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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컬쳐커넥터 김도희 Sep 08. 2018

올라, 꼬레아! 안녕, 산티아고!

콜롬비아의 미래를 한국에서 찾다.

커피, 그리고 7년 전 미국 올란도의 한 버스 안에서 만난 콜롬비아 출신 아주머니가 준 1 페소. 이것이 내가 콜롬비아에 대해 아는 전부였다. 남미에서 가 본 국가라고는 브라질밖에 없고, 남미 친구도 거의 없던 내게 콜롬비아를 안고 다가온 사람은 다름 아닌 산티아고(Santiago)다. 지난 7월, 우연히 외국인들에게 우리나라 지역 축제를 소개해주는 회사에서 인솔자로 경북 봉화 은어축제에 다녀오면서 산티아고와의 인연이 시작되었다. 


담당자가 파라과이에서 왔다고 소개해주는 바람에, 대뜸 어색함을 깨기 위해 공통점을 찾고자 운을 뗐다.


'너 파라과이에서 왔다고 들었어! 내 친구 한 명도 지금 거기 사는데!'


'파라과이?? 사람들이 중남미 국가에 대해 잘 모르긴 하지(ㅎㅎ) 나는 파라과이가 아니라 콜롬비아에서 왔어. 알아?'


'응 알지. 에콰도르.. 아, 아니 콜롬비아!' 


콜롬비아에서 왔다는 산티아고에게 나는 실수로 연발 그에게 에콰도르를 언급했다. 가본 적 없는, 그리고 친숙하지 않은 나라라 그랬을까. 네 음절을 지녔지만 너무나도 다른 남미 국가들의 이름이 왜 그리 헷갈리는지. 참 고맙게도, 나의 어이없는 실수에도 기분 나빠하지 않고 1박 2일 내내 웃으며 대해주던 산티아고.


지난 3월, 교환 학생으로 서강대학교에 온 그는 그의 미래뿐만 아니라 콜롬비아의 미래를 찾기 위해 한국에 왔다고 말했다. 산티아고가 한국에서 찾고자 하는 미래는 어떤 모습일까? 그는 그 미래를 위해 어떤 그림을 그려나가고 있을까?




콜롬비아. 우리에게는 향이 좋은 원두나 커피로 유명한 나라다. 남미의 북서쪽 끝에 위치한 나라로, 남미에서 4번째로 큰 나라다.  베네수엘라, 브라질, 페루, 에콰도르와 국경을 접하고 있다. 한국과는 시차가 14시간 나는 것을 보면, 지구 반대편 너머에 있는 멀고도 먼 나라다. 거리가 먼 만큼 콜롬비아와 나 사이의 거리도 그만큼 멀다. 여전히 나는 콜롬비아에 대해 아는 것이 거의 없다. 그래서 산티아고에게 물었다. 자신의 나라는 자기 자신이 제일 잘 아는 법이니까.



"콜롬비아는 어떤 나라야, 산티아고?"
쉐프를 꿈꾸는 형과 함께 빠에야를 요리하는 산티아고

"콜롬비아는 정말 사랑스러운 나라야(그는 A lovely country)라고 했다. 음식이 진짜 끝내주고, 네가 향유할 수 있는 삶의 질이 정말 높아. 과일, 야채도 정말 싸고 땅 값도 그만큼 싸지. 그리고 네가 무얼 하든 간에 콜롬비아의 아름다운 자연과 여유로운 라이프 스타일은 너 스스로 행복한 사람이라 느끼게 해줘. 콜롬비아 사람들도 열심히 일을 하지만 우리에겐 무얼 하든 간에 일상의 작은 순간들이 다 축제고, 사람들은 매 순간을 축하해. 그런데 사실, 콜롬비아는 아직 부유한 나라는 아니야. 발전하고 있는 국가지. 그래서 우리에겐 살아 남기 급급하고 비전이 불명확해서 사람들이 때로는 큰 그림을 못 그리기도 해. 또 콜롬비아에도 정치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황이 있었지. 하지만, 정말 사람들은 절대 긍정적인 신념을 잃지 않아. 긍정으로 무장한 나라야!"


그는 콜롬비아가 부유한 나라는 아니지만, 삶의 매 순간을 축제로 대하는 콜롬비아 사람들의 긍정적인 마인드는 세계에서 가장 풍족하다고 말했다. 사실 내가 산티아고를 인터뷰하고 싶었던 이유도 이 때문이었다. 긍정적이고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믿는 성격. 무엇보다도 그는 4개월 간의 짧은 교환학생 생활에도 그냥 이 시간을 '즐기면서만' 흘러 보내기보다 자신과 조국의 미래를 찾고, 그것을 위해 필요한 것을 '행하며' 꿈같은 시간을 즐기고 있었다. 그래서 그를 인터뷰하기로 했다. 콜롬비아 학생들을 사실 한국에서 만나는 건 쉽지는 않기에 콜롬비아가 궁금하기도 했고! 



왜, 한국이었을까?

산티아고와 함께한 봉화은어축제에서

"사실, 교환학생을 가기로 하면 선택지가 꽤 많잖아. 근데 왜 굳이 한국으로 왔어?"


"사실 콜롬비아에서 대학을 간다는 건 하나의 특권이야.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하는 사람도 많거든. 특권층의 한 사람으로서 이 특권을 잘 활용해서 내 삶뿐만 아니라 내가 태어나고 자란 콜롬비아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하고 싶었지. 일단 난 콜롬비아의 보다 장기적인 미래를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고 싶었고, 콜롬비아에서만 머무르기엔 이 세상이 너무 넓다고 느꼈어. 특히 우리가 사는 시대는 글로벌 시대잖아. 그래서 나의 Comfort zone(안전지대)를 벗어나기 위해 교환학생을 가기로 했지. 


사실 오기 전에는 한국에 대해 잘 몰랐어. 전 세계에서 부유한 나라 중 하나인 한국이 60년 전에는 전쟁으로 모든 것을 다 잃었다는 사실 밖에. 근데 그게 너무 궁금했지. 어떻게 짧은 시간에 이렇게 부유하고 발전한 나라가 되었을까? 그 에너지의 원동력은 뭐지? 이게 내게 한국에 가는 가장 큰 이유였지. 또 이제는 글로벌 기업인 삼성과 그 외에도 현대와 엘지 등 글로벌 비즈니스를 펼치는 기업이 한국에 많잖아. 한국이라는 나라는 전 세계를 대상으로 어떻게 비즈니스를 하는지 알고 있다고 생각했어. 나는  '스타트업' 창업에 관심이 많은데 글로벌 비즈니스를 배우고 펼칠 수 있는 환경이 잘 갖춰져 있다는 느낌이 들었지. 나는 창업을 하고 싶거든. 그래서 한국에 오기로 했어."


나를 포함한 많은 학생들이 교환학생 기간을 인생의 한 번뿐인 스트레스 없이 유일하게 원 없이 여행하고 쉴 수 있는 기간으로 여기는데, 목적의식이 분명했던 산티아고의 선택을 들으며 교환학생 기간이 인생의 큰 전환점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4개월의 짧은 시간이지만 한국에서 그 비밀을 찾았어?"


블록체인 관련 컨퍼런스에서의 산티아고


"음, 사실 자세한 답을 찾은지는 모르겠어. 하지만 나의 눈으로 본 한국은 이래. 일단 한국의 스타트업 생태계가 꽤나 잘 갖춰져있다 생각했어. 수 십 여개의 스타트업 지원 센터와, 외국인이 창업을 할 수 있는 환경도 잘 되어있어. 지금 나는 서울 글로벌 센터에서 외국인 창업가 양성을 위한 OASIS 교육을 듣고 있어. 전 세계적으로 스타트업 붐이 있긴 하지만 한국 정부 차원에서도 청년들의 창업을 많이 장려한다는 것을 몸소 느꼈어. 정부가 미래에 우리가 당면할 문제들을 스타트업을 통해 풀고, 스타트업이 일자리도 창출해낸다는 점을 알고 있달까? 또 한국 정부가 삼성과 같은 글로벌 기업에 어떤 혜택을 주는지도 궁금해졌어. 기업이 사업을 잘할 수 있는 환경을 정부가 잘 조성해줘야 하는데, 콜롬비아에는 아직 그런 게 많이 부족하거든. 아, 그리고 한국이 미국과 같은 전 세계의 혁신을 이끌어 나가는 나라들을 끊임없이 쫓아가기 위해 노력하는 점이 발전의 원동력이 되지 않았나 싶어. 인생에서든 나라의 큰 그림을 위해서든 롤모델이나 경쟁심을 느끼게 하는 존재는 필요한 것 같아"


콜롬비아 친구의 눈으로 본 한국은 정말 콜롬비아의 미래를 그릴 수 있는 기회의 땅이었다. 내가 나의 미래와 우리나라의 미래를 찾기 위해 스웨덴으로 유학을 간 것처럼. 누구든지 더 나은 삶을 바라는 건 인류 공통의 권리이자 바람이다. 사실 국내 미디어에서 주로 다루는, 세계의 혁신을 리드하고 있는 미국과 무서운 성장가도를 달리고 있는 중국과 비교하면 한국에도 개선해야 할 문제가 산적해있는데, 콜롬비아 친구의 눈에는 한국은 기회의 땅이자 롤모델이었다. 


"창업? 굉장히 용기 있는 생각이다. 사실 우리나라에서도 창업 붐이 많이 일어나고 있긴 하지만, 많은 학생들이 아직까지는 창업보다는 취업이라는 안정적인 삶을 택해. 창업은 리스크가 크잖아. 너는 어떻게 창업을 결심하게 됐어?"


"사실 그 과정이 나도 정말 쉽지는 않았어. 오랜 시간 동안 시행착오를 겪으며 내가 누군지 발견하는 동안 기업가가 되고 싶은 나 자신을 찾게 됐지. 기업가를 꿈꾸는 나지만 사실 나는 법을 공부하던 학생이었다고 하면 믿을 수 있겠어?"


"진짜???????"


자유분방하고 적극적이며 자신의 직관을 믿고 앞으로 거침없이 나가는 내가 아는 산티아고의 모습과 두꺼운 법전을 들고 도서관에서 끊임없이 법과 싸움하며 공부를 할 것 같은 법대생과의 이미지는 매치하려고 해도 매치할 수가 없었다. 

"나는 사실 변호사가 되고 싶었다라기보다 변호사가 가진 역량들을 가지고 싶었어. 예를 들면, 배심원들을 설득하기 위해 필요한 논리적인 변호 기술이나, 개별 케이스를 해석하고 그에 따른 법을 적용하는 능력 같은 것들. 논리와 자신이 배운 지식을 가지고 현실에서 적용하고 사회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한다는 점이 매력적이었어. 근데, 공부를 하는 동안 뭔가 나와는 맞지 않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어. 법대에 진학한 첫 해인 데도 내가 배우던 것에 대한 열정이 하나도 없었지. 동기부여도 하나도 안 되고 핵심은 내가 행복하지 않았다는 거야... 뭐가 잘 못 되었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법대에서 더 공부하는 것이 나와는 맞지 않는다는 건 알았지. 


그때 우연히 기업가 정신에 대해 알게 되고, 그와 관련된 책들을 정말 많이 읽었어. 구체적으로 내가 뭘 하고 싶은지에 대한 확신은 불확실했지만 내 직관을 믿었고(I just trusted in my guts), 나는 내가 열정을 느끼는 것에 나의 모든 시간과 에너지를 쏟을 거란 걸 스스로 알고 있었어. 그래서 법대를 그만뒀어. 


학교를 그만둔 후에는 축구 3부 리그에서 훈련을 했어. 나는 축구를 정말 좋아하거든. 그리고 훈련하지 않는 시간에는 기업가 정신과 관련한 책과 온라인 코스를 들으며 시간을 보냈고 작게나마 창업을 시도해보기도 했어. 이 시간 내내 정말 많은 시행착오가 있었지. 하지만 오롯이 혼자서 내가 원하는 것과 중요한 것에 집중을 하면서 보낸 시간 동안 나는 비로소 내가 누군지 알 수 있었어. 내가 뭘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나는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내 삶에 우선순위는 뭔지, 나는 사회의 어떤 영역에서 도움이 되는 일을 하고 싶은지 등과 같은 것들 말이야."


산티아고는 각자의 삶의 답이 내 안에 있으며, 이를 듣기 위해 혼자 보내는 시간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고 있었다. 


"그래서 찾은 답이 기업가가 되는 거구나. 그런데 왜 기업가가 되고 싶어?"


"나는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는 사람이 되고 싶어. 그리고 사회가 '필요'한 것들을 만들어서 제공하고 싶고, 시스템이나 회사라는 조직에 갇히고 싶지 않아. 오히려 자본주의라는 시스템을 잘 이용해 사회에 선한 영향력을 만들어 내고 싶어. 2013년에 우리 부모님 사업이 어려워져서 재정적으로 힘든 시기가 있었거든. 그때 난 '삶에는 아무것도 안정된 게 없구나(Nothing is secured)'라는 걸 깨달았어. 힘든 시기에 'Rich dad, Poor dad'라는 책을 읽게 됐는데, 이 삶이 내 삶의 방향성을 정하는데 큰 영향을 끼쳤지. '자본주의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배우고, 그 시스템에서 나는 이겨야 한다. 그 원리를 모르면 나는 평생 시스템에 갇힐지도 모른다'는 걸 절감했거든"


인터뷰를 하는 3시간 동안 나는 여전히 불확실하지만 이제는 불안하기보다 자신 있고 모험심을 가지고 앞으로 어떤 일들이 벌어질까 설레 하는 산티아고를 만날 수 있었다. 그는 행복하지 않았다 했지만, 지금은 매 순간이 행복하고 흥미롭다고 했다. 그가 힘든 시간 동안 내면에서 울리는 자신의 욕구와, 욕망 그리고 열정에 끊임없이 귀 기울여왔기에 얻은 달콤한 열매일 것이다. 그리고 사회적 자극과, 눈치 그리고 애정을 가장한 간섭이 심한 우리 사회에서 나는 나의 내면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있는지 자문하게 되었다. 


"산티아고, 너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건 뭐야?"


"행복"


"너의 행복은 뭔데?"


"나는 내가 삶에서 되고자 하는 모습으로 매일 한 발자국씩 나가기 위해 노력하는 순간순간이 행복이라 생각해. 꿈을 위해 한국에 왔고, 한국에서 나의 Comfort zone을 넘어 전 세계의 다양한 친구들과 소통하며 왜 이 세계는 불평등하고, 우리는 보다 더 평등하게 살아갈 수 있을까 고민하는 시간들은 소중한 배움이야. 그리고 이를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을 해나가는 것. 그게 내게는 기업가가 되는 거고, 구체적으로는 기술회사를 세워서 내가 해결하고자 하는 문제를 해결해나가고 싶어" 



Gracias, Santiago!

지구 반대편 콜롬비아에서 온 산티아고. 살아온 환경도 겪어온 시간도 너무나도 다른 사람이지만 우리 모두 모든 것이 불확실한 청춘의 길목에서 헤매고, 끊임없이 행복한 삶에 대해 고민하고 있었다. 행복이라는 단어만큼 추상적인 건 없지만, 우리 모두는 눈에 보이지 않는 뜬구름 같은 그 행복을 잡기 위해 오늘도 이 순간을 살아가는구나. 산티아고의 말대로 이 순간순간을 자신이 원하는 것을 지켜내기 위해 살아가는 것. 그것이 행복이라면 행복은 결코 먼 곳에 있지 않다. 그리고 그 작은 행복들이 모여 결국 우리는 우리가 원하는 크기의 행복을 얻을 것이다. 공자가 모든 사람에게는 자기 크기만 한 행복이 존재한다고 말씀하신 것처럼. 


남보다 더 행복하다 비교할 것 없이 각자의 크기를 지켜내는 것. 그걸로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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