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컬쳐커넥터 김도희 Aug 22. 2018

엄마의 소울푸드, 닭개장

유년시절에 대한 그리움과 사랑이 가득 담긴 닭개장 한 그릇

저는 음식을 통해 한 사람의 세계를 이해할 수 있다고 믿어요. '내가 먹는 것이 곧 나다'라는 말의 대상을 확장하면 우리가 먹는 것이 곧 우리가 되고, 함께 음식을 나누는 우리는 서로의 취향과 기억의 조각들을 요리하며 서로 연결되는 경험을 하죠. 조금씩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마음의 조각들을 끄집어내는 거예요. 상대를 알게 되면, 상대가 자라온 환경과 문화를 조금씩 이해하게 되고, 그 이해를 바탕으로 인류는 다름을 존중하기도 하고, 서로의 아픔을 보듬을 수 있게 되지 않을까요. 그게 제가 바라는 작은 유토피아거든요.  '함께 먹는 식사'는 단순히 에너지를 섭취하는 행위를 넘어, 한 개인과 세상을 여행하는 시간 그 자체예요.

'도희야, 같이 보면 좋을 것 같아서!'


오늘 아침, 저와 함께 음식과 인류에 대한 애정을 나누는 친구가 링크 하나를 보내줬어요. '세상을 바꾸는 시간 15분', 이욱정 pd 님의 강연이었어요. 이 pd님은 수년 째 '누들로드', '요리인류' 등의 다큐멘터리를 기획하시며 음식을 통해 인류의 삶을 탐구하고 계시죠. 강연의 주제는 '집밥'이었어요. 선사시대부터 우리는 물물교환을 통해 우리가 필요한 것들과 원하는 것들을 확보해왔지만, 한 번도 '식욕'을 해결하기 위해 식사나, 밥 그 자체를 교환한 적은 없다고 해요. 항상 집에서 가족들이 둘러앉아 함께 식사를 하며 식욕을 충족시켰죠. 그런데, 그 식사의 중심에는 누가 있었을까요? 바로, 엄마예요.


음식 하면 엄마를 빼놓고 생각할 수 없어요. 이욱정 pd님의 생각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모든 분들이 먼저 엄마를 떠올릴 거예요. 전통적으로 대부분의 식사는 여성들이 책임져왔고 여전히 그렇죠. 세상의 모든 엄마는 전 세계에서 제일 많이 음식에 신경을 쓰는 사람일 거예요. 늘 가족들에게 안전하고, 건강하고 맛있는 음식을 해 줄 생각으로 하루를 보내죠. 우리 중 누군가는 이미 엄마가 되었고, 누군가는 여전히 엄마의 사랑이 담긴 음식을 매일 맛보고 있거나, 그 음식들을 그리워하며 매끼를 해결하고 있죠. 음식을 만드는 이 세상 최고의 요리사인 엄마. 항상 엄마는 음식을 만드는 '주체'로 존재해요. '오늘 뭐 먹고 싶니?' 엄마만이 항상 내 취향을 묻는 탓에, 우리는 엄마 역시 뚜렷한 취향을 가진 음식을 대접받는 객체로 존재할 수도 있다는 것을 잊곤 해요. 음식과 엄마의 관계를 새로운 관점에서 봐본 적 있나요?


음식을 통해 세상을 이해하기 전, 나 자신과 나 자신이 속한 가장 작은 공동체인 가족을 이해하는 것이 우선이라 생각해요. 그리고 엄마는 내가 이 세상의 빛을 보기 전 내 세상의 전부였죠. 나에게 가장 가까운 사람이자 평생 '식'을 삶의 일부로 품고 가는 엄마, 그래서 엄마를 인터뷰하기로 했어요.



*저는 경상도 출신이에요. 엄마와의 대화를 온전히 전하고 싶어 대화체도 사투리를 녹여내었습니다.


'엄마, 소울푸드는 한 개인의 슬픈 고통의 기억이 깃든 영혼의 음식이래. 근데 난 소울푸드를 정의하는 데에 어떤 감정도 제한하지 않기로 했다. 엄마도 슬픈 기억이든 행복한 기억이든 강렬한 기억이나 감정이 깃든 음식이 있나?'


'엄마의 소울푸드는 어릴 때 복날 되면 엄마 할머니가 장작불 위에 놓인 가마솥에 닭 두 마리 넣어서 푸~욱 끓여 준 닭개장. 대파, 고사리, 토란, 숙주 넣고, 닭 삶은 걸 건져서 잘게 찢어가지고, 밀가루랑 준비된 재료에 묻혀서 고춧가루 마늘 듬뿍 넣고 장작불에 푹 끓인 닭개장. 지금은 먹을 음식이 많아서 그런지 그때 비슷하게 끓여도 그 음식 맛이 안 나네..'


'엄마 할머니가 한 음식?'


'그렇지, 엄마 태어나기 전부터 외할머니는 많이 편찮으셨으니까, 음식은 다 노할매가 하셨지(나의 외증조할머니).'


출처: 오마이뉴스(좌), 라이브엔(우)

엄마의 소울푸드는 나의 돌아가신 외증조할머니자 엄마의 할머니가 끓여주신 닭개장이래요. 외할머니가 엄마가 태어나기 전부터 편찮으셔서 엄마의 할머니가 육 남매를 키워내셨다해요. 1960년대 집안 살림이 다들 넉넉지 않은 시절, 복날에 닭 두 마리를 사서 밀가루에 버무린 여러 가지 재료와 삶은 닭을 가마솥에 넣고 푹 끓인 닭개장은 엄마에겐 닭 한 마리 넣고 온전히 끓인 삼계탕보다 더 영양가 높고, 맛있는 음식이었어요. 닭 두 마리밖에 되지 않았지만 그 걸로 온 식구가 마루에 앉아 나눠먹었다고 해요. 쌀과 보리를 섞어 밥을 짓고, 쌀밥이 많은 부분은 어른들 먼저 드리고, 남은 밥을 닭개장에 말아 닭 두 마리로 무더운 여름을 이겨낼 수 있었던 거죠.


'나라가 그렇게 부유하지 않던 시절, 사실 우리 집이 그렇게 부족하지는 않았는데... 근데 다들 오늘날만큼 넉넉하지는 않았다'라고 엄마는 어린 시절 기억을 더듬고 있었어요. 흐려져 가는 엄마의 유년시절 기억을 끌어온 인터뷰 내내, 엄마는 할머니가 끓여주신 닭개장이 제일 그립다며 떠오르는 기억이 사라지지 않도록 붙잡고 있었어요.


닭개장. 사실 저는 닭개장을 크게 좋아하지도 싫어하지도 않아요. 자주 먹지도 않고, 저에게는 전혀 특별한 음식도 아니죠. 하지만 엄마의 닭개장에는 엄마의 유년시절 기억이 한가득 들어있었어요. 엄마와 할머니에 대한 그리움과 사랑이 잘 버무려져 있었죠. 그날, 엄마의 소울푸드를 통해 처음으로 엄마의 유년시절을 함께 여행했어요. 엄마도 날 때부터 엄마가 아니었고, 엄마도 어릴 때가 있었다는 것을 머리로는 알고 있었지만 한 번도 그 시간 엄마가 느꼈던 감정들을 오롯이 전달받고 함께 공감해본 적은 없었거든요. 엄마의 어린 시절은 어땠는지, 외할머니는 어디가 편찮으셨는지, 삼촌들과 이모들과 투닥투닥 대며 어떤 추억을 만들었는지, 또 다른 엄마의 소중한 기억이 담긴 음식들 등 이야기를 듣는 내내 엄마와 함께 타임머신을 타고 시간을 거슬러 간 것만 같았어요. 저는 엄마의 소울푸드를 물었을 뿐인데, 엄마는 제가 몰랐던 엄마의 세계를 제게 열어주었고, 저는 덕분에 엄마를 엄마로서가 아닌 한 사람으로서 더욱 이해하게 되었어요.

 

엄마와 함께한 4월 스페인 여행, 더 많은 음식을 나눠야겠다.


'엄마, 소울푸드에 대해 인터뷰해보니 어때?'


'(ㅎㅎㅎ) 사실 니 말대로 음식이 행복한 기억을 품을 수도 있지만, 대부분 사람들에게 더 강렬하게 남는 감정은 슬픔이나 애환이지. 그래서 엄마한테도 삶의 애환이 깃든 할머니가 끓여주신 닭개장이 제일 기억에 남고, 그립다. 그냥 음식 얘기로 시작했는데, 생각도 안 나던 추억이 새록새록 떠오르는 게 신기하고, 할머니가 보고 싶고, 삶과 행복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네. 뭐 엄마뿐만 아니라 다들 살기 바빠 생각할 겨를이 있겠나만은 엄마 인생을 처음으로 차분하게 돌아본 시간인 것 같다. 재밌네'


엄마는 오히려 제게 자신의 소중한 기억을 끄집어내어 볼 수 있게 해주어 고맙다고 했지만, 저는 엄마가 자연스레 엄마의 세계로 저를 초대해주어서 감사했어요. 비로소 엄마를 한 사람으로서 이해할 수 있는 단초였거든요.


'엄마, 그러면 엄마가 가장 행복한 감정을 느끼는 음식은 뭐야?'


'행복이라... 한 번도 엄마 삶에서의 행복에 대해 크게 생각해 본 적이 없는데..'라고 망설이던 엄마는 말했어요.

'일하고 한 잔 하는 시원한 생맥주, 그게 엄마한텐 행복이다'. 


엄마는 당신이 힘닿는 데까지 할 일을 다한 하루 끝에 마시는 맥주 한잔에서 삶의 행복을 발견한대요. 엄마가 삶의 행복을 느끼는 게 흔하디 흔한 생맥주라서 매일 더 큰 행복을 엄마에게 선물해드릴 수 있을 것 같아 기쁘기도 했지만, 당신의 삶을 희생하며 살아온 엄마에게 생맥주 플러스알파의 행복을 선물해야겠다고 다짐하며 인터뷰를 마쳤어요.

4월 스톡홀름, 여행의 시작. 더 큰 행복을 드리고싶다.

내일 아침 일어나서 엄마에게 여쭤보세요. '엄마, 엄마의 소울푸드는 뭐야?'


엄마가 소울푸드를 통해 당신의 삶을 여러분과 공유하듯,  여러분의 소울푸드를 엄마와 함께 나누겠다 약속하세요. 세상에서 가장 가까운 관계가 부모 자식 관계라지만, 우리가 커가면서 사실 그 관계가 더욱 멀어지기도 하잖아요. 제 소울푸드를 나누는 날, 저는 엄마에게 식사 초대장을 보낼 거예요. 그리고 그 자리는 단순한 식사자리를 넘어 엄마의 우주와 제 우주를 연결해주는 다리가 될 거예요. 초대장엔 이렇게 쓰이겠죠. 'OO 한 그릇. 도희의 세계로 엄마를 초대합니다. 결국 우리는 좀 더 서로를 온전히 이해하게 될 거라 믿어요'.




작가의 이전글 로마에서 로마 법을 따르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