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는 글 l 대척점 스웨덴에서 내가 배운 것들
스웨덴에서 돌아온 지 반년이 되었다. 높은 사회적 신뢰도, 우수한 복지제도와 자연환경, 저녁이 있는 삶, 양성평등, 지속가능성 등 스웨덴을 대표적으로 수식하는 다양한 키워드에 끌려 유학을 결심했다. 이 키워드가 나를 매혹시킨 이유는 '인간적인 삶'의 근간을 이루는 환경을 제공했기 때문이었다. 성별, 나이, 내가 태어난 배경, 소득 수준 등 내게 주어진 외부적인 것들이 내 삶에 지대한 영향을 주기보다, 모든 인간이 개별적 존재로 존중받고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보장받는 사회. 2 년이라는 유학 기간 동안 완전한 사회의 구성원은 될 수 없을지 몰라도, 외부인의 시선으로 스웨덴 사회의 내부를 균형 있게 보고 싶어 나는 스웨덴으로 떠났다.
2년 간의 시간 동안 대학원생으로서 본분에 충실하면서도, 보다 큰 나의 관심사는 스웨덴 사회에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보고 이야기를 듣는 것이었다. 그리고 딱 2 년이 지나고 나는 스웨덴에서 한국으로 다시 돌아오기로 결심했다. 돌아오는 길 비행기에서 만난 한 외국인 친구는, 유학 후 현지 취업이나 정착을 포기하고 한국으로 돌아오는 게 아깝지 않냐며 나 대신 분통을 터뜨렸다. 그는 우크라이나 출신으로, 정치/경제적으로 불안한 우크라이나를 떠나 아내와 함께 독일에서 새로운 미래를 만들어 나가고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더 나은 삶을 위해 고국을 떠나 유학과 이민을 꿈꾼다. 그와 대화하면서 나 역시도 '내가 한국으로 돌아오기로 한 결정이 정말 어리석은 걸까? 비자가 만료되기 전 돌아가서 정착을 해봐야 할까?' 순간 자기 의심이 들기도 했지만, 스웨덴을 떠나면 서 언제든 내가 다시 돌아가고자 한다면 돌아올 수 있다는 믿음이 생겼다. 때문에 아쉬움은 있었지만 더 이상 불안하지 않았다. 더욱이, 스웨덴에 나가 있는 동안 그저 부정하고, 도피하고, 미워하기만 했던 한국 사회를 더 긍정적인 시각으로 보게 되고, 포용할 줄 알게 된 것은 스웨덴이 내게 준 큰 선물이었다. 때문에 비행기가 인천 공항에 착륙하는 순간, 나는 큰 설렘을 안고 내가 스웨덴에서 배운, 삶에서 지켜내고 싶은 것들을 적극적으로 실천하고 살겠다 다짐하며 내 몸과 마음도 한국에 온전히 발을 디뎠다.
그렇다면 반년이 지난 지금, 착륙하는 순간 다짐했던 것들을 잘 실천하며 살고 있는지 스스로에게 물어본다. 나는 내가 상상했던 내가 되고 있는가? 스웨덴에서 산 2년 동안 한국에서, 한국인으로서의 나는 어떻게 삶을 대하고 있는가? 스스로 나의 지난 6개월을 돌아보면, 여전히 불안하고, 길을 헤매는 동안 흔들리며 마음이 바쁠 때도 많았다. 하지만, 보다 분명한 것은 미래에 대한 불안이 더 이상 부정적으로만 다가오기보다 설렘을 동반한다는 것과 현재에 집중하고자 노력한다는 점이다. 무엇보다 쓸데없는 걱정이 줄고, 나를 규정하는 나이, 성별, 학력 등 외부적인 조건에 구애받지 않고 한 인간으로서의 내게 질문하는 시간이 많아진 것은 가장 긍정적인 변화다. 스웨덴에서 지낸 2년 동안 여러 외부의 걱정과 사회적 압박에서 벗어나 오롯이 나의 욕구와 마음의 소리에 집중할 수 있었던 시간 덕분이다.
늘 시간에 쫓겨 뛰어다니며,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늘 불안해하던 내게 가족과 친구들은 한결 여유로워졌다고 한다. '도희야, 여유가 많이 생긴 것 같아'. 가장 가까운 존재인 엄마도 내가 많이 여유로워졌다고 한다. (그래서 우리 엄마는 너 나이대에 남들은 이만큼 가 있는데, 너는 너무 여유롭다며 가끔 답답해하시기도 하지만..). 시간적인 여유뿐만 아니라 마음적인 여유가 생긴 것은 내가 느끼는 가장 큰 변화다. 늘 바쁘고, 경쟁하고, 거리의 수많은 자극에 휩싸여 정신없는 한국에서 살던 내가, 느리고, 경쟁하기보다 협동하고, 아주 고요한 사회인 대척점에 있는 스웨덴에 살다온 영향이 내 삶 곳곳에 스며들고 있다.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인 의식주에도 덜 욕심을 부리고, 늘 원대하게 가꾸고자 했던 인간관계, 진로, 꿈 등에 대해서도 보다 관용적이고 한 발 물러서 객관적으로 보고자 노력하게 되었다. 대신, 가족, 사랑, 현재에 더 큰 애정을 품고 의식적으로 더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붓고자 노력하게 되었다. 하지만, 관용과 여유가 두리뭉실한 삶을 의미하지는 않음을 나는 안다. 지난 2년 동안 내가 경험한 자연환경, 사회구조, 문화와는 너무 다른 스웨덴에서 사는 동안, 내 마음속으로 향하는 화살은 더욱 또렷하고 날카로워지고 있다.
어릴 적 꿈꿨던 유토피아인 스웨덴으로 떠났지만, 이 세상 어디에도 유토피아는 존재하지 않음을 깨닫고 온 2년. 대신 그 시간 덕분에 나는 어디에 살든 나만의 유토피아를 가꿔나가야 함을 깨달았다. 파랑새는 내 마음속에 있다. 길고 긴 20대의 방황과 질문 끝에 떠난 스웨덴에서 2년이 늘 바쁘고, 불안하고, 경쟁하고, 남과 비교하며 살던 내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글로서 남기는 작업을 시작하는 지금, 나의 부족한 경험이 누군가에게는 작은 울림을 주거나 선택을 할 때 참고가 되길 바라는 마음뿐이다. 그걸로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