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생각을 바꾸면, 이 세상의 불합리한 모순이 다 해결될 수 있지 않을까요? 언젠가는 이 세상에서 기근이 없어지는 날이 올 거라 생각해요".
어릴 적 나는 세상을 바꾸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내가 경험한 불합리한 사회의 모순을 바다를 다 갈아엎을 것처럼 완전히 바꿀 수 있을 줄 알았다. 장 지글러의 책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를 읽고 토론을 하던 23살의 나는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더 먹고 싶은, 더 소유하고 싶은 욕심을 줄이고 제3세계와 나눈다면 언젠간 이 기근이 끝날 거라 생각해요' 그렇게 주장했더랬다. 모임을 이끌던 선배는 지긋이 웃었다. 얼마나 애송이처럼 보였을까. 당시의 나는 인간의 다양한 욕구, 욕망, 사회 구조적으로 얽힌 문제들을 제대로 알지도 이해하지도 못했지만, 인간의 잔인함, 폭력성, 불합리함을 외면하려고만 했더랬다. 하루에도 수없이 바뀌는 나의 욕망을 조금이라도 들여다보았더라면 좋았을 것을. 나는 결국 타인을 비추는 거울이다. '왜 사람들은 이렇게 생각하지 않을까?' '왜 변화하려 노력하지 않는 거지?', '왜 시스템은 이 모양 이 꼴일까?'. 그렇게 남 탓, 구조 탓만을 했다. 나를 먼저 돌아볼 것을.
'헬조선을 탈출하자' 이 나라가 싫었더랬다. 내가 태어날 곳을 선택하진 못했으면 앞으로 살 곳은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스무 살 첫 여권을 만들었다. 돈도 없고, 쉽사리 나갈 용기도 없었지만 자꾸 내 마음은 한국 밖으로 향했다. '더 나은 사회가 있지 않을까? 희망은 밖에 있지 않을까?'.
마음으로만 세계여행을 하던 내게 대학교 2학년 때 만난 존경하던 한 교수님은 우리와 비슷한 문화를 공유하는 가까운 나라부터 여행을 시작하라고 조언해주셨다. 그렇게 2010년 일본에서의 첫 해외여행을 시작으로, 중국, 대만 등 이웃 국가를 넘어 미국, 동남아시아, 유럽으로 나갔다. 주머니가 가벼웠던 내게 해외 대외활동은 가장 좋은 탈출 수단이 되기도 했다. '다른 나라 사람들의 행복의 비밀을 훔쳐와야지'
2010년 탈출에 맛을 들인 나는, 결국 2016년 전 세계에서 가장 행복지수가 높다는 북유럽 스웨덴에 정착하기로 했다. 사회가 개인의 행복을 위한 제도들을 잘 마련해 놓은 사회, '안정, 높은 삶의 질, 평화, 중용, 합의' 그들이 사는 세상은 무척이나 평화로워 보였다.'나도 이 곳에 살면 행복해질 수 있을 것 같아'. 조금씩 희망이 보였다. '그래 사는 곳을 바꾸자' 그게 답이야.
그리고... 2년 반이 지난 지금, 나는 다시 대한민국에서 키보드를 두드리며 헬조선 탈출기를 회상하고 있다. 20대 행복을 찾아서 쏘아 올렸던 우주선을 타고 다시 한국으로 돌아온 지 10개월이 흘렀다. 행복 정거장을 찾아 떠났던 나는 행복을 찾아 돌아왔다. 행복과 희망은 사소한 것에 깃들어 있었다. 내가 변하자, 이곳에서의 삶이 더욱 행복해졌다. 가족들이랑 더 많이 대화하고자 노력하고, 엄마랑 시간을 더 보내려고 한다. 조언은 귀담아 새겨듣되 내 마음을 다치게 하는 말은 한 번 더 걸러 듣고자한다. 진심어리 조언인지, 조언을 가장한 간섭인지, 그저 걱정인지... 조금씩 내 마음의 행복을 지키기위해 사물과 사람에 거리를 두기시작하니 더 이상 휩쓸리지만은 않는다. 다행히 조금은 더 단단해진 느낌이다.
나는 요즘 사소한 것, 작은 것들, 미시적인 것들에서 희망을 본다. 그리고 마음을 더 쓴다. 나 자신을 잘 돌보고, 나의 주변 사람들을 잘 돌보고, 내가 살고 싶은 삶을 위해 에너지를 쏟으려고 노력한다. 거창한 사회 변화를 꿈꿨던 내가 나부터 돌보기 시작하자, 나를 둘러싼 세계가 바뀌기 시작했다. 막연했던 세상을 바꾸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꿈이 오히려 더 구체화되기 시작했다.
여전히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미미하고, 앞으로도 그렇겠지. 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고, 미시적인 것들에서 희망을 보는 지금, 나는 더 이상 불행하지도 불안하지도 않다. 텅 비었던 내 삶은 조금씩 행복으로 가득 차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