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우주에 귀 기울인적 있나요

엄마의 세계를 들여다보기라도 할 걸

by 국경 없는 펜

6시간 30분. 충분히 잔 시간이지만 오늘따라 아침에 몸이 무겁다. 어제 엄마와 논쟁을 하고 잔 탓일까. 그때의 부정적인 기운이 몸에 남아 있는 것만 같다. 몸도 무겁지만, 마음이 더 무겁다. 아침일찍 일어나 엄마에게 카톡을 보냈다. 미안하다고 말하려고. 진작 엄마에게 상처주는 말을 하지 않았더라면, 미안하다는 말로 이미 생채기가 난 마음을 연고를 바르지 않아도 됐을텐데. 항상 가시돋힌 말을 하고 나서야 우리는 그 순간을 후회한다. 후시딘으로 치료하면 될 상처가 바늘로 꿰매는 정도로 커지지 않길 바랄 뿐이다.


서로의 이해차이로 시작된 사소한 논쟁은 감정을 통제하지 못하는 순간, 결코 사소하지 않은 논쟁으로 서로의 말에 가시를 돋아 상대의 가슴에 꽂는다. 감정을 추스리고 대화를 곱씹어 보면 별 거 아닌일에, 우리는 왜 이렇게 날을 세우는지. 아마도, 각자가 각자의 마음과 행동, 그리고 자신의 삶을 먼저 보호하려고 한 탓이겠지. 각자가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당위성을 찾는 데 열중하며, 우리는 상대가 나를 향해 건네는 언어를 차단해버린다. 그 의견도 역시 다른 의견일뿐인데, 왜그렇게 귀를 막게 되는지.


지난 대화를 돌이켜보면 나도 그랬다. 서로의 삶과 직업에 대한 다른 가치관은 결국 충돌하고 말았다. 그저 터놓고 '내 생각은 이래~ 왜냐하면 나는 이런 경험을 했기 때문이야' 라고 차분히 대화를 주고 받았으면 될 일에, 나는 '엄마는 나를 몰라! 엄마는 알 지도 못하면서' 라고 받아치고, 그에 엄마는 또 '엄마가 살아보니~ 한국에서는~' 으로 받아친다. 엄마의 말이 듣기 싫은 이유는 인정하기 싫지만 내가 극구 부정하고자, 또는 뛰어넘고자하는 현실적 제약에 관한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사실 어쩌면 내가 아직 경험하지 못한 냉혹한 현실일지도 모르겠다. 엄마는 엄마의 삶에서 경험한 것들을 내가 걱정되어 그저 들려주고 싶었을지도. 이기고 질 필요가 없는 게임에서 난 왜 아득바득되었을까. 그게 냉혹한 현실이든 아니든 간에 더 중요한 것은 엄마와 나의 관계임을 아침에서야 후회하며 깨달았다.


조금은 마음을 열고 엄마의 이야기를 들어볼 걸 그랬다. 엄마의 우주를 존중할 걸 그랬다.

지난 4월 스톡홀름에서 엄마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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