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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컬쳐커넥터 김도희 Sep 19. 2016

익숙하지 않은 것들만 골라 하기

스포츠센터에서 만난 새로운 나

스웨덴이라는 낯선 나라에 2년 동안 살아남으라는 미션을 받았다. 내가 자발적으로 선택한 길이지만 처음은 모든 것이 낯설고 어렵기만 했다. 새로운 것에 마음을 열기보다 그동안 내가 지녀왔던 고유한 삶의 방식을 놓지 않으려고 했다. 역설적이게도 무의식적으로 과거의 나를 놓지 않으려는 노력을 할수록, 나는 과거의 나를 놓아줄 수밖에 없었다. 나의 영혼이 새로운 삶을 경험해보는 것이 얼마나 내가 바라 왔던 것인지를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리라. 익숙한 삶에서 떨어지지 않으려고 애써 잡아두었던 동아줄을 끊어내고, 나는 조금씩 스웨덴에서의 새로운 삶에 적응하기 시작했다. 익숙하지 않은 것들을 찾아서 해보면서.


스웨덴에서의 가장 큰 변화는 운동의 생활화다. 다이어트 목적이 아닌 꾸준한 건강 관리를 위한 운동. 내가 살던 우메오에는 '익수'라는 체육관이 있었다. 북유럽에서 제일 큰 체육관인 이곳을 친구들은 스포츠 백화점이라 불렀다. 헬스장 외에도 수영, 스쿼시, 하키, 댄스, 요가 등 365일 내내 수십 개의 프로그램을 누릴 수 있으니 딱 어울리는 이름이다.


익수에는 발리볼, 스쿼시, 수영, 하키, 에어로빅, 사이클, 요가, 크로스핏 등 하루에 수십 개의 프로그램이 갖춰져 있어 시간이 날 때 언제든지 운동에 참여할 수 있었다. 이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다양한 프로그램에 참여해보고 자신에게 맞는 운동을 찾아 나갈 수 있었는데, 나는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운동 중 내게 맞는 운동을 찾고 싶었다.


 한국에서 복싱이나 요가 밖에 해보지 않았기 때문에 이 곳에서 운영하고 있는 대부분의 프로그램은 매우 새로웠다. 잘하자는 욕심을 버리고 적어도 내게 맞는 프로그램을 찾고 싶었기에 첫 주 내내 크로스핏, 아쿠아 에어로빅, 줌바, 타이치+요가+필라테스가 결합한 운동 등 다양한 프로그램에 참가했다. 사실 대부분의 프로그램이 코치의 지도에 따라 타인과 함께 호흡하며 음악에 맞춰 운동하는 것이어서  지루한 것은 없었다. 하지만 나의 몸뿐만 아니라 마음이 더 적극적으로 반응하는 것은 분명 있었다. 바로 라틴 소울이 충만한 줌바.


한국에서 카더라 통신을 통해 줌바가 운동도 많이 되고 스트레스 해소에도 좋다는 소문을 익히 들은 적은 있었다. 언젠가는 해보고 싶다는 마음을 품고 있었지만 한국에서는 당시 줌바가 흔하지도 않았고,  비싼 럭셔리한 운동이었기에 도무지 할 엄두가 안 났다. 하지만 익수에서 우연히 참가한 줌바 수업은 내가 그동안 줌바에 대해 지녀온 기대를 충족시켜주기에 충분했다.


시작 전에는 수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춤을 춰야 하기에 눈치가 많이 보일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춤을 추는 내내 얼마나 섹시한지 혹은 제대로 동작을 따라 하는지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다. 대신 자기 만의 삘에 꽃혀 무아지경인 사람들만 보일 뿐!남에게서 시선을 거두고 나도 나만의 집중하자 저절로 몰입에 이르렀다. 1시간 내내 시간이 가는 줄도 모르고 격렬하게 음악과 춤을 따랐으니 진정한 몰입이었다.


적으면 30명에서 많으면 80여 명에 이르는 사람들이 큰 공간에서 함께 선생님을 따라 하며 미친 듯이 음악에 몸을 맡기는 사람들. 강당은 음악과 춤, 사람들의 땀과 웃음이 섞여  수 없는 에너지로 가득했다. 운동은 지루한 것일 줄만 알았는데, 나는 춤에 일가견이 없는 줄 알았는데, 해보지 않아서 몰랐던 것이다. 줌바 수업은 그 누구의 시선도 상관하지 않고 오히려 나 자신에 집중하며 나의 껍질을 깰 수 있는 소중한 기회를 주었다.


언제나 에너지로 가득한 IKSU 덕분에 하루가 즐겁다.


춤추는 걸 부끄러워했고, 잘 춰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그 '잘'의 기준은 섹시하고, 요염하거나 아니면 정말 전문적이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어릴 적 한국무용, 우리 시대의 아이돌 핑클, SES 언니들의 춤을 따라 하며 학예회엔 빠지지 않고 참가했지만 중학교 이후로는 춤췄던 기억이 전혀 없다. 그리고 입시 준비를 하며 하루 종일 의자에 앉아 책과 씨름했고, 그렇게 대학에 왔다. 어느 순간 나의 몸은 춤이라는 것을 잊고 지냈고, 남들이 다 가는 클럽에도 술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가지 않거나 밤을 새우는 게 싫어서 잘 가지 않았다. 그렇게 춤과의 거리는 멀어져만 갔고, 내 인생에 미친 듯이 춤을 출 날이 있을 거라고는 상상도 했다.  


우리는 상상하는 것을 즐기지만, 때론 상상조차 할 수 없거나 하고 싶지 않은 것들이 있다. 하지만 상상조차 하지 않는 것 또한 섣부른 자기 방어일지도 모른다. 상상하지 않는다는 것은 너~무 좋거나, 너어~무 부끄러운 것 등 극단적인 상황이나 자신이 익숙하지 않은 것들에 대해 주로 발생하기 때문이다. 나에게는 미친 듯이 춤추는 내 모습이 너무나 낯설었다. 그래서 나는 클럽이나 사람들 사이에서 춤추는 나의 모습을 상상한 적도 없고, 상상할라치면 손발이 오글어 들었다. 사람은 역시 불편한 모습들은 일단 피하고 본다. 익숙한 방식대로 생존하기 위해.


런데 스웨덴에서의 생활은 상상 속에도 존재하지 않던, 꽁꽁 감춰져 있던 나의 모습을 드러내 주었다. 무아지경의 상태에 빠져 무언가를 즐기고, '재미'를 느끼는 나를 발견했고, 이렇게 발생한 에너지가 내 삶에 다시 긍정적인 힘으로 작용하는 것을 깨닫게 해 주었다. 익숙하지 않은 것들을 일부러 찾아 해 보는 것은 중요하다. 새로운 내 모습을 발견하기도 하고, 때로는 지루한 삶의 곳곳에서 소소한 재미 포인트를 발견해나가는 것도 재미있다. 관성에 이끌리는 삶에 의식적으로 저항하는 것이 필요함을 느낀 시간들.


사회인인 지금 집 회사, 반복되는 삶 속에서도 나는 스웨덴에서 배운 교훈을 잊지 않으려 한다. 거창하진 않지만 관성적인 삶에 저항하기. 출퇴근할 때 가보지 않았던 길을 가보거나, 단골 음식점의 새로운 메뉴에 과감히 도전해보거나, 새로운 사람을 찾아 만나는 것. 익숙한 삶에 변화를 주다 보니, 삶의 무한한 재미와 가능성을 엿보게 되었다. 오늘 퇴근길에는 어떤 모험을 하게 될까.

재미를 느끼는 방향이 오히려 더욱 진지하게 몰입하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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