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 C.S.Lewis -

by 도크라테스 Apr 16. 2019

집에 대한 생각의 변화

카페유랑자에서 집순이가 되었다.

집은 태어나서 우리가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고, 사적인 비밀을 많이 저장해두는 곳이다. 어릴 적의 나는 내 방 곳곳에, 특히 책장에 많은 비밀을 저장해두었다. 책 사이에 용돈을 숨기기도 하고, 친구들로부터 받은 편지나 나의 조그만 일기장을 숨기기도 했다. 이런 나만의 공간이 고등학교로 진학한 이후 애석하게도 눈만 부치는 공간이 되었다. 야간 자율학습 후 밤 11시 30분경 집에 돌아오면 나는 침대에 쓰러지기 바빴고, 눈을 뜨자마자 학교로 오기 바빴다. 서울로 대학을 와서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각양각색의 놀거리가 많은 서울 탐험이 재밌기도 했지만, 사실 좁은 집에서 혼자 남겨지는 것에 대한 답답함이 나를 자꾸 밖으로 이끌었다. 이웃과의 교류도 딱히 없고, 평균 5~6평에 이르던 작은 집은 때로는 감옥같이 느껴졌다. 때문에 주말에도 나는 어김없이 학교 근처 카페를 찾아 집을 나왔다. '어디서 살 것인가'의 저자 유현준 건축가에 따르면 대도시에 살고, 소득이 낮을수록 집에서 한 개인이 머무는 정주공간이 좁아진다. 이 좁아진 공간을 보완하기 위해 도시 곳곳의 카페가 커피값을 받고 공간을 제공한다. 카페 유랑자 내 이야기였다. 그런데, 수년 째 카페를 찾아 유랑하던 내 생활 패턴은 스웨덴에서 살기 시작하며 깨지고 말았다. 2년 동안 내가 가장 많은 시간을 보냈고, 소중한 사람들과의 추억이 깃들어 있으며 애정을 갖고 꾸민 곳, 바로 내 집이다. 


집은 늘 탈출하고 싶고 답답한 곳이었는데, 스웨덴에서 2년 동안 집은 누군가를 초대해 함께 시간을 보내고 쉬고 싶은 곳이 되어주었다.

 



   집, 탈출하고 싶은 곳에서 쉬고 싶은 곳으로
23^m 의 내 방(2016-2017)

스웨덴 도착 후 집 계약을 하기 위해 학교 하우징 오피스에 들린 날, 한껏 들떴던 나의 모습은 아직도 눈에 선명하다. '방이 너무 크고 깨끗해! 창도 정말 크고, 안에 화장실과 샤워 공간도 따로 있어. 공용 주방도 꽤나 깨끗하고 정말 넓어'. 한껏 들뜬 모습을 본 관계자는 선하게 웃으며, '많은 아시안 학생들이 처음 방을 보고 놀라곤 해'라고 말하며 그 반응들이 나와 같다고 했다. 아무래도 인구 과밀화된 대만, 홍콩, 일본 등 아시아에서 온 친구들 대부분이 평균 4~5평의 공간에서 살다 주방을 제외한 평균 7평의 개인적인 공간을 확보한 기쁨을 표출했으리라. 더욱이 주방이 방 밖으로 빠져있으니 실제 침실로 가용할 수 있는 공간은 더욱 넓다. 관계자는 스웨덴에서는 법적으로 한 개인이 인간적으로 살기 위해 제공해야 하는 방 사이즈와 창의 크기 등이 정해져 있어 무작정 개미 소굴처럼 작게 지을 수 없다고 했다. 또한, 몸이 불편한 사람들을 위해 휠체어가 접근할 수 있도록 건축과 인테리어를 위한 세부사항들이 법 조항으로 명시되어 있었다. 자취 생활 10년 동안 가장 넓은 개인적 공간을 가진 나는 처음으로 내 방을 머무르고 싶은 공간으로 꾸미고 싶은 욕심이 생겼다. 스웨덴에서 집은 단순히 개인을 안전하게 보호해주고, 삶의 근간을 제공해주는 물리적인 건축물 이상이었다. 이런 감정 처음이야...


그렇다면 스웨덴 사람들에게 집은 어떤 의미일까? 스웨덴 라이프스타일 브랜드인 IKEA도 작년 75주년을 맞아 늘 '집'만 생각해왔다고 하니, '집'이라는 공간이 스웨덴에서 얼마나 중요한지 의미를 지니는지 엿볼 수 있다. 스웨덴 사람들은 우리에 비해 하루 중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더 길고, 홈파티도 많이 한다. 그들에게 집은 생활의 근간이자 사회적 교류를 위한 공간이었다. 그렇다면 왜 집은 스웨덴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닐까?


눈 오는 우메오(좌), 싸온 점심 도시락을 먹는 우메오 대학생들(우)

먼저, 스웨덴의 날씨 때문이다. 스웨덴은 4계절 중 겨울이 춥고, 굉장히 길고 어두워 겨울에는 실내 활동을 많이 한다. 특히 내가 살던 북부 우메오는 11월 초 눈이 오기 시작해 5월까지 눈이 내리고, 해는 8~9시쯤 겨우 뜨기 시작해 오후 1~2시 되면 서서히 지기 시작한다. 나머지 시간 동안 도시는 캄캄한 어둠에 휩싸인다. 때문에 겨울에는 집에서 책을 읽거나, 티타임을 갖거나, 베이킹이나 요리 등 실내 활동을 하며 시간을 보낸다. 서울에서는 일과 후 늘 밖에서 하루의 시간을 보낸 나도, 스웨덴에서는 하루의 끝의 대부분을 집에서 보냈다. 스웨덴의 라이프스타일도 집이 중심이 된다. 스웨덴 사람들도 평균 8시간 근무를 하지만, 우리와 달리 저녁은 꼭 집에서 먹는다. 공부를 하는 학생들도 마찬가지다. 외식 문화가 발달하지 않은 요인도 있지만, 스웨덴에 가정 중심의 문화와 일과 삶의 균형이 잘 자리 잡혀 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점심은 간단하게 도시락을 싸오거나 샌드위치로 해결하고, 저녁은 가족 또는 친구와 함께 요리를 해서 먹는다. 장바구니 물가가 굉장히 저렴해 경제적이며(한국보다 저렴), 가족들과 요리와 식사를 하는 동안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을 중요하게 여기기 때문이다. 유학기간 2년 동안 나 역시도 집에서 혼자 요리를 해 먹거나, 친구들과 함께 요리를 해 2~3시간의 여유로운 저녁을 먹는 것이 늘 일상이었다. 


코리도 주방, 각자 찬장을 하나씩 받는다

특히 한국에서의 자취 생활과 가장 다른 점은 한 층에 같이 사는 친구들과 공용으로 쓰는 주방과 식사 공간이 따로 있었다는 점이다(요즘 우리나라에도 셰어하우스 형태로 많이 생기고 있다). 이런 형태의 아파트를 코리도(Koridoor)라 부르는데, 적게는 6명 많게는 12명의 학생들이 주방(냉장고, 찬장, 인덕션, 오븐, 전자레인지, 식사 테이블)을 공유한다. 계획하지 않아도 주방에서 우연히 만난 코리도 친구와 저녁을 먹기도 하고, 다른 친구를 내 방으로 초대해 요리를 함께 해 먹기도 했다. 서울에서의 자취 생활 8년 내내 집에서 요리를 한 적이 거의 없던 내겐 큰 변화였다. 이렇게 소소한 저녁, 티타임, 생일 파티, 송년회, 신년회 등 나의 사회적 교류는 '집'을 중심으로 일어났다. 그러자 가장 개인적인 공간인 '집'은 사회적 교류를 위한 공간으로 탈바꿈했다. 그렇게 집은 외부인을 품으면서 가장 사적인 공간에서 사람들이 모여 관계를 맺는 작은 사회로 변신했다.


그렇다면 일을 하지 않고 학교를 가지 않는 주말은 어떨까? 주말을 맞이해 카페에서 브런치나 스웨덴식 티타임 FIKA(피카)를 하는 사람도 많지만, 요리를 해 먹는 게 일상인 스웨덴에서는 집이 카페가 된다. 굳이 시내 카페에 나갈 일이 없고서는 많은 사람들이 집에서 직접 브런치를 만들어 먹거나, 케이크를 굽고 커피 프레스로 커피를 내려 먹는다. 특히 요리를 직접 해 먹는 것이 외식을 하는 것보다 경제적이고, 집에서 편안한 시간을 보낼 수 있기 때문이다. 집에서 친구들과 티타임을 가지며 보드게임을 하거나 넷플릭스를 감상하는 시간은 내가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주말에 가장 편안하게 시간을 보내는 방법이었다.



스웨덴 친구네 초대 받은 저녁들

카페유랑자에서 집순이로 사는 동안 집에서의 만남은 우리가 시간에 쫓기지 않고 좀 더 밀도 있는 대화를 나누도록한다는 것을 느꼈다. 함께 요리를 하는 경우, 요리하는 시간부터 포함해 느긋하게 저녁 식사를 하고, 따뜻한 차 한잔을 마시는 시간까지. 1차, 2차, 3차가 모두 한 공간에서 일어나는 것이다. 식사 후 식기를 정리하고, 따뜻하게 구워지던 디저트를 꺼내 티타임을 가지는 시간은, 매번 다른 장소로 이동해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음식을 먹고 분위기를 느끼는 것보다는 불편하고 재미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조금의 불편함과 낮은 강도의 자극은 늘 띵동 하고 벨을 울리면 먹고 싶은 것을 주문할 수 있는 편리함과 1차, 2차, 3차 다른 장소에서의 변화무쌍함에 익숙하던 내게 오히려 '편함(안락함)'과 안정감으로 느껴졌다. 이것이 덴마크식으로 말하면 휘게한 느낌이다.


사실, 가장 사적인 공간인 집을 타인에게 내주는 일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한 번쯤 나의 공간을 나와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들에게 공개하는 일은 생각보다 매력적인 일이다. 책장에 꽂힌 책, 냉장고에 붙여진 자석, 곳곳에 걸린 액자, 화장실에 놓인 샤워 제품과 디퓨저, 바닥에 놓인 카펫 등 개인의 취향이 녹아있는 물건을 통해 우리는 말하지 않아도 서로의 취향에 대해 더 알아간다. 더욱이, 집안 곳곳에 놓인 사진이나 엽서는 어쩌면 순간의 점에 불과할지도 모를 우리의 만남을 연장해준다. 사진과 엽서를 통해 한 개인의 과거로 여행을 하고, 현재의 모습에 닿는 행위는 과거로부터 현재라는 물리적인 시간을 연장해주기도 하지만, 서로를 한 층 더 깊게 이해하면서 미래로 우리의 만남을 이어 줄 수도 있다. 집이 크든 작든, 화려하든 소박하든 간에 집은 그 자체로 한 사람을 들여다보는 가장 개인적이고 소중한 공간인 동시에, 개인과 개인을 잇는 사회적 교류의 공간이 된다.

 

'오늘은 어디 가지?' '맛집이 어디야?' 다양한 블로그 포스팅을 찾으며 만남의 장소를 물색하는 것도 신나는 일이지만, 한 번쯤 나의 공간으로 누군가를 초대해보는 것은 어떨까? 부담스럽다면 가까운 지인부터 시작해도 좋을 것이다. 서로를 잘 알고 있다고 여기던 우리에게, 집은 새로운 이야기를 들려줄지도 모른다. 집으로 누군가를 초대하는 것은 생각보다 어렵지 않고, 매력적인 일이다. 이처럼 늘 밖에서 하루의 대부분을 보내고 집은 잠만 자는 공간으로 인식해온 내게, 하루의 많은 시간을 집에서 보낸 2년의 시간은 집에 대한 인식을 바꿔놓았다. 앞으로 내가 어디에 살든 집은 나의 가장 사적인 공간이자, 가끔은 소중한 사람들과 교류할 수 있는 적당한 크기의 쾌적한 환경을 제공할 수 있는 곳이면 좋겠다. 편의시설이나 교통을 조금은 양보하더라도 인간답게 쉴 수 있는 공간을 찾는 것이 이제는 내게 가장 중요한 우선순위가 되었다. 그리고 집은 더 이상 탈출하고 싶은 공간이 아니라 머무르고 싶은 공간으로 가꾸게 되었다. 


스웨덴에서 돌아온 후 나는 집에서 보다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다. 





이전 01화 스웨덴에서 틔운 싹을 옮겨 심다.
brunch book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N포세대가 스웨덴에서 찾은 희망

매거진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