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곳에서 내게 가장 익숙하고 편안함을 준 음식은 맥도날드 햄버거였어.
저는 음식을 통해 한 사람의 세계를 이해할 수 있다고 믿어요. '내가 먹는 것이 곧 나다'라는 말의 대상을 확장하면 우리가 먹는 것이 곧 우리가 되고, 함께 음식을 나누는 우리는 서로의 취향과 기억의 조각들을 요리하며 서로 연결되는 경험을 하죠. 조금씩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마음의 조각들을 끄집어내는 거예요. 상대를 알게 되면, 상대가 자라온 환경과 문화를 조금씩 이해하게 되고, 그 이해를 바탕으로 인류는 다름을 존중하기도 하고, 서로의 아픔을 보듬을 수 있게 되지 않을까요. 그게 제가 바라는 작은 유토피아거든요. '함께 먹는 식사'는 단순히 에너지를 섭취하는 행위를 넘어, 한 개인과 세상을 여행하는 시간 그 자체예요.
기나긴 추석 연휴가 끝나고, 일시 정지됐던 일상이 다시 재생 중이다. 이번 연휴가 길었던 만큼 많은 사람들이 해외여행을 갔다. '여행', 듣기만 해도 설레는 단어. 낯선 곳에서 낯선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낯선 음식을 먹고, 낯선 언어를 듣고, 낯선 문화를 체험하는 일. 같은 시간 선상 위에 존재하지만, 우리는 여행하는 순간만큼은 다른 삶을 살게 된다. 같은 시간이지만 낯선 시간. 그러고 보면 여행은 참 '낯섦' 투성이다. 익숙하지 않은 것. 우리는 의도적으로 익숙한 것들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여행을 떠나곤 한다.
오늘 소울푸드를 나눠 준 친구도 정체되어 있던 삶에 변화를 주기 위해 서태평양의 아름다운 섬 괌으로 1년 동안 긴 여행을 갔다. 호텔경영학을 전공한 친구는 '졸업을 앞둔 시점, 사회인이 되기엔 마음의 준비도 일할 준비도 안 됐다 느꼈어. 경력도 쌓고 내 삶에 다양한 색깔을 더하고 싶었지'라고 말하며 괌의 한 호텔에서 1년간 일한 경험을 들려주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자신의 소울푸드를 찾았다고 하며. 바로, 맥도날드 햄버거.
"햄버거?"
"응, 햄버거. 아이러니하게도 낯섦을 찾아 떠났지만, 모든 것이 너무 낯설어 외로워질 때가 많았어. 그때마다 나는 익숙한 것들이 그리웠어. 그리고 괌에서 내가 유일하게 익숙함을 느꼈던 장소와 음식은 맥도날드 햄버거였어"
무의식적으로 '타지에서 살 때 우리에게 익숙한 음식이나 그리운 음식은 한국음식이지 않을까' 생각하던 내게, 친구의 대답은 예상치 못한 방향에서 훅 치고 들어왔다. 그리고 우리는 다음 날 맥도날드에서 만나 햄버거를 먹으며, 친구의 소울푸드인 햄버거에 담긴 낯섦과 익숙함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 괌에 있을 때 맥도날드에서 햄버거를 진짜 많이 먹었어. 전 세계 어디를 가든 거의 똑같은 인테리어를 한 매장에서 비슷한 메뉴를 제공하잖아. 힘들 때 유일하게 내게 익숙함을 주던 장소와 음식이야. 힘들 때마다 더욱 익숙한 것들을 많이 찾게 되더라구. 일도, 사람도, 사는 환경도 모든 것이 낯선 상황에서 긴장을 풀고 편안함을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인 거 같아.
사실 괌에 도착한 첫 2~3달은 정말 재밌게 보냈어. 맑은 날씨, 아름다운 자연환경, 새롭게 배우는 일과 다양한 해양스포츠를 경험하는 등 모든 것이 흥미로웠어. 그런데 그 재미는 오래가진 않더라구. 3개월쯤 지나니 일도 익숙해지고, 1년 내내 변하지 않는 날씨와 거제도만 한 작은 섬에 갇혀 지내니 시간이 멈춰있는 느낌이었어. 그런데 일과 사는 환경에 익숙해지긴 했지만 심리적으로 익숙한 안정감을 느끼진 못했어. 물리적인 익숙함이 항상 심리적인 익숙함을 가져오진 않는 것 같아. 1년 후엔 떠나는 인턴이라는 신분 때문에 현지 직원들처럼 큰 소속감도 느끼지 못했고, 직원들도 우리를 떠날 사람이라 여기고 정을 많이 주진 않더라구. 소속감이 없으니 익숙해진 환경 속에서도 고립되거나 외로웠던 적이 많아. 그럴 때마다 한국에 가고 싶기도 했는데, 현실적으로 비자 문제 때문에 괌을 떠날 수도 없었어. 그때 한국이랑 똑같은 맛이 나는 음식이 그리워지곤 했어"
"한국 음식이 그립진 않았어? 주변에 한식당은 없었어?"라고 묻는 질문에 또 친구는 예상 밖의 대답을 내놓았다.
" 사실, 괌으로 가기 전 햇반, 참치 등 한국 식품을 많이 싸갔어. 3개월 동안 엄청 아껴먹었어. 구하기 어려웠으니까. 그런데 떨어진 이후가 문제였어. 괌에도 한국음식점이 있긴 했지만, 오히려 외국의 한식당은 더 이질적으로 느껴졌어. 한국음식점이지만 인테리어도 음식도 완전히 한국적이지 않아서 더 불편했거든. 한국을 느끼고 싶어 갔는데, 오히려 내가 외국에 있다는 걸 더욱 강하게 상기시켜준달까? 근데 맥도날드는 글로벌 프랜차이즈잖아. 익숙한 인테리어, 메뉴와 맛 때문에 편안한 느낌을 받았어. 이때부터 맥도날드에 자주 가게 된 것 같아. 한국에선 잘 가지도 않았는데 말이야. 특히 내가 자주 가던 맥도날드는 시내 초입에 있었는데, 호텔에서 걸어갈 수 있을 정도로 가까운 곳에 있었거든. 거의 매일 들렸던 것 같아. 햄버거를 먹지 않으면 사이드 메뉴를 사 먹곤 했어"
그랬다. 친구의 맥도날드처럼 스타벅스가 내겐 그런 공간이었다. 여행과 유학 생활 중 한국이 그리울 때나 낯선 환경 속에서 긴장을 풀고 싶을 때 항상 나는 스타벅스를 지도에서 찾곤 했다. 특히 혼자일 때는 더더욱 그곳에 오래 머물렀다. 마음의 긴장을 풀고 안정감을 찾을 때까지. 한국에서 항상 마시던 커피 한 잔을 시켜놓고. 그러고 나면 신기하게도 마음의 안정이 찾아오고, 다시 바깥으로 나설 용기가 생기곤 했다.
"맥도날드에서는 주로 무슨 햄버거를 먹었어?'
"쿼터 파운더"
"네가 제일 좋아하는 메뉴야?'
"가장 좋아했던 메뉴라기보다, 익숙했던 메뉴야. 사실 나는 맥도날드 메뉴 중엔 빅맥, 쿼터파운더, 상하이 스파이시 치즈버거 밖에 몰랐어. 근데 상하이 스파이시 치즈버거는 괌 맥도날드에 없었고, 빅맥은 별로 안 좋아해. 그리고 쿼터파운더는 주문하기도 쉽잖아. 발음하기 쉬우니까(웃음). 그때 영어에 큰 자신이 없어서 주문하는 상황 자체가 긴장 됐거든. 그래서 불편한 상황을 조금은 더 편한 게 만들고 싶어서 쿼터파운더를 계속 먹었어. 먹다 보니 맛있기도 하던데?'
'익숙함'. 우리 모두는 호기 있게 낯선 곳으로 나를 내던지지만 때론 낯섦이 주는 자극의 강도가 너무 세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래서 낯선 곳에서 아이러니하게도 익숙한 것에 대한 갈망이 커지곤 하나보다. 새로운 환경에서 깨어나는 온몸의 촉수에 집중하며 살아있음을 느끼기도 하지만, 낯선 곳에서 익숙함을 발견하게 되는 순간 '생존'의 차원에서 내가 살아 있음을 느끼게 해주는 것 같은 안도감. 살았다, 휴우.
" 맥도날드에 가면 한국에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어. 사실 나는 괌에 가기 전에는 한국 맥도날드를 자주 안 갔거든. 나한테 익숙한 공간은 아니었어. 그런데 괌에서 익숙한 곳은 그곳뿐이었고, 지금은 내 영혼의 안식처가 돼버렸어.
첫 취업을 해서 회사를 다닐 때도 맥도날드를 자주 갔어. 취업하자마자 파견 근무 때문에 다른 지역에서 6개월 간 살았는데, 아는 사람도 없고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던 곳이었어. 나는 서울에서 태어나서 줄곧 살았거든.
환경도 낯설고 처음으로 혼자 살게 되어서 외로운 것도 있었지만, 같이 일하던 분들이 본사 소속이었던 나를 배척하는 느낌이랄까? 업무 공유도 안되고. 그래서 더욱 외로웠던 것 같아."
친구의 이야기를 듣는 동안 익숙함을 갈구하게 만드는 본질적인 감정은 '낯섦'이 아니라 '외로움'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낯선 환경이라도 누군가 나를 품어준다면, 어느새 적응을 하고 새로운 익숙함을 만들어 갈 수 있으니까.
친구는 원래 햄버거를 굳이 찾아먹진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어느새 맥도날드는 친구의 영혼의 안식처가 되었다. 자주 똑같은 메뉴를 먹곤 했는데 질리진 않았냐는 나의 질문에 친구는 질리지 않았다고 했다. 메뉴는 똑같았을지라도 매일 다른 사건과 감정이 녹아든 친구의 햄버거는 매번 다른 맛이었지 않을까 조심스레 추측해본다.
오늘 먹은 친구의 쿼터파운더는 어떤 맛이었을까? 오늘 친구가 먹은 햄버거에는 힘든 기억이 아닌 좋은 기억이 담겼으면 좋겠다고 바란 오늘이었다. 그리고 오늘 오후, 오늘 먹은 햄버거는 친구를 배신하지 않았다.
'내일 채용 건강 검진받으러 오세요'.
점심에 먹은 햄버거가 다 소화되가던 무렵, 친구는 간절히 기다리던 회사에서의 채용 합격 소식을 들었다. 그리고 나는 바란다. 오늘 먹은 햄버거를 마지막으로, 친구가 새로 시작하는 직장에서는 맥도날드 햄버거를 다시 찾지 않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