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gnity: 학생인데도 부담없이 아이를 낳고 학교를 다닌다구요?
내가 스웨덴에서 석사를 하고 싶었던 이유는 석사 과정의 전문성이나 졸업장보다 사실 내가 2년 동안 생활하면서 얼마나 다양한 경험을 하고, 내가 그동안 살아왔던 삶과는 얼마나 다른 삶을 살 수 있는지였다. 혹자는 유학 생활 동안 잿밥에 관심이 더 많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지만 나에게 있어서는 내가 삶을 살아가는 데에 공부 외적으로도 나라는 사람을 채우고 또 깨뜨리는 경험이 더 도움이 많이 된다고 생각했다. 이 곳 스웨덴에서의 생활 3주 차에 접어든 지금 그동안 긴장했던 마음과 몸을 풀고 서서히 이 사회를 나만의 시각으로 들여다보고자 노력 중이다.
오늘 아침 눈을 뜨자마자 우연히 The Huffington Post(허핑턴포스트)에서 업로드한 흥미로운 동영상을 하나 보았다. 임신한 여성의 수중분만 과정을 담은 영상이었는데, 영상 속의 어머니는 아기를 낳는 동안 고통스러운 표정 하나 없이 굉장히 침착하게 뱃속에 있던 아이와 감격스러운 첫 만남을 해냈다. 아무런 연고도 없는 나도 이렇게 마음이 짠하고 감동스러운데 현장에 있던 엄마 아빠는 기분이 어땠을지 상상해보려 했지만 그 감동을 내가 감히 상상할 수도 없었다. 새 생명과의 고귀한 만남이 주는 행복이 얼마나 클까. 이 행복은 우리 인생에서 가장 큰 행복감이 아닐지 조심스레 생각해본다. 행복의 무게만큼 그에 대한 책임감도 막중하리라. 그래서 나는 사실 아직까지 내가 아이를 갖는 것에 대해 생각해본 적도 없을뿐더러 생각만 해도 겁이 많이 난다. 나 스스로 완전히 독립하지 못한 상태에서 아이를 갖는다면 더더욱 앞이 캄캄하리라.
그런데 얼마 전 머리를 한 대 맞은 듯한 소식을 들었다. 함께 수업을 듣는 스웨덴 친구의 임신 소식. '나 내년 2월에 아기 낳아' 이십 대 초반의 그녀는 조심스레 남자 친구와 자기 사이에 소중한 아이가 생겼다고 말했다. 사실 처음에는 이런 고백이 나로서는 신기하기도 하고 당황스러웠다. 워낙 우리나라에서는 대학을 다닐 경우 졸업하기 전이나 혹은 직장이 없는 상태에서 이십 대 초반에 아이를 갖는 것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스스로 책임을 질 수 없는 형편에서 사고를 쳤다고 생각하는 사회적 풍토가 강한 탓이다. 하지만 당황스러움도 잠시 새로운 생명의 탄생을 내 가까이의 지인으로부터 들으니 너무나도 마음이 벅차고 신기했다. 그리고 우리는 경외로움을 함께 느끼고 나는 조심스레 친구에게 아이를 어떻게 갖게 되었는지와 낳은 후의 계획은 어떻게 되는지에 대해 질문했다.
친구는 남자 친구와 6년째 교제 중이라고 했다. 그녀의 약지에는 반지 하나가 끼워져 있었는데, 약혼반지라고 했다. 사실 나는 일반적인 커플링인 줄 알았는데 스웨덴에서는 커플링은 흔하지 않다고 한다. 그래서 누군가가 반지를 꼈을 때는 결혼이나 약혼반지라고 한다. 고등학교 때 현재의 남자 친구를 만났다는 그녀는 그녀의 가족이 이사를 갔음에도 불구하고 남자 친구도 함께 이사하여 같은 고등학교를 졸업한 옛이야기에서부터 같은 대학교를 진학하여 동거를 하게 된 러브스토리를 들려주었다. 그리고 현재는 둘 다 석사 생활을 위해 우메오에 터를 잡았다. 장기간의 교제를 통해 믿음을 가지고 서로를 위하는 것만으로도 감동적이었는데, 둘 다 성인으로서 책임을 지고 스스로의 삶을 일구어나간다는 것이 나에게는 생소하면서도 존경스러웠다.
'친구는 둘 다 학생의 신분으로 아기를 낳고 어떻게 생활을 꾸려나갈 생각일까?' 문득 궁금했다. 내 삶을 혼자 지탱하기도 어려운데 아이까지 낳고 살아간다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녀의 답은 단순 명료했다. '아기가 태어나는 내년 초즘이면 남자 친구는 졸업 후 직장을 구할 것이고 나는 국가로부터 받는 지원금과 조금의 대출을 받으면 셋이 사는 데는 큰 어려움이 없을 거야. 우리가 많은 것을 필요로 하지는 않잖아'
스웨덴 학생들은 국가로부터 공부하기 위해 매달 조금의 지원금을 받는다. 그녀는 한 달에 약 30만 원 상당의 지원금을 받는 듯했다. 그리고 나머지 부족한 돈은 학생 대출을 받아 생활하는데, 이 대출은 이자가 없어 학생들이 부담 없이 공부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준다. 특히 스웨덴은 대학원까지 무상교육이기 때문에 자금이 대학원 학비로 쓰이는 것이 아니라 매달 생활비 명목으로 필요해 많은 돈이 필요하지는 않다. 스웨덴 정부는 학생들의 한 달 생활비가 평균 한화 130만 원 정도가 든다고 통계치를 내고 있다.(내가 살고 있는 우메오는 100만 원 정도면 집세를 내고 생활할 수 있다). 지방에서 서울로 유학을 와 생활하는 경우에도 집세 포함 100~ 120 정도가 드는 것을 생각할 때 이곳의 생활비가 터무니없이 비싸지는 않다고 생각한다.
스칸디나비아 국가들의 복지정책은 많이 번 사람이 더 세금을 많이 내고 적게 번 사람은 적게 내는 누진세를 원칙으로 한다. 그런데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적게 벌더라도 모든 국민이 국가에 세금을 납부하도록 하고 이를 투명하게 운영하여 모든 사람들에게 복지가 골고루 돌아가도록 하는 것이다. 특히 가능한 많은 국민들이 일을 함으로써 노동시장에 기여하는 것을 목표로 하기 때문에 여성이 임신을 하더라도 직장생활을 영위할 수 있도록 부부 육아 공동책임제, 장애 자녀 및 연로한 부모님 보조를 위한 다양한 정책이 마련되어 있다. 이러한 정책은 많은 스웨덴 사람들이 20대 때 동거 및 결혼을 하는 사회상을 반영하고 있다.
내 친구 역시 학생의 신분이자 동거 상태에서 아이를 가진 것에 대해 두려워하기보다 아이를 낳으면 공부를 언제 스탑 하고, 다시 시작할 것인지 아이가 태어나면 생활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차분히 미래를 계획하고 있었다. 국가의 적극적인 지원 덕분에 그녀는 고귀한 생명의 탄생을 준비하는 멋진 엄마로 거듭나고 있었다. 이 곳 나이로 18세면 성인이 되어 부모 곁을 떠나 스스로 일을 하여 번 돈과 국가의 지원을 받아 이 곳의 청년들은 이렇게 자신만의 길을 닦아나가고 있었다. 의무와 권리를 충실히 다하면서.
한국에서 친구들과 각자의 미래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지금 우리가 처한 현실이 너무 힘들고 각박해서 결혼을 하지 않거나 결혼을 하더라도 아이를 낳지 않겠다는 친구들이 더러 있었다. 지금 내 자신이 행복하지 않고 사는 게 힘든데 내 아이마저 이런 환경에서 키우고 싶지 않다는 이유에서였다. 결혼이든 동거든 간에 서로 다른 두 사람이 하나가 되어 새로운 생명을 낳고, 가정을 꾸려 사랑을 키워나가는 것은 인생에서 굉장히 의미 있는 업이다. 우리의 삶은 사람과 사랑으로 치유받으며 굴러가기 때문이며, 가족만큼 가까운 존재는 없기 때문이다. 유례없는 최저 출산율을 기록하고 있는 우리나라, 우리 청년들에게 과연 스웨덴 식의 복지모델이 적용된다면 우리는 삶을 주도하며 책임질 수 있을까? 지금 처한 현실이 만족스럽지 못하다면 조금은 나아질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할 때이다.
스칸디나비아 반도의 복지모델은 국가에만 의존하고 자신의 역량을 다하지 않는 복지병을 불러와 사람들을 나태하게 만들기도 합니다. 이 글은 복지정책의 '일부분'을 통해 스웨덴과 한국의 청년들에게 시사점을 주고자 작성하였습니다.
이제 시작이지만 스웨덴 유학이나 우메오에 관해 인스타그램에도 많이 올리려고 합니다:)
- 우메오에 사는 내 이야기를 다음 인스타그램: https://www.instagram.com/walk2theworl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