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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컬쳐커넥터 김도희 Mar 26. 2019

김치가 북유럽 음식을 만났을 때

생각지 못한 의외의 찰떡궁합이 준 깨달음

배고플 때 우리는 음식을 먹지만, 음식은 단순히 먹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우리는 음식을 매개로 소중한 사람들과 만나 대화를 나눌 자리를 만들기도 하고, 사랑하는 사람에게 선물하기도 한다. 음식은 매 소중한 순간의 기록이다. 그래서 우리는 매일 인스타그램을 음식으로 도배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내게도 음식은 현재의 매 소중한 순간의 기록이지만, 한때 음식은 내게 '과거'의 사무치는 그리움이기도 했다. 2년 간 스웨덴에서의 유학생활 동안 한국이 그리울 때마다, 사랑하는 사람들이 보고 싶을 때마다 나는 한국 음식을 요리했다. 김치를 담그거나, 김밥을 만들거나, 전을 부치거나, 보쌈을 해 먹었다. 내가 한국에서 보냈던 소중한 사람들과의 기록을 복기하기 위해서. 그리고 스웨덴에서 돌아온 지금 나는, 북유럽 음식을 먹으며 그 소중했던 나의 기록들을 곱씹는다. 내가 즐겨먹던 음식의 맛에 집중하며, 내가 살던 작은 도시 우메오의 숲길, 시내로 뻗어나가던 자전거 전용 다리, 우메오 강가, 니달라 호수에서 바라본 오로라, 호수 근처 친구네 집에서 즐긴 바베큐 파티, 순간순간의 기록의 소리와 향기를 복기시킨다.


한국에 돌아온 후, 북유럽 음식을 찾기 어려울 줄만 알았는데 감사하게도 서울에 생각보다 많은 북유럽 음식이 있다. 이케아가 다섯 번째 매장을 연다는 소식과, 마켓컬리나 롯데, 현대백화점 등 주요 온/오프라인 채널을 통해 스타부르 캔 고등어, 통호밀 하드브레드 Finn Crisp, 대구알 스프레드 Kalles 등 여전히 소수지만 점점 더 다양한 북유럽 식품이 유통되는 것을 보면 더 많은 한국사람들이 북유럽 문화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고 확신하게 된다.


지난주에는 양재동에 있는 북유럽 디자인 브랜드를 수입하는 회사 Innometsa(이노메싸)에서 덴마크 가구 브랜드 VIPP 론칭 행사가 열려서 다녀오기도 했다. 덴마크 직원들, 국내에 거주하는 북유럽 사람들, 북유럽 디자인에 관심이 많은 한국 사람들이 모여 북유럽 문화로 이야기 꽃을 피웠고, 행사장에는 북유럽 음식이 가득했다. 노르웨이 최대 식품기업 Orkla의 캔 고등어 스타부르로 만든 북유럽식 오픈 샌드위치와, 훈제 대구알 스프레드가 곁들여진 바삭한 빵, 그리고 세상에서 '아마도' 가장 맛있는 맥주일지도 모른다는 덴마크 맥주 Carlsberg(칼스베리)가 행사장 테이블을 가득 매웠다. 한국에서 온전히 북유럽식으로 차려진 메뉴들이었다. 때문에 나는 한국에 있으면서도 꼭 북유럽에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북유럽 가구 브랜드, 북유럽 사람들, 북유럽 음식에 둘러싸였기 때문이다.


그날 저녁 특히 내 앞에 놓인 북유럽 음식을 음미하며, 나는 종종 사무치게 그립던 스웨덴에 대한 기억을 살포시 꺼내어 북유럽 향기에 살포시 실었다. 그러자 희미해져 가던 2년 간의 기억들은 그 순간만큼은 기억이라 치부하기엔 너무나 생생하게 내 앞에 살아났다. 음식은 나의 현재와 과거를 연결해주는 다리이자, 타임머신이었다. 일기장처럼 한 장 한 장 위에 순간의 기록을 활자로 새길 수는 없지만, 음식에 우리는 그 순간의 향기, 소리, 맛, 촉각 등 다양한 감각을 담을 수 있다. 그래서 음식은 일기장보다 더 입체적이고 세세한 기억을 저장하는 저장소다.


 

김치 크림치즈 캔고등어 미니파프리카

그런데, 그날 나는 음식이 나와 북유럽, 나의 현재와 과거를 이어주는 것 이상의 역할을 해내고 있음을 목격했다. 바로, 오리지널 북유럽 음식들 옆에 놓인 한국 북유럽 퓨전 음식,  '김치 캔 고등어 크림치즈 미니 파프리카'를 맛보면서. 김치, 크림치즈, 토마토소스, 캔 고등어, 참기름 등 너무나도 안 어울릴 것 같은 재료들이 한데 모여, 상상을 깰 정도로 너무나도 잘 어우러져 있었다. 단연 그날 메뉴 중 최고로 인기였다. 기후, 문화, 언어, 인종, 라이프스타일 등 양극단에 위치한 한국과 북유럽 국가의 거리감만큼, 각 나라를 대표하는 음식 간의 거리감은 좁힐 수 없을 줄 알았는데. 거리감을 좁히는 대신 한 데 섞어 버린 그 퓨전 음식은, 어쩌면 문화적으로 양극단에 위치한 한국과 북유럽 국가들이 생각만큼 이질적이지 않고, 잘 어울릴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었다. 섞음은 결국 조화로움을 증명해냈다.



스웨덴으로 유학을 떠나기 전까지는 한국과 북유럽 국가는 너무나도 다를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유학을 다녀온 이후, 한국에서 북유럽을 느끼며 나는 두 문화권 간의 거리감은 내 스스로가 만든 것임을 깨달았다. 내가 사랑하는 두 곳은 많이 다르지만, 그 다름은 평행선으로 이어지기보다, 궁극적으로는 조화라는 점으로도 향하고 있다. 내가 스웨덴에 사는 동안, 그리고 한국에서 북유럽 친구들을 만나며 느끼는 편안함도 여기서 비롯되는 것일 것이다.



>> 북유럽 캔고등어 레시피(인스타그램): stabbur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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