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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컬쳐커넥터 김도희 Aug 30. 2018

한 사회초년생의 소울푸드

내 삶이 꼭 물렁물렁한 떡볶이 같았어.

저는 음식을 통해 한 사람의 세계를 이해할 수 있다고 믿어요. '내가 먹는 것이 곧 나다'라는 말의 대상을 확장하면 우리가 먹는 것이 곧 우리가 되고, 함께 음식을 나누는 우리는 서로의 취향과 기억의 조각들을 요리하며 서로 연결되는 경험을 하죠. 조금씩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마음의 조각들을 끄집어내는 거예요. 상대를 알게 되면, 상대가 자라온 환경과 문화를 조금씩 이해하게 되고, 그 이해를 바탕으로 인류는 다름을 존중하기도 하고, 서로의 아픔을 보듬을 수 있게 되지 않을까요. 그게 제가 바라는 작은 유토피아거든요.  '함께 먹는 식사'는 단순히 에너지를 섭취하는 행위를 넘어, 한 개인과 세상을 여행하는 시간 그 자체예요.

작년 스웨덴에서 즐겨보던 프로그램이 있어요. 지금은 방영이 끝났지만 외국에서 생활하는 연예인들의 생활상을 담던 JTBC의 '이방인' 이예요. 외국에서 사는 재미도 재미지만, 이방인으로서 살아가는 애환에 대해 공감이 많이 갔었거든요. 개인적으로 서민정 부부의 에피소드를 가장 좋아했었는데, 그중 한 에피소드가 잊히지 않아요. 안 선생님이 딸 예진이와 함께 캐나다 자신의 모교를 가서 길거리에서 핫도그를 먹던 일..


'아빠가 가난한 학생 때, 매일 먹던 음식이야. 돈이 많이 없으니까 2 CAD(캐나다달러) 하던 핫도그로 끼니를 많이 때웠지'

안 선생님의 소울푸드 핫도그(출처:thefleur.blog.me)

전 세계 어딜 가든 학생들 주머니가 가벼운 건 비슷한 것 같아요. 스웨덴에서는 주머니가 가벼운 학생들은 항상 먹고 남은 저녁을 플라스틱 통이나 유리 도시락에 넣어 점심 도시락을 싸 다니거든요. 한국에 돌아온 지 2달 반, 학생도 아니고 사회인도 아닌 제게도 먹는 것은 중요한 문제예요. 스웨덴에서와 달리 한국의 슈퍼마켓 물가가 꽤나 비싸 혼자 사는 저는 요리하는 게 더 부담이 돼서 요리는 하지 않아요. 점심과 저녁은 대부분 밖에서 해결하죠. 근데 당장 수입도 없으니 숨 쉬는 모든 순간이 지출이네요. 많은 취업준비생들의 생활이 비슷하지 않을까요? 취업을 준비하는 동안 넉넉하게 사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있을까요?


이런 제 마음을 읽었는지, 친한 친구가 제게 함께 저녁을 먹자고 제안했어요. 자신의 소울푸드를 나눠주겠다고. 지구촌 청년이자 대한민국의 평범한 청년 중 한 사람으로서, 그리고 기나긴 취업 준비 기간을 거쳐 갓 사회생활을 시작한 사회 초년생으로서 수많은 취업준비생들에게 연민을 표하고, 우리를 응원하고 싶다고 했어요. '우리 모두가 비슷한 고민을 하며 살아가지만 각자 나름의 방법으로 쉽게 풀어나갔으면 좋겠어'.

 

'오빠의 소울푸드는 뭐야? 오빠의 감정이 오롯이 녹아들어 있는 음식?'


'떡볶이'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던 저녁, 용산에서 친구를 만났어요. 기나긴 취업의 문을 뚫고, 끝내 자신이 원하던 곳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한 친구는 퇴근 후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떡볶이 가게로 저를 데려갔어요. 보글보글 끓는 떡볶이를 앞에 두고, 친구는 담담히 떡볶이에 담긴 자신의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어요. 친구의 소울푸드인 떡볶이가 끓으며 졸아지는 동안 친구의 이야기 농도도 점점 짙어져 갔어요.



(출처:Pixabay, geralt)


'모두가 대입을 준비하던 10대를 제외하고, 오롯이 내 힘으로 삶을 설계하기 시작한 대학생활 이후 나는 혼자 있는 시간이 굉장히 많았어. 원하는 대학을 가기 위해 재수를 했고, 졸업 후에도 취업 준비를 하는데 오랜 시간을 보냈거든. 졸업 이후 계약직으로 일하다가, 나도 대다수의 청년들처럼 많은 연봉에 안정적인 곳을 가고 싶어서 대기업으로 취업을 하게 됐어. 근데 생각보다 나와 맞지 않은 부분이 많았어. 특히, 나는 술을 잘 못 마시는데 술을 강요하는 사내 문화가 내 삶에 많은 부담이 됐지. 1주일에 4번 술을 마시고 새벽 2시에 귀가하고 6시에 기상하는 일상을 반복하다 보니 건강도 많이 안 좋아졌고, 결국 퇴사하게 됐지. 그런데 재취업하려니 쉽지만은 않더라.


취업 준비기간이 길어지면서 자존감은 바닥으로 떨어지고, 가족들과 이런 비참한 모습을 지니고 살아가는 내게 미안하더라고. 그래서 더욱이 끼니를 제대로 챙겨 먹고 싶지도 않고, 거창한 음식은 피했던 것 같아. 근데 떡볶이는 주머니가 가벼운 내게 가성비 있는 음식이었지. 일반 식사보다 값이 저렴하고 포만감을 느낄 수 있는 음식이었어. 또 손쉽게 혼자 1인분 사서 먹을 수도 있으니 먹는 동안 그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사색에 빠질 수 있는 시간이었지. 하루에 세 끼 내내 떡볶이를 먹은 적도 있어. 스스로 위로도 하고, 반성도 하고, 용기도 얻고 떡볶이를 먹는 동안 내 삶을 고찰하게 되더라구.'


처음이었어요. 친구가 왜 지난 2년 간 친구가 저와 다른 친구들을 자꾸만 피하려 했는지 들려준 적이 없거든요. 친구가 담담히 소울푸드에 대해 얘기하는 동안 비로소 저는 친구의 사정을 이해하게 되었어요. 그리고 그가 느낀 감정이 오롯이 제게도 전달됐어요. 지금의 제 모습과도 많은 부분이 겹쳤거든요.


'근데 그거 알아? 취업 기간 내내 떡볶이를 즐겨 먹었지만, 떡볶이가 정말 내 인생 같다고 느낀 하루가 있어. 2016년 말 하반기 공채를 준비할 때였지. 70개의 서류를 썼는데, 서류통과가 딱 3개밖에 안 된 거야. 근데 결국 그 3개도 다 떨어졌지. 그 절망적인 날, 어머니가 '아들, 나가서 아들이 좋아하는 음식 먹자'며 내 손을 이끄셨어. 내가 사는 곳엔 1주일에 한번씩 알뜰장이 열리거든. 오랜 기간 집에서 항상 히키코모리처럼 은둔하며 지내는 아들이 안 돼보였는지 어머니는 자주 나를 데리고 알뜰장에 가자하셨어.


장에서 떡볶이에 오징어 튀김을 시켜서 먹는데, 그 날 따라 떡볶이가 너무 물렁물렁하게 느껴지더라. 오징어 튀김은 바삭하고 속은 알찬데, 떡은 너무 물렁물렁하고 흐물거렸어. 엄마랑 벤치에 앉아서 떡볶이를 먹는데, 반 정도 먹다가 나도 모르게 눈물이 쏟아지는 거야. 물렁물렁한 떡을 보니 꼭 내 인생 같아서. 너무 물렁하게 살아서 남들보다 더 못하고 있는 게 아닌가 후회가 들더라. 남들이 토익 점수 만들고, 영어 스펙 쌓고, 수많은 대외활동을 할 때, 나는 알바 50개를 했거든. 그때는 이 경험이 강력한 무기가 될 거라 생각했어. 실전에서 사람들과 부딪히며 일한 경험으로 내 차별점을 만들고 싶었지.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았지. 알바 50개 경험은 수많은 필터링 조건을 충족시켜야만 무기가 될 수 있었다는 걸 정말 나중에야 깨달았어.


그 날 나는 두 번째로 엄마의 눈물을 보았어. 중 3 때 내가 두 시간 동안 가출한 이후 처음으로 엄마가 흘린 눈물.. 내 자존감이 바닥을 치던 날, 엄마는 함께 눈물을 흘리며 나를 위로해주셨지. 누군가 힘들 때 위로의 말을 건네는 것보다 그냥 조용히 그 감정을 함께 느껴주는 게 가장 큰 위로라는 걸 엄마도 아셨던 걸까?


그날 엄마와 함께 먹은 떡볶이는 평생 못 잊을 것 같아. 혼자 만의 세계에 갇혀지낼 때 유일하게 내 곁에서 손을 내밀어 주던 엄마. 나에게 떡볶이는 내가 힘든 시기를 함께 보냈던 음식이자 엄마와의 추억이 깃든 음식이야, 그날 이후 엄마와 의기투합해서 결국 해냈어.'



친구가 가장 좋아하는 떡볶이 집에서 함께 먹은 떡볶이

친구의 농도 짙은 이야기를 듣는 동안 멀겄던 떡볶이도 어느새 다 졸아 걸쭉해졌어요. 친구는 어서 먹자며 젓가락 질을 서둘렀어요.  친구의 외롭고 힘든 시간이 녹아있는 떡볶이었지만, 그 시간을 오롯이 감내하고 겪어낸 친구는 더 이상 떡볶이를 먹으며,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 했어요. 감정의 끝을 맛본 사람만이 그 감정을 안을 수 있는 것처럼요.


'이젠 더 이상 떡이 물렁물렁하게 느껴지지 않아. 오히려 떡볶이 같은 인생을 살고 싶어. 다양한 재료와 토핑이 어우러져 풍부한 맛을 내는 삶. 원하는 대로 토핑을 얹을 수 있고, 얼마나 오래 졸이느냐에 따라 국물의 농도도 달라지니까'


힘든 시간을 지나 비로소 자신과 맞는 조직에서 제 역할을 찾은 친구는 자신의 소울푸드인 떡볶이 같은 인생을 살고 싶대요. 자신의 삶에 더하고 싶은 가치들을 자율적으로 선택하고, 삶이 요리되는 속도를 스스로 조절하며 인생에서 피어나는 일들의 깊이와 농도를 결정하고 싶다고. 이제 막 사회생활을 시작한 친구는 자기만의 레시피로 떡볶이를 요리하기 시작했어요.

함께 소울푸드를 나눠 준 친구에게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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