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컬쳐커넥터 김도희 Nov 17. 2019

먹는 데 다양한 선택지가 필요한 이유

스웨덴 마트와 카페에서 발견한 다양성 존중

'선택 장애'는 선택지가 너무 많아 선택이 어려운 상황을 비유하는 말이다. 거리에 즐비한 수많은 레스토랑, 인터넷에 넘치는 수많은 맛집 추천 글을 보면 저녁 메뉴 하나를 정하기도 굉장히 버겁다. 하나의 선택지만 있으면 그것만 선택하면 되는데, 선택의 자유가 늘어날수록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게 된다. 하나의 선택지만 존재한다는 것은 선택의 자유가 없다는 뜻이기도 하지만, 선택을 고민할 여지가 없다는 점에서는 시간도 절약하고, 심리적으로도 더 편할 때도 있다. 그런데 나는 스웨덴에서 반대의 상황을 겪었다. 바로 선택지가 많은 상황에서 더 빠르고 확실한 선택을 할 수 있었던 것이다. 특히 매일 가는 마트와 카페에서 다양한 선택지가 주는 선택의 효율성과 다양성 존중의 가치를 느낄 수 있었다.


ㅣ스웨덴 마트에서 엿본 다양성 존중 ㅣ

스웨덴 마트에는 과자 하나에도 종류가 많았다. 크게 일반/유기농/무설탕/채식 과자가 있었고, 브랜드 별로 제품도 다양했다. 우유를 고를 때도, 우유와 채식 우유, 우유 중에서는 일반/저지방/ 무지방 우유에 더해 락토아제가 없는 우유, 유기농 우유, 채식 우유 중에는 코코넛/ 귀리/ 아몬드 우유 등 마실 수 있는 종류가 너무 많았다.




스웨덴 슈퍼마켓 ICA의 다양한 우유(좌), 스웨덴의 다양한 채식 우유(우)/ 출처:(http://news.cision.com/ 와 www.gp.se)



내가 가장 좋아하던 그래놀라 브랜드 Risenta(출처: 자사 홈페이지)

하지만 이 다양한 선택지 앞에서 내 식습관에 가장 적합한 식품을 고르는 데는 한국에서 보다 많은 시간이 들지 않았다. 특히 나는 매일 아침으로 먹던 시리얼(무슬리)의 경우 전성분을 꼼꼼히 비교하곤 했다. 자주 먹는 음식인만큼 몸에 좋은 것을 먹고 싶었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도 굉장히 다양한 종류의 시리얼이 있지만, 많은 시리얼 제품에 설탕이 많아 고르기가 꽤나 힘들었다. 하지만 스웨덴에서는 설탕없이 출시된 제품들과, 순수 곡물들과 다양한 건조과일로만 구성된 무슬리가 많았다. 더군다나 이 사실이 제품 포장에 읽기 쉽게 드러나 있어, 오히려 성분을 확인하는 시간이 줄었고 빠른 선택을 가능케 했다. 믿고 먹을 수 있는 브랜드를 발견하는 경우에는 더 빠른 선택이 가능했다. 브랜드에 대한 나의 신뢰와 충성도 덕분에!


우유도 마찬가지다. 우유를 잘 소화하지 못하고, 채식을 실천하고 싶었던 나는 우유와 같은 음료가 필요할 때는 항상 귀리나 아몬드 우유를 샀고, 유기농과 일반 제품의 가격 차가 크지 않았기에 합리적인 가격을 제공하는 유기농 제품을 구매했다. 다양한 소비자의 식습관을 존중할 뿐만 아니라 건강과 환경적으로 지속 가능한 소비를 가능케 하는 식품들이 많을수록 소비자들은 자신의 기호와 철학에 따라 특정 브랜드나 제품을 믿고 구매하게 된다. 인상 깊게도 북유럽의 많은 브랜드에서 지속 가능한 식품 소비를 가능케하는 제품들을 적극적으로 출시하고 있었다. 이미 내 소비 목록은 이 제품군으로 제한되었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더 나은 먹을거리를 찾기 위해 들이는 시간을 줄여주었다. Utan socker(무설탕), mindre 30% socker(30% 저당 제품), Vegetarisk(채식), Eko(유기농), Whole-grain(통밀) 등 많은 제품은 브랜드 이름보다 어떤 성분이 들었는 적극적으로 패키지에 표시하고 있었다.



ㅣ 커피 한 잔에 담긴 배려 ㅣ



피카는 스웨덴 사람들이 가장 사랑하는 시간 중 하나다.  커피 한 잔과 달콤한 디저트를 곁들여 먹으며 사랑하는 사람들과 이야기하는 시간. 스웨덴 사람들은 Bryggkaffe(Brewed coffee) 드립커피를 기본으로 마신다. 그런데 흥미로운 사실은 스웨덴에서는 기본 드립커피를 시키면 공짜로 우유를 얻을 수 있다는 점이다. 라떼인 듯 아닌듯, 왜 우유를 주는 걸까? 스웨덴의 드립커피는 보통 굉장히 진하게 내린다. 어찌보면 사약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새까만 커피 한 잔이 기본 커피인 것이다. 그래서 보다 부드러운 풍미를 위해 많은 스웨덴 사람들이 보통 드립커피에 우유를 섞어 마시기도 한다. 인상 깊은 점은 스웨덴 어느 곳을 가든, 심지어 시골 마을 주유소의 작은 카페에서 조차도, 항상 커피 옆에 우유가 별도로 준비되어 있다는 점이다.


<스웨덴 일반 카페에 준비된 우유, 락토스프리 우유, 오트밀 우유>


스웨덴에 와 처음으로 드립커피에 우유를 섞어 마시며 '와, 기본커피를 시켜도 우유를 공짜로 주다니..혜자스러운 커피다' 라고 감명을 받던 나는 더욱 혜자스러운 현장을 목격했다. 바로 많은 카페에서 기본적인 우유외에도  채식주의자이거나 유당 분해를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두유나 오트밀 음료 또는 락토아제가 없는 우유 등이 준비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간혹 아주 작은 시골 카페에서는 준비가 안된 경우도 있기는 하지만 대부분의 카페들이 적어도 경험상 두 종류 이상의 우유나 두유를 제공하고 있다. 음료의 신선도를 유지하기 위해 따로 내어져 있지 않는 경우도 있는데, 이 때는 직원분께 요청하면 냉장고에서 꺼내 준다. 따라서 개개인의 식습관에 맞게 우유, 두유, 오트밀 음료 등을 섞어 마실 수 있다. 남들과는 조금은 다른 식습관을 지닌 소수자들을 위한 배려가 커피 한 잔에서도 돋보이는 순간이었다.

<스웨덴에서 흔한 오트밀 음료와 블랙커피>



매일 들르는 마트에서, 무심코 지나쳤던 피카 문화에서도 개개인의 식습관을 존중하는 배려를 엿볼 수 있었다. 모든 사람들이 다른 식성과 취향을 가졌다는 것을 전제하고, 개개인이 자신에게 맞는 음식과 음료를 소비할 수 있도록 배려하며 자유를 주는 곳. 다름을 차별하지 않고, 다양성으로 받아들이며 소수를 존중해주는 이 사회의 가치가 곳곳에 녹아 있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