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클리매거진을 시작한 후의 변화

우리가 함께 나누고 싶은 이야기임을 깨달았다.

by 국경 없는 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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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화요일부터 감사하게도 브런치에 'N포세대가 스웨덴에서 찾은 희망' 제목의 위클리 매거진을 연재할 기회를 얻었다. 다양한 독자분들에게 공개적으로 노출된 덕분에 새로운 독자분들도 많이 만났다. 내 글을 읽고, 라이크 버튼이나 구독을 통해 공감을 보내주신 많은 분들을 보며, 우리가 이 매거진을 통해 함께 나누고 싶은 이야기는 무엇인지, 내 글이 독자분들께 한 가닥의 희망이 될 수 있을지 곰곰이 생각하게 되었다. 매거진 연재 결심은 내가 전달하고 싶은 이야기로 시작했지만, 많은 분들과 연결되는 만큼 단순히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독자들이 필요로 하는 이야기인지, 어떻게 도움이 될 수 있는지 그 접점을 더욱 많이 생각해 보게 된다.


3년 전 스웨덴 유학 중 개인적인 기록을 위해 시작한 브런치가 이제는 더 이상 개인적인 공간만은 아니게 되었다. 더욱이 나의 글을 기다려주시는 분들과 오픈된 온라인 플랫폼에 글을 쓰는 사람으로서, 나의 텍스트 한 자 한 자가 다른 사람의 생각 또는 결정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생각하니 더욱 조심스럽다. 미천한 나의 지식과 경험을 공개적으로 나눠도 될까 하는 걱정에서부터, 표류하는 생각들이 핵심 없이 가공되어 전달되진 않을까 어깨가 무겁다. 하지만, 누군가에게는 내 부족한 경험과 지식이 도움이 될 수도 있다는 작은 희망, 오로지 그것 때문에 나는 오늘도 키보드에 손을 얹는다.


'왜 나는 '스웨덴'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걸까? 왜 요즘의 우리는 복지국가, 북유럽 국가에 대한 관심을 많이 가지게 되는 걸까? 왜 우리나라는 많은 사람들에게 헬조선이 되어버린 걸까?'

사실 이 질문의 대답은 결국 나의 개인적인 경험으로 귀결되었다. 내가 곰곰이 왜 스웨덴으로 떠났는지 생각해보는 것. 내적인 질문에 대한 답은 자기 자신을 돌아보는 것부터 시작된다.


나는 스웨덴 또는 북유럽 사회를 마냥 칭송하고자 글을 쓰는 것이 아니다. 그 사회가 지향하는 가치; 지속가능성, (양성)평등, 워라밸, 다양성 등 인간으로서의 기본권을 사회가 보장하기위해 제도적으로 어떤 노력을 하는지 나누고 싶은 것이었다. 인간은 사회적 제약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기때문이다. 그리고 이는 내가 한국에서 결핍을 느꼈던 것들이고, 여전히 결핍을 느끼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 결핍은 불행한 감정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그렇다면 위의 가치들이 왜 중요하며, 불행한 감정으로 이어졌던 걸까? 우리는 왜 지금 지속가능성, (양성) 평등, 워라밸 그리고 이를 뒷받침해줄 복지 및 공공정책이 필요하다고 느낄까? 글을 쓰기 시작했지만 나는 여전히 답하지 못하고 있었다.



com.daumkakao.android.brunchapp_20190412174846_1_filter.jpeg 스웨덴에서 내가 발견한 희망은 뭘까

'오빠, 제가 요즘 스웨덴에 대한 글을 쓰는데, 사실 쓰면서도 제 글의 뿌리를 어디다 둬야 할지 많이 고민돼요. 결국 인간의 존엄성인데, 이 철학적인 근거를 어디서 찾아야 할지 싶어서.. 글을 제 개인의 의견으로만 채우기엔 너무 위험하고, 독자들에게 tangible한 느낌을 주고 싶은데..'


누구든지 마음에 묵직한 고민이 생길 때마다 찾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감사히도 나에게도 그런 사람이 있다. 23 살 우연히 참여한 독서모임을 통해 처음으로 인연을 맺은 오빠는, 내가 방향을 잃을 때마다 나를 한없이 꾸짖으며 스스로 답을 찾도록 내버려둔다. 그리고 나는 오늘도 그를 찾았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바도 제대로 찾지 못하고 주절 주절대던 내게 오빠는 '너의 로직이 뭐야?, 네가 글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바가 뭐야?'라고 물었다. '글이나 콘텐츠를 통해 사회에 선한 영향력을 끼치고 싶어요'라고 대답하자 오빠는 다시 '선한 영향력'이라는 게 뭐냐고 다시 물었다. 순간 나는 벙 지고 말았다. 그러게, 내가 말하고자 하는 선한 영향력이 뭘까. 내가 스웨덴 이야기를 통해 나누고자 하는 본질은 뭘까.


'도희야, 미사여구로 생각을 포장할 게 아니라, 말하고자 하는 본질을 분명히 해' 그리고 이번 달 말까지 아마르티아 센의 '자유로서의 발전'을 꼭 찾아 읽으라며 숙제를 던져주었다.

자유들은 발전의 기본적 목표일 뿐만 아니라 주요한 수단이기도 하다. 정치적 자유는 (언론의 자유와 선거라는 형태로) 경제적 안정을 가져오는 데 도움이 된다. 사회적 기회는(교육과 의료 시설의 형태로) 경제적 참여를 용이하게 해 준다. 경제적 용이성은 (교역과 생산에 참여할 기회의 형태로) 개인적 부유함뿐만 아니라 사회시설을 위한 공적 자원을 증진시키는 데 도움이 된다. 서로 다른 종류의 자유들은 서로를 강화시킬 수 있다. (p.50)

(사회) 발전이란 우리가 영위하는 삶과 우리가 향유하는 자유를 증진시키는 것과 관련되어야만 한다. 우리가 소중히 여기는 자유의 확장은 우리의 삶을 더욱 풍요롭게 하며 장애를 줄일 뿐만 아니라, 우리 자신의 의지를 실현하는 한편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와 상호작용하며 영향을 끼침으로써 우리가 완전한 사회적 인간이 되도록 한다(p.57)

한 사회의 성공은 기본적으로 사회 구성원이 향유하는 실질적인 자유에 의해 평가되어야 한다.(중략) 자신이 소중히 여기는 것들을 할 수 있는 자유가 더 커진다는 것은 1) 개인이 가진 전반적인 자유에서 그 자체로 중요하며 2) 가치 있는 것을 산출할 기회가 늘어난다는 점에서 중요하다(P.61)


한국이 싫었던 이유는 생각보다 단순했다. 스스로 삶의 주도권을 잡으려고 해도 사회는 나를 가만히 내버려두지 않았다. 내 멋대로 사는 베짱이라도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그만큼 나는 용기가 없었고, 이 사회에서 생존하는 것에 대한 위협을 느끼기도 했다. 타인 또는 사회의 시선, 맹목적인 경쟁과 비교, 불평등, 획일적인 교육에 휘둘렸던 나는 내 자유를 억압받아 불행했다는 걸 이제야 깨달았다. 그리고 나는 스웨덴에서 그 대안을 찾았다. 사회가 지속가능성, (양성)평등, 다양성, 복지 등의 가치를 제도적으로 실현하며, 개인의 실질적인 자유의 실현을 돕고 있음을... 이것이 바로 내가 찾던 희망이고, 내가 글로써 나누고 싶은 것임을 조금씩 깨닫는다. 그리고 나는 지금 내 삶에서 그리고 대한민국에서 이 희망이 피어나고 있음을 보고 있다. 많은 독자분들을 덕분에. 여러모로 감사한 글쓰기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기쁜 마음으로 나만의 브런치를 요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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