 잇는 다리가 되고 싶어요. 때문에 앞으로는 우메오에 오는 한국 교환학생들과도 함께 참여할 수 있는 행사들을 많이 기획하고 운영해볼 계획이에요".
부끄럽지만 고백하건대, 나는 한류를 좋아하는 팬들 중 특히 서구권 팬들을 볼 때마다 낯설게 느끼곤 했다. 아직까지는 아시아 이외의 지역에선 한국 문화가 주류문화가 아닐 뿐더러 우리와는 정말 다르게 생기고, 확연히 다른 문화권에서 자라난 사람들이 우리 문화를 향유하는 것이 흔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중국 팬이나 다른 지역 아시안 팬들이 한류에 열광하는 거나, 우리나라나 아시아 사람들이 헐리웃 스타들에 열광하는 거나 다름없는 현상인데 말이다. 비주류 문화인 우리 문화에 관심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알리는 외국인 친구들(특히 서구권)을 보면 뿌듯함이나 고마움을 느낀 건 문화의 영향력의 차이에서 나도 모르게 내 의식의 기저에는 사대주의가 깔려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정말 자신들이 사랑하는 음악과 춤이라는 예술적 매개체를 통해 K-pop이라는 그들에게 새로운 장르를 탐구하는 UPDC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문화의 우열을 무의식적으로 가졌던 나를 깨닫게 되었다.
자국의 문화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좋아하는' 한국 문화를 더 많은 사람들과 함께 나누고 싶어 4년째 꾸준히 활동해오는 UPDC. 댄스그룹 그 이상을 넘어 우리나라를 스웨덴에 알리는 민간 외교관이었다. 개인적으로도 한국 문화를 스웨덴에 소개하는 데 관심이 많았기에, 내가 현재 살고 있는 이 곳 우메오에서 나와 비슷한 목표를 가진 친구들을 만난 것은 행운이었다. 앞으로 우리는 어떤 새로운 챕터들을 함께 쓸 수 있을까? UPDC와의 인터뷰는 너무나 멀지만 서로에 대해 궁금한 점이 많은 한국과 스웨덴, 스웨덴과 한국을 연결하는 더 많은 다리들이 앞으로 생기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꿈꾸게 된 시간이었다.
- UPDC 공식 YouTube: http://bit.ly/2DQC6UA
- UPDC 2017 K-pop World Festival Sweden 우승 동영상: http://bit.ly/2noZf6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