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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컬쳐커넥터 김도희 Aug 11. 2018

당신의 소울푸드는 무엇인가요?

소울푸드를 정의하는 데 감정을 제한하지 않기로 했다.

'영혼의 음식'인 소울푸드(Soul Food)는 원래 미국 남부 지역에 노예로 끌려와 정착하게 된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의 요리 문화에서 유래한 개념이에요. 소울(Soul)이라는 단어가 주는 무게감이 결코 가볍지는 않지만, 과거의 노예 제도에서 비롯된 음식이라 하니, 그 단어의 무게감이 제 가슴을 더 짓누르는 것만 같아요. 그 당시 노예들의 소울푸드는 뭐였을까요? 바로, 전 세계 사람들이 사랑하는 음식 '프라이드치킨'이랍니다. 우리에겐 퇴근 후 맥주 한 잔을 떠올리게 하고, 즐겁고 시끌벅적한 파티나 피크닉에 항상 배달음식으로 익숙한 치킨이 노예제도에서 비롯된 음식이라니요? 치킨에 녹아 있는 눈물을 상상해보셨나요?


내게 영감을 준 매거진 F
노예제도가 존재하던 시절, 미국 남부의 농장에서 혹독한 노동을 해야 했던 노예들이 1년 중 고기를 먹을 수 있는 날은 얼마 없었다. 그래서 고기를 먹는 날을 아주 신나고 특별한 날이라는 뜻으로 '빅타임 Big Time'이라고 불렀다. 하지만 이들에게 주어진 고기는 백인 주인들은 먹지 않는 특수 부위인 경우가 많았다. 노예들은 닭 날개, 목, 닭발 같은 부위들에 향신료를 듬뿍 바르고 튀김옷을 입힌 뒤 끓는 기름에 통째로 튀겼다. 이들에게 치킨이 소울 푸드인 것은 '고통의 기억을 담은 영혼의 음식'이기 때문이다.  

-이욱정 PD(요리인류), 매거진 F 발췌


New Orleans Fried Chicken Festival, (출처: Nola.com)

저는 사실 프라이드치킨이 어디에서 기원했는지 깊게 생각해본 적이 없었어요. 매거진 F를 접하기 전까지는요. 그저 맛있게 먹었을 뿐이고, 한 번 생각해봤자 제 머릿속엔 KFC가 떠오를 뿐이었죠. 어디서든 맛있게 프라이드치킨을 먹을 수 있게끔 치킨의 대중화에 기여한 KFC창립자 Colonel Sanders(커넬 샌더스)가 프라이드치킨의 창시자라 생각했어요. 그런데 프라이드치킨은 바로 아프리카에서 미국으로 끌려온 노예들의 음식이었던 거죠. 특히 아프리카와 유럽으로부터 가까운 미국 뉴올리언스에 특히 노예들이 많이 팔려왔다 해요. 그래서 지금도 이 곳에 가면 패스트푸드점에서부터 파인 다이닝을 막론하고, 거의 모든 식당에서 프라이드치킨은 빠지지 않고 등장해요. 1년에 한 번 먹던 음식이, 1주일에 한 번도 아닌 매일 먹는 음식이 되었고, 매년 축제까지 열리죠.  


매거진F를 읽으며 뉴올리언스의 사람들이'결핍과 차별'의 역사적 방증인 프라이드치킨을 먹으며 과거의 아픔을 기억하고, 보다 더 나은 현재를 만들어 나가며, 변화한 미래를 위해 현재를 치열하게 살아가고 있다 느꼈어요. 특히, 뉴올리언스의 사람들이 프라이드치킨을 '즐길 수 있는' 이유는 차별의 아픔으로 눈물 진 역사를 외면하기보다 그에 마주 서고, 그 감정을 오롯이 다 겪어냄으로써 그 감정과 아픔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과정에 있기 때문이라 생각이 들었어요. 두려움을 온전히 다 느끼면 그 두려움을 부정하기보다 끌어안을 수 있는 것처럼요. 비로소, 저도 소울푸드가 왜 '영혼의 음식'이라 불리는지 조금은 알 것 같았어요. 소울푸드의 방점은 음식을 통해 우리가 온전히 경험하는 감정에 있다고 저만의 정의를 조심스레 내려봐요. 



여러분의 소울푸드는 무엇인가요? 

제게 소울푸드는 순간에 제가 오롯이 겪어내는 감정이 담긴 음식이에요. 그 감정이 슬픔, 아픔, 고됨일 수도 있고, 기쁨, 환희, 행복과 같은 긍정적인 감정일 수도 있다 생각해요. 사실, 슬프고 화나고 아픈 감정이, 행복하거나 기쁜 감정보다 우리 가슴을 치는 강도가 더 세기에 소울푸드가 대부분 슬픈 기억과 관련되는 건지도요. 하지만 저는 소울푸드를 정의하는 데에 그 어떤 감정도 제한하지 않기로 했어요. 개인에게 다가가는 어떤 감정의 크기와 무게는 상황에 따라서나 개인의 성향에 따라 다 다르다고 생각해요. 다만, 한 개인이 오롯이 겪어내는 어떠한 감정이 중요한 거죠.

당신의 소울푸드는? (출처:Pixabay)


그것에 대해 알고 싶어요.

저는 음식을 통해 사람들과 소통하는 일이 좋아요. 음식을 함께 요리하고 나눠먹는 동안 우리는 요리에 담긴 언어, 역사, 과학, 문화 등을 배우기도 하지만 한 개인의 세계를 알아간다 생각해요. 우리가 만드는 음식에는 만드는 사람이 자라온 환경, 식습관, 입맛, 취향이 담기고, 그 음식과 관련된 개인의 기억이 담겨요. '내가 먹는 것이 곧 나다'라는 말의 대상을 확장하면 우리가 먹는 것이 곧 우리가 되고, 함께 음식을 나누는 우리는 서로의 취향과 기억의 조각들을 요리하며 서로 연결되는 경험을 하죠. 조금씩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마음의 조각들을 끄집어내는 거예요. 상대를 알게 되면, 상대가 자라온 환경과 문화를 조금씩 이해하게 되고, 그 이해를 바탕으로 인류는 다름을 존중하기도 하고, 서로의 아픔을 보듬을 수 있게 되지 않을까요. 그게 제가 바라는 작은 유토피아거든요. 


유토피아. 

어느 곳에도 없는 장소라고 하지만, 그곳에 가까워지기 위한 한 발자국을 내딛는 건 의미 있는 일이에요. 그리고 저는 유토피아에 향하는 첫 발자국인 한 사람을 이해하는 일이 음식을 통해 이뤄질 수 있다 생각해요. 개개인의 소울푸드를 함께 나눠보는 것. 그 한 그릇에 담긴 기억의 조각, 감정, 이야기를 조심스레 꺼내보고 싶어요. 소울푸드 한 그릇에 담긴 개개인의 특별한 이야기가 누군가에게는 위로가 될 수도 있고, 추억이 될 수도 있고, 몰랐던 상대를 이해하는 통로가 될 수도 있어요. 또한, 기쁨의 순간을 상기시키며 힘을 줄 수도 있죠. 어떤 감정을 털어내지 못한 사람에겐 응어리진 감정을 다시 돌아보고, 자유로워 지게끔 도와줄 수도 있어요. 그래서 이제 시작하려 해요. 개개인의 소울푸드를 나눠보는 것. 함께 한 스푼 하시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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