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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컬쳐커넥터 김도희 May 14. 2017

당연하지 않았던 것의 당연함

 당연하지 않은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일 때 삶에 새로운 코드가 더해진다


'당연하다: 일의 앞뒤 사정을 놓고 볼 때 마땅히 그러하다'
'당연하다: Natural, reasonable'
우메오의 자전거 운전자 및 보행자만을 위한 다리

어제 시내 카페에 나가 숙제를 하고 자전거를 타고 돌아오던 중 아이 유모차를 자전거에 연결해 자전거 도로를 질주하다 심지어 기나긴 다리를 자전거를 타고 올라가는 아이 엄마를 보았다. 혼자 오르막길을 올라와도 힘든데 아이 무게와 유모차 무게 그리고 오르막길을 생각하면 정말 놀라운 광경이었다. 당연히 나는 한국에서도 이런 광경을 거의 보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학생 도시인 우메오에서도 거의 보지는 못했었기 때문에 더욱 놀랐다. 그러다 문득 '당연한 것의 당연하지 않음과 당연하지 않은 것의 당연함'에 대해 생각이 들었다. 사실 많은 스웨덴 사람들이 아이를 태운 유모차를 끌고 자전거를 운전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고 이러한 광경에 익숙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를 경험해보지 못한 나로서는 당연한 것이 아니었다. 나의 생각과 감정의 총체는 내가 살아오며 보고 느낀 것들이 얽히고설켜 형성된 것인데, 내가 경험하는 것들이 달라지는 순간 당연했던 생각은 당연하지 않게 된다.


나의 첫 배낭여행, 파리, 프랑스 2012

2012년 홀로 첫 해외여행을 나가기 전 나는 내가 한국에서 자라면서 들어온 삶의 방식만이 '당연히' 내가 따라야 할 것인 줄 알았다. 하지만 여행을 통해 전 세계의 많은 사람들을 만나면서 삶에는 마땅히 따라야 당연한 것은 없고, 결국 내 삶에 입력하고 싶은 코드는 내가 선택하는 것이며 내 삶은 나만의 운영체제라는 것을 깨달았다. 우리는 개인으로서 특성이 모두 다를 뿐만 아니라 살아온 환경과 경험한 것이 모두 다르기 때문에 개인은 다양한 삶의 운영체제를 가질 수밖에 없다. 그런데 우리는 사회 속에서 '~ 게 살아야 하는 게 당연한 거다'라는 말을 익히 들어왔다. 나 역시도 그것만이 정답이고 당연한 줄 알았다. 하지만 이는 우리 미래의 불안함을 무기로 가장된 당연성일뿐, 우리는 당연한 삶을 설계할 수 없도록 태어났다. 우리가 가진 시/공간적 한계성으로 인해 우리는 모든 걸 경험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더욱 중요한 건 우리에게 선택할 수 있는 자유가 있다는 것이다. 자유를 가진 인간으로서 우리 삶은 획일적으로 당연한 삶을 살 수가 없다. 다만, 자유에 따른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은 마땅히 그래야 할 당연한 것이다.


내 삶의 코드는 내가/ Pixabay.com/ ⓒFirmBee

내 인생의 가장 큰 목표는 최대한 이 세상의 다양한 삶의 운영체제들을 경험해보고, 나만의 언어로 내 삶에 녹여내는 것이다. 여행을 통해 다른 삶을 짧게 짧게 들여다보다 어딘가에 정착해서 그 삶을 온전히 내 삶에 녹여내고 싶어 유학을 결심했다. 이 세상의 다양한 삶의 형태 중 개인의 다양성을 존중하며 모든 사람이 튼튼한 사회 안전망 속에서 자신의 자유를 극대화할 수 있는 사회인 스웨덴으로 가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스웨덴에 온 지 9개월 차 지난날들을 되돌아보면 이 곳의 삶의 코드를 내 삶에 입력하는 데에 굉장히 오래 걸린 것 같다. 이 곳의 삶을 내 삶에 녹아내기 위해서는 이 곳 사람들에겐 당연한 것들을 나의 시선으로 재단하지 않고 받아들였어야 했는데 사실 방어적일 때가 많았다. 이들에게 당연한 것들이 당연하지 않다고 생각하면서. 나는 왜 그렇게 방어적이었을까?


곰곰이 생각해보면 너무나 다른 삶의 방식에 우선 익숙해지기가 쉽지 않았고, 내가 이 사회 시스템 속에서 아직까지는 이방인이라는 사실에 나 스스로를 가두었던 것 같다. 그동안 살아온 환경과는 너무나 다른 스웨덴의 여유롭고 한적한 생활 속에서 무지막지하게 경쟁하지 않고 미래에 대해 불안해하지 않는 사람을 보면서 '나는 그래도 이방인'이라는 스스로 상대적 박탈감을 만들어냈던 것이다. 박탈감을 깨기 위해서는 스스로 오히려 스웨덴 사회 속으로 더 깊게 스며들고자 노력했어야 하는데. 그리고 석사 졸업 후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걱정 때문에도 한참을 헤맸었다. 아이러니하게도 '미래의 불안'감을 무기로 강요된 획일적인 삶에 스스로 저항하기 위해 이 곳에 왔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스스로 그 덫에 빠졌었다는 것을 이제야 깨달았다.


스스로의 덫에 스스로를 가둔지 지난 날들.. 9개월이 지난 이제서야 나는 조금은 자신 있게 이 곳에서의 삶을 받아들이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이 곳 사람들에게 당연한 삶을 함부로 가치 판단하지 않고 내 삶에 입력하고자 마음을 먹으니 한결 마음이 편안하다. 그리고 나는 더 이상 불안하지 않다. 이 곳에 녹아들기 위해 필요한 것들이 무엇인지 나는 알고 있고, 이 곳에서도 나의 자유는 늘 그래 왔듯 보장되기에 스웨덴에서 나만의 길을 만들어나가면 되는 것이다. 내가 아직까지 이방인이라는 사실엔 변함이 없지만 새로운 환경에서 새로운 사람들을 통해 배운 다양한 코드를 내 삶에 입력하다 보면 훗날 내 삶은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업데이트되어있을 것이다. 이 또한 확실하진 않지만 스스로에 대한 믿음으로 '현재' 새로운 코드를 입력하기 위해 무엇이든 실천하면 된다. 그것이 현재를 살아감으로써 미래를 살아가는 방법일 테니까. 나는 내게 당연하지 않은 것들을 당연하게 조금씩 받아들임으로써 더 이상 겉돌지 않고 불안하지 않음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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