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웨덴 사회를 구성하는 인간다움의 가치
지난 2년 동안 독자분들이 내 브런치를 찾아 들어오는 통계를 살펴보면, 스웨덴 이민이라는 키워드가 가장 많다. 바쁘고, 사람 많고, 경쟁적인 한국 사회를 떠나 우수한 복지와 여유로운 삶으로 정평이 나 있는 스웨덴에서 살고 싶다는 바람에서라 추측해본다. 나 역시도 많은 분들과 마찬가지로 미디어에서 비친 북유럽의 우수한 복지와 여유로운 삶에 매혹되어 유학을 결심했다. 하지만 이 외에도 나의 유학 결심에 큰 영향을 미친 스웨덴을 대표하는 가치들이 있었다. 그 6가지는 SWEDEN의 여섯 개의 알파벳으로 표현할 수 있는데, Sustainability(지속가능성), Welfare System(복지), Equality(평등), Diversity(다양성). Education(교육), 그리고 Nature(자연)이었다. 특히, 평등은 내가 삶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 중 하나였는데, 대학 수업 때 북유럽 국가 대부분이 조직이나 사회에서 상하 위계질서가 엄격하지 않고, 역할에 따라 소통한다는 점이 매우 인상 깊었다. 나이, 계급, 직함에 따른 위계질서가 굉장히 엄격한 한국 사회에서 자라난 나로서는 매우 궁금한 문화였다. 최근 몇 년 우리 사회를 얼룩지게 했던 갑질 문화에 지친 많은 사람들에게도 스웨덴의 평등이라는 가치는 굉장히 매력적으로 다가갔으리라 생각해본다.
사회구조적인 다름을 떠나, 내 개인적인 스웨덴 유학에 관한 관심은 내가 자라온 환경과 굉장히 밀접하다. 우리나라 대표 공업도시인 울산에서 태어난 나는 대학 진학을 위해 서울에 올라오기까지 20년 동안 '집-회사'를 3교대로 출퇴근하는 수많은 아버지들을 보며 자랐다. 고등학교 진학 후, 선생님께서 아버지가 현대 계열사에 근무하시는 학생은 손들어보라고 했는데, 70% 이상의 학생들이 손을 들었다. 나는 간간히 방학 때 가족들과 여행을 하기도 했지만, 대부분 내 머릿속에 남은 아빠에 대한 기억은 작업복을 입고, 출퇴근하는 모습이다. 그러다 2012년, 사고로 갑작스레 아빠가 돌아가시면서 가장 가까이에서 죽음을 느꼈고, '삶이란 무엇인지'에 대해 처음으로 고민하기 시작했다. 아빠가 회사와 집이라는 쳇바퀴 속에서 수 십 년을 보내는 동안 진정한 아빠의 삶은 있었을까 하는 연민이 느껴졌다. 또한, 나 역시도 '학교- 집'이라는 쳇바퀴를 구르는 긴 입시 기간을 거쳐, 대학 진학이라는 단일 목표만을 향해 버펄로처럼 달려왔음을 깨달았다. 그 당시, 사촌오빠의 추천으로 읽게 된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이라는 책은 내게 죽음을 늘 가까이 생각하면서, 진정한 삶의 의미에 대해 질문을 던지도록 도와주었다. '나는 어떤 삶을 살고 싶은가?' '내일 죽는다면 나는 어떤 선택을 내리겠는가?'. 태어난 것은 나의 선택이 아니었지만, 내 삶을 흘러가는 대로 내버려 두거나 포기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살아있음의 이유는 결국 각자의 삶을 자신만의 빛깔로 채워나가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처음으로 '내 삶'을 어떻게 가꾸고 싶은지 질문한 순간이었다.
특히, 아버지의 죽음은 국내 대기업의 근무 환경 및 우리 사회의 복지시스템과 행복에 대해 생각해보게 했다. OECD 국가 중 근무 시간이 가장 길고, 생산성은 낮으며, 자살률은 세계 최고, 행복도는 최저라는 수식을 달고 다니는 대한민국에 대한 반감도 생긴 것이 사실이다. 이러한 감정은 '전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복지국가'라는 타이틀을 단 북유럽 국가들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졌고, 언젠가는 이 곳에서 정착을 하고 싶다는 막연한 이상을 품게 했다. 북유럽 국가들에 대한 막연한 이상은 이 국가들의 시스템에 관한 책, 기사, 다큐멘터리와 같은 다양한 자료들을 찾아보게 했지만 이런 자료들이 내 유학 결정에 적극적으로 영향을 끼친 것은 아니다.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존재는 대학 수업에서 만난 북유럽 출신의 친구들이었다. 그들은 수업 시간에 자신의 의견을 내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으며, 그렇다고 해서 독선적이지도 않았다. 주장은 하되 고집하지 않는 자세와 특히 아르바이트, 여행, 유학을 통해 기른 독립성은 귀감이 되기에 충분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독립해 스스로의 삶을 설계해나가는 친구들의 모습은 나와 너무나 달랐다. 그들이 어떻게 이러한 사고를 하고 살아가게 되었는지 궁금해 물었을 때, 가정이나 학교에서 받는 교육이 단순히 취업이나 대입을 위한 것이 아닌 개인을 발견하는 과정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느꼈다. 단순히 학교의 교육방식뿐만 아니라 삶을 대하는 방식이 달랐던 것이다. 교육은 지식을 학습하는 것뿐만 아니라 다양한 비판적인 사고를 통해 자신이 '행복'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가는 과정이기에 우리의 자율성이 보장되어야 한다는 생각은 나를 매료시키기에 충분했다.
노르웨이, 덴마크, 스웨덴, 핀란드, 아이슬란드 노르딕 국가 5개 국은 각자의 주권을 가진 개별적인 국가였지만, 그들이 공유하는 문화는 유사한 점이 많았다. 그중 스웨덴은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재벌 의존도가 높은 경제구조와 5개국 중 가장 인구가 많다는 점, 그리고 영어로 제공되는 석사 유학 프로그램이 1,000개 이상이 된다는 점은 유학지로서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특히, 내가 선택한 우메오 대학은 북부 스웨덴에 위치해 있어 아주 극한의 자연환경과 어둡고 긴 겨울을 2년 동안 견뎌내야 했는데, 이 혹독한 자연환경에 인간으로서의 나의 적응력을 시험하기에 아주 적합한 곳이었다. 스웨덴 사회에 대한 궁금증과 인간으로서의 나의 적응력을 시험하기 위해, 나는 그렇게 스웨덴으로 떠났다.
그렇다면 지난 2년, 스웨덴에서 유학하는 동안 스웨덴은 내가 꿈꾸던 모습과 많이 닮았을까? 현실과 이상의 괴리는 없었을까? 스웨덴에서 내가 배워오고자 했던 가치들이 한국으로 돌아온 지금 내 삶에는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을까?
내가 생각한 스웨덴과 실제 살면서 경험한 스웨덴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다만, 스웨덴에서 살면서 복지국가의 이면을 보기도 했고, 길고 긴 겨울을 보내며 기후가 나의 기분이나 삶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깨닫기도 했다. 하지만 여전히 나는 스웨덴 사회가 자신들이 가꿔온 '인간적인 삶'을 위한 가치들을 지켜내기 위해 열심히 투쟁하고 있다는 점에서 배울 점이 많다고 생각한다. 지속 가능한 삶, 가족 중심의 사회, 집이 삶에 지니는 의미, 사회적 약자의 관점에서 디자인된 사회, 다름을 존중하는 사회, 개인의 삶의 템포를 존중해주는 사회 등 내가 지켜내고 싶은 가치들을 이제는 내 가슴속에서 지켜내고자 한다. 어디에서 살든 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