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컬쳐커넥터 김도희 Nov 14. 2019

라곰, 삶의 곳곳에 깃든 행복의 열쇠

스웨덴 친구가 뷰티산업의 성지에 도전장을 내민 이유

삶의 균형이 산산이 깨졌다. 즐겨하던 클라이밍도, 숨겨진 댄스본능을 찾은 줌바도, 세상과 소통하던 갤러리 구경도, 즐겨 읽던 책도 일상에서 사라졌다. 퇴사 후 내 하루하루가 어느새 다시 생존과 자아실현(에고실현)을 위한 일로 가득 차 있다는 것을 이제야 깨달았다. 삶의 균형을 찾아 떠난 스웨덴에서 간신히 균형점을 찾고 돌아와, 그를 잊지 않겠노라 다짐했는데 어느새 나는 하루하루를 살아지는 대로 살고 있었다. 최근 몸은 무거워지고, 피부는 거칠어지고, 마음은 늘 불안함을 알아챘다. 하지만, 나는 내가 하고 싶은 일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삶의 불균형을 합리화했다.

스웨덴에 살면서 나는 균형 있는 삶을 처음으로 살았다. 스웨덴식 삶의 균형을 'Lagom(라곰)'이라 하는데, 더도 말고 덜도 아닌 적당함을 의미한다. 남의 기준이 아닌 자신의 적정선을 찾는 라곰은 지속 가능한 삶을 위한 스웨덴 사람들의 DNA인 셈이다. 라곰의 가치는 일과 삶의 균형, 식습관, 운동 등 스웨덴 사람들의 일상생활에 녹아 있다. 덕분에 스웨덴에 사는 동안 나도 자연스레 그 사회의 가치를 체득화하게 됐다. 방과 후에는 여가를 즐기고, 유기농과 채식 등 건강한 음식을 먹고 규칙적으로 운동하려 노력했다. 수십 년 간 내 삶에 새겨진 바쁨 DNA를 지우긴 쉽진 않았지만 조금씩 내 삶은 좀 더 풍요로워졌고, 삶의 만족도는 올라갔다. 그리고 2년 후 스웨덴에서 한국으로 돌아오는 날, 나는 스웨덴의 라곰을 잊지 않겠노라, 지키며 살겠노라 다짐했다.

스웨덴 친구 David(스웨덴에서는 다비드라 부른다) 만났다. 5년째 한국에서 살고 있는 는 한국인 아내와 결혼해 살고 있다. 얼마 전, 스웨덴의 화장품 전문가와 함께 Norragen(노라젠,https://www.norragen.com/)이라는 북유럽 스킨케어 브랜드를 창업했다. 북유럽식 라이프스타일을 화장품과 나아가서는 건강식품을 통해 한국에 나누고 싶다고 한다. 한국에서 석사 후 일한 경험 있는 그는 한국과 북유럽식 라이프스타일이 많이 다름을 느꼈다고 했다. 정갈한 한정식 집에서 우리는 2시간에 걸쳐 천천히 식사를 하며 대화를 나눴다. 긴 2시간의 대화의 핵심은 역시나 '라곰'이었다.


'스웨덴에서의 삶은 어땠어?' 다비드가 내게 물었다. '자연과 가까이 지내며 삶의 균형을 배운 시간이야. 좋아하는 사람들이랑 같이 요리하고, 밥 먹고, 숲에서 뛰어놀고. 난 한국에서 늘 혼자 바쁘게 사는 사람이었거든, '  삶의 균형을 찾아 떠난 스웨덴에서 소확행 열매를 따왔다고 말하자, 가 거들었다. '사실 나도 별반 다르진 않았어. 내 삶의 동력은 좋은 커리어였으니까! 근데 어느 순간부터 커리어가 삶에 주는 행복의 크기는 정해져 있다는 걸 깨달았어. 요즘 내 삶의 목표는 더 균형 잡히고 건강한 라이프스타일을 꾸준히 지키는 거야. 그게 나를 더 행복하게 만들거든. 이게 스웨덴의 라곰이지.'


'한국에서 화장품 사업하면 라곰스러운 삶을 살 수 없을 텐데?'라고 농담을 건네는 내게, 다비드는 지금 하는 일은 자신이 소중하게 여기는 삶의 가치를 나누는 일이기 때문에 일처럼 느껴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한국 화장품 시장은 좋은 제품이 많은 만큼 정말 경쟁이 심해. 그런데, 스킨케어에 너무 많은 단계가 있는 것 같아. 보통 10단계가 있잖아? 라곰 DNA가 있는 내겐 투머치(너무 많아)로 보였어. 스웨덴 사람들도 스킨케어를 굉장히 중요시하는데, 스웨덴에서는 어떤 '검증된' 재료를 '적절'하게 배합하는지, 사용 시 적정한 양은 얼마인지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 이게 바로 우리 회사가 지향하는 바지. 스웨덴 디자인이 미니멀한 것처럼, 스킨케어도 미니멀리즘을 지향해. 많이 바른다고 해서 좋은 건 아니니까. 충분한 수면, 운동, 건강한 식습관이 오히려 더 중요하지! 내가 스웨덴에서 검증된 재료로 만든 제품을 통해 한국 사람들에게 북유럽식 균형 잡힌 삶을 공유하고 싶어'


바쁜 한국 사회에서 스웨덴식 라곰 라이프를 전파하고자 하는 그의 포부는 당찼다. 다비드와 대화를 하는 동안 자주 들렸던 스웨덴 화장품 가게가 생각났다. 진열된 많은 로컬 화장품이 동물 실험을 거치지 않고, 현지에서 나는 유기농 재료로 만들어져 놀랐던 기억이 있다. 식습관에서 유기농이 일상화되어 있다는 것은 진작 알았지만,  피부에 바르는 것 까지 그들에겐 일상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스킨케어만큼 운동과 건강한 식습관을 중요시했다. 일과 후 운동이 일상인 사람들, 2~3개의 아웃도어 활동을 취미로 가진 사람들, 채식음식을 쉽게 찾아볼 수 있는 나라. '2년 전엔 나도 그랬는데....'. 다비드와 대화를 나누는 내내 나는 내 삶의 무게추가 어디에 있는지 점검하게 됐다. 스웨덴에서 한국에 돌아올 때 나 자신에게 한 약속은 잘 지켜지지 않고 있었다.


'한국에서 라곰한 삶을 살려고 하는데, 쉽지 않은 것 같아. 다들 바쁘니까 나도 덩달아 바빠지기도 하구. 요즘 운동도 안 하고, 좋은 음식을 안 챙겨 먹으니 건강도 피부도 안 좋아지네'. 내 의지박약을 포장하며, 다비드에게 푸념하자 선물을 준비했다며 노라젠의 마스크 시트를 건넸다. '스웨덴 청정 숲에서 딴 클라우드 베리로 만든 거야'. 클라우드 베리는 스웨덴 북쪽 지역에서만 나는 열매인데, 구하기가 어려워 꽤나 값이 나가는 열매다. 나도 가끔 친구들이 따왔을 때 먹곤 했다. '덕분에 피부 호강하게 생겼다. 고마워'라고 건네는 내게 그는 피부관리뿐만 아니라, 운동 열심히 하고 좋은 음식 많이 먹으라는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다비드 덕분에 나는 다시 내 삶에 라곰을 불러오려 한다.

.

.

노라젠 링크:  https://www.norragen.com/

작가의 이전글 행복의 기준과 삶의 속도는 누가 정한건가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