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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컬쳐커넥터 김도희 Aug 21. 2018

로마에서 로마 법을 따르라?

한국에 왔으니 왜라고 묻지 말라고 합니다.

When you are in Rome do what romans do
'로마에서는 로마법을 따르라'에 물음표를 던지다.

한국으로 돌아온 지 두 달이 조금 넘었어요. 외국에 살다가 한국으로 돌아오게 되면 가장 무엇을 걱정하시나요? 사실 저는 스웨덴에서 2년밖에 살지 않았어요. 어떤 사람들은 '2년이나?'라고 물을 수도 있지만, 제게는 '2년 밖에' 되지 않던 정말 후-딱 지나간 짧은 2년이었어요. 경쟁적이고, 보이는 것이 중요하며, 무엇을 더 소비하는지 뽐내는 것이 중요하게 여겨지곤 하는 한국 사회가 싫어서 스웨덴으로 떠났죠. 하지만 취직 및 개인적인 사정을 연유로 한국으로 돌아오기로 결정했어요. '스웨덴을 떠나는 게 정말 잘하는 결정일까?', '한국에 가서 밥벌이는 할 수 있을까?' 싶은 현실적인 문제에서부터 '돌아가더라도 내가 지키고 싶은 스웨덴에서 배운 가치들을 한국에서 잘 지켜낼 수 있을까?'와 같은 가치 충돌에 대한 걱정도 앞섰죠.


한국에 돌아온 지 두 달이 지난 지금, 혹시나 했지만 역시나에요. 한국에 오자마자 겪은 가치 충돌이 몇 가지 있어요. 오늘은 그중, 제가 취업준비생으로 경험한  '질문하지 않는 우리 사회'의 한 일면을 공유하고자 해요. 물론 제 귀에 싫은 이야기들이어서 어쩌면 제가 하는 말들이 불평불만일지도 모르겠어요. 청년실업이 하늘로 치솟고 있는 요즘, 취업도 못한, 경제적으로 아직 완전히 독립하지 못한, 서른을 앞둔 대한민국 여성 구직자 신분인 주제에 제 분수 모르고 이런 글을 쓰는 걸지도요. 그렇지만, 오늘은 솔직히 제가 느낀 불평불만을 좀 해보고 싶어요. 그리고 현재 열심히 오늘을 살아가고 계신, 열심히 일하고 계신 여러분의 이야기도 너무 궁금해요. 전 아직 조직에서 오랫동안 속해 일을 해 본 적이 없거든요. 이 글을 읽고 여러분의 생각을 나눠주시겠어요? 실제로 채용을 담당하시는 분들의 솔직한 이야기도 듣고 싶어요. 제대로 해보지도 않고 불평만 하는 저의 편협한 생각에 반기를 들여주셔도 되고, 제가 궁금한 것들에 대답해 주셔도 되고, 저를 채찍질해주셔도 좋아요. 그저 사람들이 여러분이 자신의 목소리를 들려주시면 좋겠어요. 나름의 이유는 있을 테니까요.



왜?라는 질문을 하지 말라고 합니다
그 누구도 질문을 하지 않던, 고요했던 7시간.

한국에 돌아온 제 신분은 서른을 코 앞에 둔 신입 여성 구직자예요. '그래, 긴 방황을 끝냈으니 이제 정신 차리고 현실적으로 살자!'라고 스스로 다짐을 매일 되새기며, 나름의 구직 시도를 준비하고 있던 중 하반기 공채에 대비해 친구로부터 제가 졸업한 학교에서 기업 인적성 특강이 열린다는 소식을 입수했죠. 대기업만 바라보는 것은 아니지만 한 번  어떻게 준비하는지 궁금했거든요.


'언니, 학교에서 인적성 특강 열리는데 같이 들을래?'

'그래, 같이 들어보자. 나도 본격적으로 열심히 해야지!'


한 번도 한국에서 저는 취업을 준비한 적도 없었고, 제가 모르는 부분이 많았기에 정보를 얻고 인적성이 어떤 것인지 한 번 살펴보자 하는 차원에서 4일 연속 열리는 인적성 특강을 신청했어요. 화요일부터 금요일에 걸쳐 아침 10시부터 6시까지 두 번의 모의고사와, 언어, 추론, 수리, 공간감각 등 분야별로 강사님의 특강이 준비되어 빽빽하게 잡혀있었어요. 아침 일찍부터 빡빡한 짜인 수업만큼 강의실도 100여 명의 학생들로 발 디딜 틈 없이 꽉 찼죠. 30cm 남짓되는 의자에 몸을 쑤셔 놓고, 100여 명의 학생들은 무대 위의 스크린을 묵묵히 지켜보고 있었어요. 하반기 취업을 위한 결연한 의지를 스스로 다지며, 긴장의 끈을 놓지 않았죠. 마치 수능을 앞둔 고3 수능 특강 수업 같았달까요?


스웨덴에 살면서 제가 얼마나 한국 사회를 흑백 안경을 쓰고 편협하게 판단했는지 자성했기에, 우리나라 기업 문화와 사회를 편견 없이 보고 그들이 필요로 하는 것을 나도 성실히 준비해보자는 마음으로 저도 30cm 남짓한 제 공간을 확보했습니다. 수 백 마리의 일벌들이 치열하게 벌집을 짓기 위해 자신의 역할을 다하는 것처럼, 저도 이 사회에서 제가 다할 수 있는 역할을 찾고 싶거든요. 그리고 훌륭한 사람들 사이에서 배우고 싶거든요.


그런데, 제 의지가 너무 약했던 걸까요? '불평불만하지 말고 남들도 다 하는데, 나도 해야지!'라는 심정으로 그 자리에 갔지만 이해할 수 없는 문제와 광경들에 저의 의지는 한 풀 꺾이고 말았죠. 네, 고백하자면 첫날 가장 일반적으로 적용된다는 굴지의 대기업의 적성 테스트를 보았고, 저는 단 20%만 풀 수 있었습니다. 제가 수학 공식도 모르고, 공간 감각도 부족하고, 추리력도 모자라서 20%만 풀 수 있었던 거예요. 열심히 준비하신 분들은 더 많이 풀고 맞춘 분들도 분명 있을 거예요. 그래도 제 마음속에 떠오르는 질문은 막을 수가 없었어요. '이 수많은 문제들을 과연 제대로 제한 시간 내에 풀어내는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 그리고 이 문제를 '왜' 만들었고, 이 문제를 통해 회사는 무엇을 '평가'하고자 하는 걸까? 이 문제를 푸는 사람들은 그 걸 알고 있을까?'.


대기업에서 8년 정도 인사팀에서 근무하셨던 선생님은 우리에게 한 문제 한 문제마다 회사에서 업무와 관련해 보고자 하는  점이 있다고 말씀하셨어요. 예를 들면, 보기에 주어진 도형 두 개를 끼워 맞췄을 때 완성될 도형의 모양을 맞추는 문제 같은 경우, 우리가 일을 할 때 미래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 예측하며 업무를 진행할 줄 아는지를 묻는 거라고. 사실, 어찌 보면 일리가 있는 말이었어요. 정말 어~~~찌보면  출제자 의도가 그럴 수 있겠구나.  그리고 8년 동안 대기업에서 인사담당을 하셨던 분의 말씀이었어요. 그분도 치열하게 살아가는 우리 젊은 취업준비생들을 위해 자신의 경험과 지식을 열정적으로 나누며, 시험에서 좀 더 좋은 점수를 얻기 위해 우리에게 가르침을 주고 계셨죠. 고마우신 분이에요. 그렇지만, 전 선생님의 열정에는 감사했지만, 선생님의 가르침을 곧이 곧대로 받아들이지는 못했어요. 뭔가 잘 못되었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중/고등학교 내내 답을 찾기 위해 수많은 공식을 외우고 정답을 찾아야 했던 나의 10대의 모습이 눈앞에 아른거렸어요. 선생님께서 우리에게 몇 시간에 걸쳐 가르쳐 준 방법은 제한 시간 내에 더 빠르게 '정답'을 찾는 기술이었어요. 그리고 100여 명의 학생들은 아무 말 없이 그 풀이를 문제 밑에 받아 적고, 풀이 과정을 동영상으로 또는 사진으로 기록했죠. 저도 마찬가지로요. 사실, 이런 기술들이 어떤 시험에서 단 시간 내에 성적을 올리는 데는 분명 도움이 될 수있는 스킬일 거예요. 우리가 인적성 테스트를 수년에 걸쳐 준비하진 않잖아요. 하지만 근본적으로, 인적성 특강을 들은 그 하루 7시간 동안 저는 뭔가 잘못되었다 느꼈어요. 그 누구도 이 것을 '왜' 공부하는지 묻지 않고, 아무런 질문도 하지 않으며 정답을 찾기 위해, 주어진 풀이과정을 그대로 받아 적는 우리의 모습.



모든 것의 핵심엔 왜?가 존재한다.

스웨덴에서 가장 첫 수업시간에 배운 것은 항상 '왜'라고 물어보라는 것이었어요. '어떤 학자가 내린 한 개념의 정의도 고정된 것이 아니다. 언제든 변할 수 있다. 너만의 정의를 찾아라'는 교수님의 말씀. 사 스웨덴에서도 정답을 요구하는 시험도 있고, 대형 강의도 존재하고, 질문을 하지 않는 학생들도 있어요. 하지만 전반적으로 스웨덴 교육은 학생의 자기학습을 장려하며, 민주적으로 학습 과정에서 자신의 의견을 개진하고, 흥미를 따라 자기만의 관점을 가지도록 돕고 있다 느꼈어요. 오히려 그것 때문에 유학 초반 저는 방향을 잃고 헤맸지만요. 스웨덴의 교육도 장/단점이 존재하고, 사람마다 경험이 다를 거예요. 하지만 제가 생각하기에 스웨덴 교육의 큰 장점은 '왜?'라고 질문을 하는 것을 그 누구도 두려워하지 않는 점이에요. 2년 동안 공부하면서 하나의 사물이나 현상을 바라보는 타인의 시선이 궁금하고, 그 시선의 다름을 존중해주는 분위기가 조성되어 있다고 느꼈어요. 그 질문을 하는 사람을 판단하지도 않죠. 네, 가치충돌이 온 순간이었어요.


저도 알아요. 우리 사회에서도 많은 분들이 잘못된 것을 바로잡기 위해 열심히 목소리를 내고 계신걸요.

'한국은 주입식 교육이 문제다, 정답이 있는 교육이란 없다. 결과보다 과정이 중요하다. 질문하고 또 질문하라'.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았어요. 우리는 생존을 위해 직업을 찾아야 하고, 수많은 지원자들 중에서 선택받아야 하니까요. 수 십만 명의 지원자들 중에서 소수를 걸러내기 위해서는 정답을 찾고 점수화한 데이터는 분명 효율적이고 효과적인 필터링 기준이 될 거예요. 들이는 시간에 비해 효용이 정말 크죠. 그래서 우리는 정답을 찾아야 하고, 남들보다 더 많은 정답을 맞혀야 하고, 질문하기보다 주어진 것을 받아들이는 편이 우리의 생존에도 더 도움이 될 거예요. 그리고 우리들은 각자가 간직한 소중한 삶을 살아내기 위해 오늘도 열심히 자기소개서를 쓰고, 어학공부를 하고, 인적성 문제를 풀어요. 하지만, 한 번쯤은 함께 질문해보면 좋겠어요. 너는 '왜' 이 공부를 하니? 이 방법만이 옳다고 생각해? 다른 대안은 없을까?



청년실업자가 최고점을 찍고 있는 요즘, 사회에 발도 제대로 들여본 적도 없는 풋내기인 저는 아직 배부른 소리를 하고 있나요? 시험을 없애야 한다고 말하는 것도, 열심히 준비하는 나의 친구들을 비판하는 것도, 기업에서 훌륭한 인재를 뽑기 위해 노력하시는 분들의 노고를 모르는 것도 아니에요. 다만, 한 번쯤은 나누고 싶었어요. 무엇을 할 때 '왜' 그것이 존재하고, 우리는 '왜' 그것을 추구하는지, 그 과정에서 자신만의 답을 찾아가고 있는지.


누군가는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르라는 말이 있는 것처럼, 한국에 왔으니 한국에서 제게 주어지는 의무, 관습, 규범 등에 '왜?'를 질문하지 마'라고 말하기도 해요. 외면하기만 하는 것은 책임감이 없는 자세이기도 하고, 그럴 거면 왜 돌아왔는지 묻기도 해요. 생존이 위태롭기도 하죠. 하지만, 우리는 한국인으로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나'로서 이 세상에 태어난 거잖아요. 한국인이라는 정체성은 저의 일부분일 뿐이죠.


여러분은 어떤 옷을 입고있나요?

플라톤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국가는 개개인이 자신의 위치에서 제 역할을 다할 때 이뤄진다고 배웠어요. 각자가 탁월함을 발휘할 수 있는 역할을 찾아내, 조화를 이루는 정의로운 사회. 우리 모두 도덕 시간에 배운 지식이자 지혜잖아요. 그런데 제가 생각하기에 한국에서는 개인의 자기다움을 집단의 틀에 가둬버린다 생각해요. 다양한 개인이 모여 조화로운 집단을 이루기보다, 누군가가 규정해놓은 틀에 맞춰 개개인이 옷을 바꿔 입고 들어가 틀에 어쩔 수 없이 자신을 맞추는 거죠.


저도 열심히 먹고살 길을 찾고 있어요. 저도 스스로의 힘으로 생존해야 하거든요. 선택과 책임은 오롯이 제 몫임을 나날이 되새깁니다. 제 코가 석자인데 불평불만만 하는 건 아닌지, 모든 사회는 원래 부조리함과 불합리함으로 가득 차 있을진대, 제대로 겪어보지도 않고 평가를 할 자격이 있는지 늘 되물어요. 사실, 자격은 충분하지는 않은 것 같아요. 불합리함 속에서도 열심히 제 몫을 해내고 계신 분들을 보면 정말 존경스러워요, 진심으로요. 저도 하루빨리 제 역할을 찾아 온전히 해내고 싶거든요. 다만, 더 나은 삶과 사회를 바라는 인간으로서 우리가 책, 다큐멘터리, 또는 수많은 토론 그리고 일상에서 배운 지식과 지혜들이 잘 녹아들 수 있는 사회에서 꿈을 펼치고 싶어요.


당신은 로마에서 로마법을 지키고 계시나요? 그 법이 잘 못 되었다면요?


당신은 질문하고 계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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