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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컬쳐커넥터 김도희 Jan 07. 2019

외식에는 없는 요리의 매력

요리는 한 사람과 그를 둘러싼 우주를 이해하는 행위다.

그토록 살고 싶다고 바라던 스웨덴으로 유학을 떠난 2년 후, 나는 그토록 탈출하고 싶다고 생각했던 한국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참 신기하게도 부정하고 외면하기만 했던 한국 사회에 살고 있는 지금, 나는 지금껏 한국에서 살아온 27여 년의 세월 동안 가장 덜 불안하고, 가장 안정감 있는 시간을 보내고 있다. 내가 변한 걸까? 한국 사회가 변한 걸까? 그 무엇도 정체돼있는 것은 없기에 나도 이 곳도 2년 동안 변했을 것이다. 정도의 차이만 조금 있을 뿐.

가장 불안한 시기에 있는 만큼 완벽하게 안정된 생활을 꾸리고 있는 건 아니지만, 과거의 나를 떠올려보면 스스로도 지금의 안정되고 여유로워진 내가 가끔은 의아하다. 우리보다 느리고 여유 있고 자극이 덜한 스웨덴에서 살다온 영향일까? 전반적으로 삶을 대하는 자세와 삶을 끌어가는 속도에 여유와 변화가 생겼음을 느낀다. 이 변화들은 내 삶 곳곳의 개별적인 요소에 조금씩 스며들며 조금은 더 인간적이고, 여유롭고 관용적인 손길로 내 삶을 어루만지고 있다. 스웨덴도 유토피아는 아니다. 하지만 한국 사회의 가치와 그 곳의 가치가 대척점에 있기에 앞으로의 글에서는 스웨덴에서 산 경험이 내가 똑같은 환경을 인식하는 데 어떤 변화를 끼쳤는지 나눠보고자 한다.

스웨덴과 한국, 자연환경에서부터 라이프스타일까지 너무나도 다른 두 나라다. 어쩌면 우리에겐 느린 행정처리 속도 때문에 답답하고, 즐길거리 없는 심심한 나라일지도 모르는 스웨덴이지만, 반대로 생각해보면 삶의 속도가 느려 스트레스가 덜하고 가정과 집이 중심이 되는 사회이다. 여러 측면에서 대척점에 있는 두 사회지만, 내가 지난 2년 스웨덴에서 살면서 느낀 가장 큰 차이는 뭐니 뭐니 해도 '요리 문화'이다. 특히 자취생의 입장에서 말이다.


서울에서 8년 동안 자취를 하면서 내가 집에서 요리를 해 먹은 횟수를 곰곰이 헤아려봤다. 1년을 기준으로 집에서 요리한 횟수는 손에 꼽는다. 반면, 스웨덴에서 요리를 해먹은 횟수는 얼마나 될까? 오히려 외식한 횟수가 손에 꼽는다. 1주일에 많이 하면 한 번 했을까. 스웨덴에서 한국으로 유학 왔던 내 스웨덴 친구는 한국에 사는 2년 동안 '단 한 번' 요리를 했다고 했다. '맛있는 음식도 많고, 해먹는게 더 비싸서 굳이 요리할 필요가 없던 걸?'


스웨덴과 서울의 물가 비교(출처: Numbeo)
스웨덴 학교에 설치된 전자레인지

스웨덴은 외식 문화가 크게 발달하지 않았다. 추운 기후와 혹독한 자연환경 때문에 식문화가 발달하지 않았고, 인건비가 비싸 외식비가 굉장히 비싸다. 그런데 비싼 만큼 가성비 좋은 음식을 사 먹기도 어렵다. 하지만 반대로 장바구니 물가는 굉장히 저렴해서 외식할 돈의 반도 안 되는 금액으로 충분히 좋은 식자재를 사 푸짐하고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먹을 수 있다. 때문에 스웨덴에서는 요리하는 게 늘 일상이다. 특히, 우리나라 대학생들과 달리 스웨덴 대학생들은 늘 도시락을 싸서 학교에 간다. 두 나라의 학생 모두 주머니 사정이 가벼운 건 똑같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1인 가구 기준으로 장바구니 물가가 비싸고, 상대적으로 사 먹는 게 싸게 치지만 스웨덴에서는 그 금액 차이가 상당하기 때문에 도시락을 싸다니는 것이 훨씬 경제적이다. 이 때문에 흥미롭게도 스웨덴 대학에서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는 전자레인지다. 학교 곳곳에 설치된 수십대의 전자레인지는 신선한 문화 충격이었다.


친구들과 함께한 다양한 식사 자리

지난 2년 동안 내게 가장 중대한 문제는 '오늘 뭐 먹지?'였다. 먹을 게 많아서 고민하는 게 아닌, 무얼 만들어 먹을까 늘 고민하던 일상. 이런 내게 엄마는 '너는 요리 공부하러 스웨덴으로 유학 갔니?'라고 핀잔을 주시곤 했다. 하지만, 삼시 세끼 무얼 먹을까 치열하게 고민하고, 나 자신과 친구들에게 요리를 많이 해준 덕분에 나는 요리하는 즐거움을 알게 됐다. 늘 바쁘고 귀찮게만 여겨지던 요리하던 시간은 오히려 여유롭고 즐거운 시간이었다. 외식을 하면 차려진 밥상에 수저만 얹어 맛있게 먹고 나오면 된다. 하지만 요리를 하는 동안 나는 여유롭게 음악을 듣거나, 주방에서 만난 친구와 이야기하며 서로의 세계를 공유했다. 혼밥을 해도 요리를 하면서 더 다양한 나의 입맛과 취향에 대해 알게 되었고, 친구와 함께 먹을 때는 친구의 문화와 추억이 깃든 음식을 맛보며 다양한 나라로 여행할 수 있었다. 특히 남을 위해 요리하던 시간은 타인을 더욱 가까이서 들여 보게 된 시간이다. 상대가 좋아하는 음식은 무엇인지, 못 먹는 것은 무엇인지 그리고 어떤 재료를 쓰는 게 가장 좋을지 등 이 모든 게 상대에 대한 배려이고, 이해이고, 사랑임을 깨달았다. 보다 세세한 질문을 통해 나는 상대에게 조금씩 가까워진다.


스웨덴에서 2년 동안 하루도 안 빠지고 요리를 하면서 음식은 내게 한 개인과 문화를 이해할 수 있는 매개체이자, 나의 사랑을 담는 매체였다. 채식주의자인 친구를 통해서는 채식의 세계를 처음 경험하기도 했고, 한 번도 가보지 않은 아프리카 국가인 수단 음식을 먹어보기도 했다. 임신을 한 친구에게는 미역국을 끓여주며 출산을 준비하는 데 힘을 보태기도 했다. 돌이켜보면 요리가 일상이었던 지난 2년은 나의 미각을 더 다양한 맛에 노출시키고 제로에 불과했던 요리 내공을 쌓는 시간이기도 했지만, 한 개인을 이해하는 내공을 쌓는 시간이었다. 함께 장을 보고, 재료를 손질하고, 요리를 하고, 밥을 먹는 긴 시간 동안 우리가 만드는 음식에는 우리의 이야기가 톡톡 양념으로 뿌려졌다. 함께 식사하기 위해 모인 자리는 결국 한 개인을 넘어 그를 둘러싼 문화와 나라, 우주를 이해하는 자리가 되었다. 귀찮고 번거로운 과정에는 결국 상대를 위한 나의 노력이 스며들었고, 함께 요리를 하며 우리는 좀 더 가까워졌다. 외식할 때는 느낄 수 없는 촘촘한 대화가 이어졌다.


한국에 돌아온 지 반년, 2년간 스웨덴에서 쌓았던 내공을 발휘할 기회는 사실 많지는 않다. 길거리 곳곳에 맛있는 음식이 가득하고, 저렴하고, 편리해서 그 유혹을 뿌리치기란 쉽지가 않다. 집에 누군가를 초대해 음식을 나눠먹는 것도 정말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이 글을 쓰는 내내 나는 일부러라도 나와 남을 위해 요리하는 시간을 가지도록 노력해야겠다고 다짐한다. 직접 재료를 고르고, 다듬고, 요리하는 동안 나는 자연, 나 자신 그리고 나와 연결된 사람들에게 가까워진다. 그리고 이 시간은 수많은 자극으로부터 잠시나마 자유로워질 수 있는 시간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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