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 대한 생각의 변화
집은 태어나서 우리가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고, 사적인 비밀을 많이 저장해두는 곳이다. 어릴 적의 나는 내 방 곳곳에, 특히 책장에 많은 비밀을 저장해두었다. 책 사이에 용돈을 숨기기도 하고, 친구들로부터 받은 편지나 나의 조그만 일기장을 숨기기도 했다. 이런 나만의 공간이 고등학교로 진학한 이후 애석하게도 눈만 부치는 공간이 되었다. 야간 자율학습 후 밤 11시 30분경 집에 돌아오면 나는 침대에 쓰러지기 바빴고, 눈을 뜨자마자 학교로 오기 바빴다. 서울로 대학을 와서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각양각색의 놀거리가 많은 서울 탐험이 재밌기도 했지만, 사실 좁은 집에서 혼자 남겨지는 것에 대한 답답함이 나를 자꾸 밖으로 이끌었다. 이웃과의 교류도 딱히 없고, 평균 5~6평에 이르던 작은 집은 때로는 감옥같이 느껴졌다. 때문에 주말에도 나는 어김없이 학교 근처 카페를 찾아 집을 나왔다. '어디서 살 것인가'의 저자 유현준 건축가에 따르면 대도시에 살고, 소득이 낮을수록 집에서 한 개인이 머무는 정주공간이 좁아진다. 이 좁아진 공간을 보완하기 위해 도시 곳곳의 카페가 커피값을 받고 공간을 제공한다. 카페 유랑자 내 이야기였다. 그런데, 수년 째 카페를 찾아 유랑하던 내 생활 패턴은 스웨덴에서 살기 시작하며 깨지고 말았다. 2년 동안 내가 가장 많은 시간을 보냈고, 소중한 사람들과의 추억이 깃들어 있으며 애정을 갖고 꾸민 곳, 바로 내 집이다.
집은 늘 탈출하고 싶고 답답한 곳이었는데, 스웨덴에서 2년 동안 집은 누군가를 초대해 함께 시간을 보내고 쉬고 싶은 곳이 되어주었다.
집, 탈출하고 싶은 곳에서 쉬고 싶은 곳으로
스웨덴 도착 후 집 계약을 하기 위해 학교 하우징 오피스에 들린 날, 한껏 들떴던 나의 모습은 아직도 눈에 선명하다. '방이 너무 크고 깨끗해! 창도 정말 크고, 안에 화장실과 샤워 공간도 따로 있어. 공용 주방도 꽤나 깨끗하고 정말 넓어'. 한껏 들뜬 모습을 본 관계자는 선하게 웃으며, '많은 아시안 학생들이 처음 방을 보고 놀라곤 해'라고 말하며 그 반응들이 나와 같다고 했다. 아무래도 인구 과밀화된 대만, 홍콩, 일본 등 아시아에서 온 친구들 대부분이 평균 4~5평의 공간에서 살다 주방을 제외한 평균 7평의 개인적인 공간을 확보한 기쁨을 표출했으리라. 더욱이 주방이 방 밖으로 빠져있으니 실제 침실로 가용할 수 있는 공간은 더욱 넓다. 관계자는 스웨덴에서는 법적으로 한 개인이 인간적으로 살기 위해 제공해야 하는 방 사이즈와 창의 크기 등이 정해져 있어 무작정 개미 소굴처럼 작게 지을 수 없다고 했다. 또한, 몸이 불편한 사람들을 위해 휠체어가 접근할 수 있도록 건축과 인테리어를 위한 세부사항들이 법 조항으로 명시되어 있었다. 자취 생활 10년 동안 가장 넓은 개인적 공간을 가진 나는 처음으로 내 방을 머무르고 싶은 공간으로 꾸미고 싶은 욕심이 생겼다. 스웨덴에서 집은 단순히 개인을 안전하게 보호해주고, 삶의 근간을 제공해주는 물리적인 건축물 이상이었다.
그렇다면 스웨덴 사람들에게 집은 어떤 의미일까? 스웨덴 라이프스타일 브랜드인 IKEA도 늘 '집'만 생각해왔다고 하니, '집'이라는 공간이 스웨덴에서 얼마나 중요한지 의미를 지니는지 엿볼 수 있다. 스웨덴 사람들은 우리에 비해 하루 중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더 길고, 홈파티도 많이 한다. 그들에게 집은 생활의 근간이자 사회적 교류를 위한 공간이었다.
'오늘은 어디 가지?' '맛집이 어디야?' 다양한 블로그 포스팅을 찾으며 만남의 장소를 물색하는 것도 신나는 일이지만, 한 번쯤 나의 공간으로 누군가를 초대해보는 것은 어떨까? 부담스럽다면 가까운 지인부터 시작해도 좋을 것이다. 서로를 잘 알고 있다고 여기던 우리에게, 집은 새로운 이야기를 들려줄지도 모른다. 집으로 누군가를 초대하는 것은 생각보다 어렵지 않고, 매력적인 일이다. 이처럼 늘 밖에서 하루의 대부분을 보내고 집은 잠만 자는 공간으로 인식해온 내게, 하루의 많은 시간을 집에서 보낸 2년의 시간은 집에 대한 인식을 바꿔놓았다. 앞으로 내가 어디에 살든 집은 나의 가장 사적인 공간이자, 가끔은 소중한 사람들과 교류할 수 있는 적당한 크기의 쾌적한 환경을 제공할 수 있는 곳이면 좋겠다. 편의시설이나 교통을 조금은 양보하더라도 인간답게 쉴 수 있는 공간을 찾는 것이 이제는 내게 가장 중요한 우선순위가 되었다. 그리고 집은 더 이상 탈출하고 싶은 공간이 아니라 머무르고 싶은 공간으로 가꾸게 되었다.
스웨덴에서 돌아온 후 나는 집에서 보다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