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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컬쳐커넥터 김도희 Nov 18. 2016

스웨덴에서 되찾은 나의 목소리

궁극적인 내 목소리를 찾은 지금 나는 자유롭고, 편안하고, 행복하다.

    '내 마음 주파수 읽기' 매거진에 첫 글을 썼던 날이 아직도 생생히 기억난다. 스웨덴에 온 지 2주 정도 되던 날, 아무것도 제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던 나 스스로에게 염증이 났었다. 그런 내 모습을 보면서 짜증이 남과 동시에 분해서 눈물이 나고 자책하기에 바쁘기만 했다. '변해야지, 혼자 해봐야지' 스스로 되뇌어봐도 25년여간 지녀온 내 틀을 깨는 것이 쉽지 않았다. 나는 자꾸 스스로를 독촉했고, 내가 입고 있던 갑옷을 더욱 단단히 여미기에 바빴다. 그렇게 나는 철갑녀로 둔갑한 채 나라는 사람을 새로운 세상에서 더욱 단절시키고 있었던 것이다. 한국에서는 책상에 앉아있는 시간보다 세상을 공부하겠다며 밖에서 보낸 시간이 더 많았고, 사람을 만나는데도 두려움이 없던 나 자신이었기에 새로운 사회 속에 위축된 나의 모습은 너무나도 당황스러우면서도 화가 났다. 내가 먼저 손을 내밀어야 그 누군가도 내가 내민 손을 붙잡을 수 있고, 두 발로 걸어나가야만 비로소 나는 이 세상을 느낄 수 있는 것은 자명함에도 불구하고 무엇이 그렇게 겁났던 걸까?



 석사의 불명확한 정의

        지난 3개월 동안 내게 가장 크게 다가온 압박은 돌이켜보면 금전적 부담도, 해외생활의 두려움도 아닌 지적 능력 향상의 문제였다. '석사'라는 이 한 단어가 내게 주는 무게감은 너무나도 컸었다. 학부를 졸업하고 보다 전문적이고 깊이 있게 한 분야에 대한 지적 영역을 확장시키는 2년이 나의 석사 과정에 대한 정의였다. '전문적'이고 '깊이 있다'라... 굉장히 멋있으면서도 추상적인 단어다. 하지만 이는 양과 질을 논해야 하는 문제일 뿐만 아니라 개인의 역량이 제각기 다르기에, 스스로 자신이 어느 정도의 깊이와 전문성을 가지고 있는지 자문을 해야 하는 것이다. 그래야만 자신이 도달하고자 하는 명확한 목표가 나옴에도 불구하고 나는 목표 없이 돌진하는 버펄로처럼 나를 끝이 없는 목표로 돌진시키기에 바빴다. 석사생이라는 타이틀 때문에 무언가를 처음 배우기 시작하면 모르는 것이 당연함에도 불구하고 어느 것 하나 완벽하게 이해하지 못하는 나 자신을 채찍질했던 것이다. 모르는 것이 무엇이 그렇게나 부끄럽고 두려웠을까. 그 누구도 나에게 부담 주는 사람 하나 없고 석사 과정도 하나의 배움의 과정이라는 마음으로 스스로 만족할 정도로 충실하게 과정을 즐기는 것으로 충분했을 텐데... 그렇게 불안함에 휩싸여 나 자신이 스스로를 압박하며 한 코스를 끝냈다. 다행히도  이 세상의 모든 것의 '끝'이 '시작'과 맞물려 있는 탓일까? 시간적 여유가 생기 고나니 지난날의 내 모습을 비로소 돌이켜 볼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생겼고 끝을 통해 나는 스웨덴 유학을 결심한 이유, 나의 초심을 다시 되돌아보게 되었다.

 

     내가 이 곳에서 있는 이유는 결국 내가 오기 전에 세운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이다. 그렇다면 필이면 '스웨덴'으로 유학을 결심한 이유는 무엇이었던가? 공부에 대한 흥미도 있었지만 사실 나는 이 보다 '스웨덴'이라는 사회에 대한 관심이 더 컸고, 이 두 가지를 충족시킬 수 있는 수단은 스웨덴에서 석사과정을 밟는 것이었다. 평등, 정의, 복지, 좋은 삶, 행복이라는 온갖 좋은 수식어는 다 휩쓸고 있는 나만의 유토피아였던 스웨덴이 정말 나의 유토피아인지 직접 확인하겠다는 결심이었다. 그리고 이 사회의 시스템과 이 사회가 추구하는 가치들을 완벽하진 않지만 온전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 곳에서 열리는 다양한 지역 활동에 참가하고 스웨덴 사람들을 만나야겠다고도 다짐했었다. 하지만 낯선 환경에 떨어지자마자 나는 '생존'을 위한 '적응'의 문제에만 몰두한 채, 궁극적으로 내가 목표한 바를 잊어버렸다. 낯선 환경에서 생존과 적응은 시간이 흐름에 따라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나는 마음이 급해 위축되며, 나 자신을 잃어갔고 자신감도 없어졌다. 더군다나 목표지향적이고 결과주의 팽배한 한국 사회에서 크게 어긋나지 않은 길을 걸었던 나이기에 그 누구도 경쟁을 독촉하지 않는데도 나 혼자 스스로와의 경쟁을 하느라 바빴던 것이다.


    그렇다면 유학 3개월 차에 들어선 지금의 나는 어떠한가? 아이러니한 것인지, 세상의 이치인 것인지... 난생처음으로 잠을 설치고, 꾸지도 않는 꿈을 1주일에 수 번이나 꾸며, 몇 번 울다 보니 어둠의 터널이 지나고 마음의 평화가 찾아왔다. 사실 혼자서 마음의 평화를 찾았다기보다 나를 가장 잘 아는 사람들의 격려와 이 곳에서 만난 나와는 다른 '삶'을 충실히 그리고 즐겁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만난 덕분이다. 덕분에 역시나 나는 사람들 속에서 숨 쉬고, 세상 공부를 할 때 가장 행복하고 즐겁다는 것을 다시금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이 좋은 '쾌(快)'의 감정은 나 자신에 대한 자신감을 되찾아 주었고, 지금 각자의 삶을 충실히 살아가는 사람들과 소통하고 싶고, 소통해야겠다는 다짐을 가져다주었다. 결국에 내가 석사 과정을 통해 이루고자 했던 것은 단순히 학위를 따는 것만이 아니라 내가 살아오며 삶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들을 이 곳에서 실현하는 것이었다. 또 보다 나은 사회라고 여겨지는 이 곳에서 사람들은 어떻게 자신만의 '삶'을 꾸려나가는지 스스로 학습하고, 나와 연결된 모든 사람들과 나누기 위해서임을 이제야 다시금 깨닫는다. 타이틀과 나 자신의 감옥에서 벗어나 내가 내고자 하는 궁극적인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자유를 찾은 지금, 나는 자유롭고 편안하고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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