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컬쳐커넥터 김도희 Feb 24. 2019

북유럽 마트에서는 선택 장애 겪을 일이 없다?

 북유럽식 지속가능한 소비와 경영에 대하여

 선택 장애는 선택지가 너무 많아 선택이 어려운 상황을 비유하는 말이다. 거리에 즐비한 수많은 레스토랑, 인터넷에 넘치는 수많은 맛집 추천 글을 보면 저녁 메뉴 하나를 정하기도 굉장히 버겁다. 하나의 선택지만 있으면 그것만 선택하면 되는데, 선택의 자유가 늘어날수록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게 된다. 하나의 선택지만 존재한다는 것은 선택의 자유가 없다는 뜻이기도 하지만, 선택을 고민할 여지가 없다는 점에서는 시간도 절약하고, 심리적으로도 더 편할 때도 있다.


그런데 나는 저녁 메뉴를 정할 때보다 더 자주 마트에서 선택 장애를 겪곤 한다. '내가 먹는 것이 곧 나'라는 말이 있듯이 내가 섭취하는 모든 것이 내 몸과 정신이 되기에 시리얼 하나를 살 때도, 어떤 재료와 성분이 들어있는지 등 전성분 표를 확인하게 된다. 혼자 진열대 앞에 서서 표를 확인하다 보면 시간이 훌쩍 흐른다.


스웨덴 슈퍼마켓 ICA의 다양한 우유(좌), 스웨덴의 다양한 채식 우유(우)/ 출처:(http://news.cision.com/ 와 www.gp.se)

그런데 역설적이게도 스웨덴에 사는 동안 내게 주어진 선택지는 한국 마트의 그것보다 더 다양했음에도 불구하고, 보다 빠르고 취향저격인 선택을 가능케 했다. 얼마나 다양했던 걸까? 예를 들어, 과자 하나를 고를 때도 크게 일반/유기농/무설탕/채식 과자가 있었고, 각 제품군에 또 다양한 브랜드의 과자 제품들이 있었다. 우유를 고를 때도, 우유와 채식 우유, 우유 중에서는 일반/저지방/ 무지방 우유에 더해 락토아제가 없는 우유, 유기농 우유, 채식 우유 중에는 코코넛/ 귀리/ 아몬드 우유 등 마실 수 있는 종류가 너무 많았다.


내가 가장 좋아하던 그래놀라 브랜드 Risenta(출처: 자사 홈페이지)

하지만 이 다양한 선택지 앞에서 내 식습관에 가장 적합한 식품을 고르는 데는 한국에서 보다 많은 시간이 들지 않았다. 특히 나는 나는 매일 아침으로 먹던 시리얼(무슬리)의 경우 전성분을 꼼꼼히 비교하곤 했다. 자주 먹는 음식인만큼 몸에 좋은 것을 먹고 싶었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도 굉장히 다양한 종류의 시리얼이 있지만, 많은 시리얼 제품에 설탕이 많아 고르기가 꽤나 힘들었다. 하지만 스웨덴에서는 설탕없이 출시된 제품들과, 순수 곡물들과 다양한 건조과일로만 구성된 무슬리가 많았다. 더군다나 이 사실이 제품 포장에 읽기 쉽게 드러나 있어, 오히려 성분을 확인하는 시간이 줄었고 빠른 선택을 가능케 했다. 믿고 먹을 수 있는 브랜드를 발견하는 경우에는 더 빠른 선택이 가능했다. 브랜드에 대한 나의 신뢰와 충성도 덕분에!


우유도 마찬가지다. 우유를 잘 소화하지 못하고, 채식을 실천하고 싶었던 나는 우유와 같은 음료가 필요할 때는 항상 귀리나 아몬드 우유를 샀고, 유기농과 일반 제품의 가격 차가 크지 않았기에 합리적인 가격을 제공하는 유기농 제품을 구매했다. 다양한 소비자의 식습관을 존중할 뿐만 아니라 건강과 환경적으로 지속 가능한 소비를 가능케 하는 식품들이 많을수록 소비자들은 자신의 기호와 철학에 따라 특정 브랜드나 제품을 믿고 구매하게 된다. 인상 깊게도 북유럽의 많은 브랜드에서 지속 가능한 식품 소비를 가능케하는 제품들을 적극적으로 출시하고 있었다. 이미 내 소비 목록은 이 제품군으로 제한되었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더 나은 먹을거리를 찾기 위해 들이는 시간을 줄여주었다. Utan socker(무설탕), mindre 30% socker(30% 저당 제품), Vegetarisk(채식), Eko(유기농), Whole-grain(통밀) 등 많은 제품은 브랜드 이름보다 어떤 성분이 들었는 적극적으로 패키지에 표시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패키징도 종이상자 안에 따로 비닐없이 내용물이 들어있었다.


Orkla LiveYourGreen 행사(2019.02.19), Caroline(중간)

어떤 이유에서 북유럽의 많은 식품 기업들은 지속 가능한 상품을 생산하고자 노력하는 걸까? 이에 대한 대답을 북유럽 최대 식품/소비재 기업인 Orkla의 아시아 총 담당 Karolina(캐롤리나)와 이야기를 나누며 찾을 수 있었다.


"Orkla의 가장 중요한 어젠다는 Sustainability(지속가능성)이에요. 소비자의 건강뿐만 아니라 환경적으로도 지속 가능한 식품을 생산하는 게 우리 목표죠. 북유럽 사람들은 어릴 때부터 자연의 소중함을 자연스레 배워요. 여름엔 숲에서 베리나 버섯을 따서 먹고, 호수에 수영을 가고, 강에서 낚시도 하는 등 자연에서 많은 자유 시간을 보내거든요. 자연은 삶의 큰 일부고, 자연으로부터 받는 게 너무 많기 때문에 자연스레 자연보호도 실천하게 되죠. 때문에 소비자들은 소비재를 구매할 때도 친환경 또는 유기농 제품을 선호해요. 건강에도 좋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자연을 위하는 길이 결국 인간의 지속 가능한 삶을 위한 것이죠.

유기농, 동물복지, 저나트륨/저당, 친환경, 재활용 등이 우리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키워드예요. 실제로 Orkla는 2015년에서 2018년에 걸쳐 전 제품군에서  80톤에 이르는 소금을 줄였어요. 설탕의 경우, 2017년에만 1040톤을 줄였죠. 더 건강한 먹거리를 위해 2020년까지 Orkla의 전 제품군에서 소금, 설탕, 포화지방을 지속적으로 줄이는 게 목표예요. 한편, 우리는 식품 원료도 자연 생태계를 해치지 않는 것으로 골라요. 이것이 소비자들이 원하는 것이기도 하죠. 북유럽에서 많이 먹는 Kalles라는 훈제 대구알은 MSC 인증을 받았어요. 이 인증은 정해진 어획량을 지키며 해양 생태계를 해치지 않는 범위 내에서 포획된 생선에 부여되는 마크예요. 실제 The Sustainable Brand Index 2018에 따르면, 노르웨이의 소비자 62%가 제품의 지속가능성 여부가 구매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했어요.

포장지와 플라스틱 용기가 분리 가능한 패키징(직접 촬영)

소비자의 소비성향과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위해 Orkla는 제품 패키징도 자연을 최대한 오염시키지 않는 재활용 가능한 것으로 생산하고 있어요. 예를 들면, 이 간편식 용기는 플라스틱의 재활용을 위해  플라스틱 자체를 코팅하거나 도색하는 대신, 그 위에 재활용 가능한 종이로 덮었죠. 사용 후 쉽게 종이와 플라스틱이 분리되도록 절취선을 만들어 디자인했죠"


캐롤리나는 지속가능성은 Orkla에서 가장 중요하게 다루는 어젠다라고 소개했다. 자회사의 제품을 자랑스럽게 소개하는 그녀의 목소리와 태도에서 지속가능성은 공허한 울림이 아닌 단단하고 실체 있는 것으로 다가왔다. 지속 가능한 생산과 경영을 위해서는 더 많은 리소스가 들 텐데, 이윤추구를 목적으로 하는 기업에서 지속가능성을 적극적으로 리드하고 있는 점이 인상 깊었다. 기업의 확고한 철학도 인상 깊었지만, 북유럽 소비자들이 의식적으로 지속 가능한 소비를 하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라 생각했다.


문득, 2017년 여름 스웨덴의 이케아 박물관을 방문했을 때가 생각난다. 박물관의 한 전시관에서 이케아에서 유통되는 모든 연어는 Kalles 제품과 같이 MSC 인증을 받은 것이라고 강조하고 있었다. 책임 있는 소비자와 책임 있는 기업, 그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이 둘은 긍정적인 상호작용을 하며, 인류의 지속 가능한 삶을 위해 책임 있는 소비와 경영활동을 하고 있었다.


이런 환경은 스웨덴 2년 동안 사는 내내, 나 역시도 책임 있는 소비를 하고자 노력을 많이 하게끔 만들었다. 채식 또는 유기농 제품을 좀 더 자주 소비하고, 포장과 플라스틱 사용을 지양하고, 텀블러를 들고 다니는 등의 생활 속 작은 실천들은 내 건강을 위함이기도 했지만, 내가 사는 공동체를 위함이기도 했다. 그리고 이는 한국에서의 내 소비 행태에도 영향을 주고 있다. 마트에 갈 때는 항상 백팩이나 장바구니를 가져가고, 비닐에 야채를 담지 않는다. 꼭 필요한 경우에는, 차라리 하나의 비닐에 모아 계산대로 가져간다. 카페에 갈 때는 항상 텀블러나 머그잔을 들고 다닌다. 몇몇 지인은 나 하나 이런다고 해서 큰 변화는 없다고도 한다. 어쩌면 정말 현실적인 지적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남을 변화시키거나 남이 변하길 바라면서, 정작 자신이 먼저 변하지 않는다'는 벤자민 프랭클린의 말은, 늘 사회와 다른 사람들이 변하길 바라던 나에게 나부터 변화를 실천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가르쳐주었다. 일상에서 지속 가능성을 실천하는 법은 생각보다 어렵지 않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