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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컬쳐커넥터 김도희 Aug 25. 2018

나의 소울푸드, 콘지 한 그릇

홍콩 죽집 할머니가 건넨 위로 한 그릇 덕분에 지금의 내가 되었다.


저는 음식을 통해 한 사람의 세계를 이해할 수 있다고 믿어요. '내가 먹는 것이 곧 나다'라는 말의 대상을 확장하면 우리가 먹는 것이 곧 우리가 되고, 함께 음식을 나누는 우리는 서로의 취향과 기억의 조각들을 요리하며 서로 연결되는 경험을 하죠. 조금씩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마음의 조각들을 끄집어내는 거예요. 상대를 알게 되면, 상대가 자라온 환경과 문화를 조금씩 이해하게 되고, 그 이해를 바탕으로 인류는 다름을 존중하기도 하고, 서로의 아픔을 보듬을 수 있게 되지 않을까요. 그게 제가 바라는 작은 유토피아거든요.  '함께 먹는 식사'는 단순히 에너지를 섭취하는 행위를 넘어, 한 개인과 세상을 여행하는 시간 그 자체예요.

'엄마, 엄마의 소울푸드에 대한 글이 브런치에 소개됐다! 매일 수많은 사람들이 읽고 있다. 엄마와 소통할 수 있는 기회를 줘서 고맙다는 사람도 있어. 신기하제?'


'(ㅎㅎㅎ) 신기하네.. 내 얘기를 누가 읽노? 부끄럽다' 


당신의 소울푸드를 연재하기로 시작하고, 첫 글로 엄마의 이야기를 썼어요. 엄마의 이야기를 엄마가 모르는 많은 사람들이 읽고 있다는 사실에, 엄마는 쑥스럽지만 기분은 좋아 보였어요. 누군가 내 얘기에 귀를 기울여준다는 일 자체로도 큰 힘이 되니까요. 엄마는 인터뷰 이후, 당신 삶의 순간순간의 의미를 찾게 되었고, 자신의 삶을 보듬을 줄 알게 되었다고 했어요. 엄마의 소울푸드를 나눔으로써 다른 사람과 소통하기도 했지만, 가장 큰 수확은 엄마가 엄마 자신과 소통하게 되었다는 점이라고 고맙다고.


'고맙다. 근데 니는 니의 소울푸드가 있나? 엄마가 너를 키웠어도 성인이 된 이후로는 니랑 오래 떨어져 있었으니까 너를 잘 모르는 것 같다. 궁금하네.' 


곰곰이 생각해보니, 저는 엄마랑 성인이 된 이후로는 줄곧 떨어져 지냈어요. 대학 및 인턴 생활 때문에 그리고 스웨덴으로 유학을 가면서 늘 떨어져 지냈어요. 그 세월이 벌써 10년이네요. 때문에 서로 마주 앉아 밥 먹으며 대화를 나눌 기회도 없었죠. 그래서 사실 많이 부딪히기도 했어요. 엄마는 제 선택을 이해할 수 없을 때가 많았죠. 가장 가까운 사이인 부모 자식 관계이지만, 점점 멀어지고 있었던 거예요. 그래서 엄마에게 초대장을 보냈어요. 약속한 대로.


'도희의 소울푸드. 도희의 세계로 엄마를 초대합니다. 결국 우리는 좀 더 서로를 온전히 이해하게 될 거라 믿어요'.




콘지 한 그릇

엄마와 대화를 하다 곰곰이 '나의 소울푸드는 뭘까?' 고민하기 시작했어요. 내가 어떠한 감정을 온전히 겪어내고 극복한 음식이자 지금의 나를 만든 음식이 뭘까... 날 때부터 하루 삼시 세끼 수많은 끼니를 해결했지만 식사를 위한 식사가 아니었던 음식을 찾기는 생각보다 더 어려웠어요. 지금의 나를 만든 음식이라... 


멍 할수록 더 창의적인 사람이 된다고 하던가요? 멍 때리던 순간 제 머릿속을 가득 채웠던 음식 한 그릇이 있어요. 그 음식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기 전에 얼른 붙잡아 묶어두고 기억을 더듬거려 보았어요. 바로, 2012년 첫 솔로 해외 여행지였던 홍콩에서 먹은 홍콩 음식 '콘지' 였어요. 


기억하기 위해 기록해두었던 사진을 다시 펼쳐보았다.


'엄마, 엄마 음식이 아니어서 미안한데(ㅎㅎ).. 사실 나는 지금 하나를 꼽으라면 내가 아빠 돌아가시고 처음 해외여행할 때 홍콩에서 먹은 죽을 꼽을게. 아빠 돌아가시고 생각정리 겸 떠난 첫 솔로 여행지가 홍콩이었잖아. 근데 여행 중에 하루 진짜 아팠거든. 그동안 내게 너무 많은 일들이 일어나서 마음이랑 몸이 잠시 고장 났던 것 같아. 속이 너무 안 좋아서 홍콩식 죽인 '콘지'를 파는데 찾아갔어. 어쨌든, 말도 안 통하는 데 일단 한 그릇 시키고 앉아있었지. 그런데 음식이 나왔는데 어떻게 먹는지를 모르겠는 거야. 몸은 아프고 짜증도 나던 와중에, 주인 할머니가 내가 안 돼 보였는지 손 짓 발 짓으로 설명해주시다가, 그래도 헤매니 결국 직접 내 테이블로 와서 광둥어를 섞어가며 시범을 보여주시더라고. 그리고 숟가락을 내 손에 쥐어주시더라. 

그때, 참 많은 위로를 받은 것 같아, 아빠를 잃고 난 후의 허무함과 상실감이 컸는데. 내가 광둥어를 할 줄도 모르고, 할머니도 영어를 할 줄 모르니까 당연히 대화다운 대화는 한 마디도 못했지. 사실 어쩌면 흔한 외국인 관광객에게 밥 먹는 법을 알려주는 것 있었을 수도 있지만 내가 느낀 건 그게 아니었어. 할머니의 친절도 친절이지만 그 순간 그 할머니가 나의 마음 상태를 이해해주는 느낌이랄까? 

'많이 힘들었겠구나. 이 죽 한 그릇 먹고 잠시 쉬어가렴'. 


그때 그 감정을 생각하면 아직도 마음 한쪽이 아리는 것 같아. 돌이켜 보면, 처음 만난 사람인데도 내가 왜 아픈지 이해해주는 것 같았고, 그때 처음으로 '아, 국적, 나이, 인종에 상관없이 우리는 연결되어 있구나' 느꼈던 것 같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그때 그 강렬한 깨달음이 지금의 나를 만드는 데 큰 영향을 끼치지 않았나 싶네' 




엄마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어요. 그저 듣고만 계셨어요. 사실 저는 제가 어떤 생각을 지니고 살아왔는지, 왜 여행을 좋아하게 되었는지, 왜 자꾸만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싶어 하는지 엄마에게 한 번도 '왜'에 대해 털어놓은 적이 없죠. 사실, 쑥스럽기도 했고 정신 못 차린다고 혼날 게 뻔했거든요(ㅎㅎ) 엄마도 물을 기회도 없었고요. 


이야기가 끝난 후에도 엄마는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셨어요. 저도 한 동안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어요. 그저 아파서 먹은 죽 한 그릇인 줄 알았는데, 지금에서야 깨달았거든요. 그때 그 음식과 관련된 경험이 나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데 큰 영향을 미쳤구나. 음식을 통해 소통하고, 이해하며 우리가 연결되어 있음을 느끼는 일.


모녀는 한 동안 말이 없었지만, 저는 느낄 수 있었어요. 우리가 서로를 이제 조금씩 이해하기 시작했음을. 제가 소울푸드라는 다리 위에서 과거의 저와 연결된 것처럼, 엄마도 처음으로 딸의 세계로 들어오는 문을 열었거든요. 엄마 말씀이 맞았네요. '내 소울푸드를 나누면서 다른 사람이랑 소통하는 것도 의미 있었는데, 시간을 거슬러 과거의 나와 소통할 수 있어서 더 기뻤다. 고맙다.'


서로의 소울푸드를 나누는 동안 엄마와 저의 시간은 거꾸로 갔어요. 시간을 거슬러 가는 동안, 우리는 각자의 기억 속에 담겼던 수많은 감정들과 조우했어요. 농도가 짙기도 하고 옅기도 한. 옅어져 가지만 붙잡고 싶었던 기억과 감정들은 더 진하게, 너무 진하게 남았던 쓰디쓴 감정들은 비로소 눈물에 타서 보낼 수 있었어요. 덕분에 엄마와 나는 각자의 소중한 현재와 미래를 위해 지키고자 하는 것들의 농도를 다시 조절하게 되었어요.


당신의 소울푸드는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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