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곳곳에 생명이 깃든 회사를 원했다. 수습으로 있던 첫 회사에서는 근무한 지4개월째에퇴사했다. 퇴사 전 대표님과 면담을 할 때 직원들이 많이 위축되어 있고, 개개인의 가능성이 표출되기 어려운 분위기라고 말하자 대표님은 우리 같은 작은 조직엔 조직문화가 필요 없다고 하셨다. 그리고 우리 회사에서는 모두가 하고 싶은 것을 해볼 수 있다고 하셨다. 경험이 없는 사원이 많긴 했지만, 대표님이우리가 경험이 없다는 이유로 아이디어를 묵살시키고 있다는 걸 모르신 눈치였다. 직원들과 대표의 동상이몽. 대표님이 나쁜 사람인 건 아니었다. 어쩌다보니 분위기가 그렇게 형성되어 있었다.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라고, 그래서 나는 회사를 나왔다. 그리고 다음 회사는 꼭 나와 케미가 통하는 회사를 찾자고 다짐했다.
신입사원의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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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의, 도전, 열정. 매년 공채가 끝나고 신입사원들이 대거 입사하는 시기면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단골 단어들이다. 회사는 신입사원에게 창의적이고, 기존의 관습에 적극적으로 도전하며 목표를 위해 열정적으로 임하는 자세 기대한다.아직 회사에 대해선 아무것도 모르지만 역설적이게도 이 때문에 신입사원에게 주어지는 임무다. 조직 생활에 찌들지 않고 조직원 중 가장 말랑말랑한 뇌의 소유자로 스펀지 같은 흡수력을 지닌 존재들. 안타깝게도 현실은 기존의 관습을 스펀지처럼 흡수해버리게 만들고, 우리의 영혼은 점점 굳어간다.
2018년 스웨덴에서 돌아온 후 간신히 한 회사에 취업했다.나의 주요 업무는 굴지의 대기업의 신입사원 교육을 운영하는 일이었다. 대기업답게 일과 인간관계, 창의성, 기술 등 다양한 분야의 국내 최고의 전문가들을 연사로 모셨다. '상대의 언어로 커뮤니케이션하고 적극적으로 경청할 것', '창의성은 치열한 기록의 결과물이다', '기술은 인간과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한다'. 자신의 분야에서 최고의 위치에 오른 연사들의 말은 살아 있었다. 공허한 말이 아닌 수 십 년 간 사회에 부딪히며 직접 공부하고 깨우친 것이었다. 이 교육프로그램을 기획했던 대기업 과장님은 신입사원들이 회사의 미래이기도 하지만, 그들이 회사를 다니면서 성장하고 마음 지키는 법을 배웠으면 한다고 말씀하셨다.조직생활이 쉽지 않기에 내공이 가득한 최고들의 경험과 지식을 한 땀 한 땀 되새기길 바라는 마음이었음을 나는 안다.
아쉽게도 우리 회사가 나를 위해 준비한 신입사원 교육은 없었지만, 나는 이 사업을 운영하는 내내, 야금야금 내게 필요한 지식과 경험을 말랑말랑한 내 좌뇌와 우뇌에 새겨나갔다. 자신의 분야에서 최고가 되었다는 사실이 그분들이나눈 한 단어 한 단어에 생명력이 있음을 증명했다. 월급을 받으며 공짜로 비싼 교육을 귀동냥할 수 있던 천금 같은 시간이었다. 그런데 문득 프로그램 운영이라는 본분을 깨닫고 얼른 객석을 향해 눈을 돌렸을때, 나는 씁쓸한 광경을 목격했다. 신입사원 일부의 눈은 이미 감겨있었고 일부의 눈은 책상 밑 휴대폰 게임을 향해 있었다. 소수 일부의 눈만 반짝일 뿐이었다. 수 십 대 일의 경쟁률을 뚫고 확보한 회사 생활, 시작도 하기 전에 주어진 어깨의 짐이 너무 무거웠던 걸까? 반쯤 감긴 눈은 체념을 의미한 걸까?
'주도적으로 나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해도, 기존의 관습에 어긋난다거나 경험이 없다는 이유로 묵살돼요. 우리가 배우고 있는 창의, 도전, 열정에 관한 논의들이 다 허황되게 느껴질 때가 있어요. 어떻게 해야 하죠?'강연 후 질의응답 시간에 반짝이던 두 눈이 힘들다 토로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우리는 많은 시간과 돈을 들여 며칠 내내 창의, 도전, 열정, 공감에 대해 논했는데, 교육의 수혜자는 이를 실천할 문화가 부족해 어려울 때가 있단다.
많은 강연자 분들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적극적으로 자신의 목소리를 내거나, 조직문화가 바뀌어야 한다는 조언을 하셨다. 하지만 말이야 쉽지, 한 번 형성된 문화는 바뀌기가 어려움을 우리 모두가 안다. 혼자 목소리를 내는건 얼마나 더 어려운가? 많은 심리학 실험이 다수가 A라는 행동을 취할 때, 혼자 B를 취하는 것이 얼마나 큰 심리적 압박을 주는지 증명하고 있지 않나.교육의 기획자와 수혜자 모두희망적인 말들이 살아 있는 회사를 원하지만, 조직에선 이 말들이 금세 시들어버리는아이러니에마음 한편이 씁쓸해졌다.
우리가 표방하는 가치의 실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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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크라테스는 '이 세상에서 가장 영예롭게 사는 길은 우리가 표방하는 모습이 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회사에서 우리가 표방하는 모습이 되려면 개인의 노력도 중요하지만 조직의 문화도 이를 뒷받침해줄 수 있어야 한다. 거대한 조직 속에서 개인은 철저한 을이자 사회적 존재인 인간은 배제되길 두려워하는 한없이 나약한 존재다. 때문에 나는우리가 표방하는 모습을 실천하는 회사를 간절히 원했다. 내뱉는 말들에 공허가 아닌 생명력이 깃든 회사.
올해 취업을 준비하면서 감사히도 두 군데의 오퍼를 받았다. 일장일단이 분명한 두 제안을 두고, 치열한 고민끝에 지금의 회사를 선택했다. 가장 큰 이유는 인터뷰 내내 회사가 지원자를 대하는 태도때문이었다. 회사는 나를 을이 아닌 한 인간으로서 존중해주었고, 나의 고유한 색깔에 대해 궁금해했다. 또한, 회사가 지원자에게 바라는 것이 아닌, 지원자가 회사에 기대하는 것들을 물어보고, 이를 뒷받침하는 사내 문화와 제도에 대해 솔직하게 소개해주었다. 다른 오퍼로 기울었던 마음이 순식간에 지금의 회사에 홀렸다.
인사담당자는 계약서 미팅에서 나를 뽑은 이유를 두고, 내가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와 태도가 회사의 문화와 잘 맞았다고 했다. 그런 회사를 찾고 있었기에 그 말이 참 고마웠다.교과서로 배운 '한 사람 한 사람이 회사의 문화를 만든다'는 말은 현장에도 살아있었다. 호칭, 팀원 간의 관계, 사내 인테리어, 복장, 회의 스타일 곳곳에.
입사 첫날에는 온라인으로 신입사원 교육을 받았다. 인사담당자는 성과 평가 시 결과만큼 과정이 중요하게 여겨진다고 강조했다. 온라인 교육에서는 인류가 당면한 환경이나 차별 문제를 위해 회사가 구체적으로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지 알려주었다. 지속 가능한 생산, 유통, 판매, 노동자 보호, 사내외 평등을 위해 회사는 적극적으로 정보를 공개하고 제도를 만들어 왔다는 느낌을 받았다. 공허한 단어들에서 오랜만에 생명을 보았다.
직장 경력이 많은 동료들은 우리 회사가 찐 외국계라고 했다. 하지만 나는 우리 회사가 단순히 외국계라서 이런 곳이 아니라 생각한다. 관리자와 사원을 막론하고 개개인이 각자가 표방하는 삶을 조직 내에서 실천하고 있기 때문이라 믿는다. 국내 기업이든 외국계든, 한국인이든 외국인이든 우리는 인간으로서 존중받고, 더 재밌고 마음을 다해 일할 수 있는 회사를 바라고 나라를 막론하고 이를 실천하는 곳들이 있다. 회사 곳곳에 우리가 내뱉는 말들이 살아있고 각자의 역할에 최선을 다할 때, 회사는 진정 살아있는 유기체가 된다. 때문에라도 회사는 개인을 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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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사한 지 이제야 한 주 밖에 되지 않았지만, 나는 벌써 회사와 사랑에 빠졌다. 내 눈에 콩깍지려나?처음으로 조직 내에서 중장기적인 미래도 그려보았다. 내 꿈은 풍선같이 부풀었다. 기대가 너무 크면 실망도 크기에 많은 기대는 하지 않겠다. 하지만 나의 기대를 저버리지도 않을 것이다. 기대를 저버리면 지금의 희망을 포기하는 것과 마찬가지니까. 다만 매일 동료들과 내 업무에 진심을 다하고, 하루하루를 완생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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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소중한 시간과 에너지를 투자하는 곳에서 성장하고 희망을 그리고 싶은 것은 모든 회사원의 마음일 거야. 나의 숨을 애써 불어넣은 풍선이 갑자기 뻥하고 터지거나, 서서히 김새지 않으면 바라는 마음도 같지 않을까? 내 풍선은 커질까, 커지다 김이 빠질까? 아니면뻥하고 순식간에 터져버릴까?
모르겠다. 하지만 분명한 사실은 지금 내 속도와 방향을 유지하며, 회사와 발을 맞춰나가는 것뿐. 그러다 보면 내 풍선을 타고 다음으로 날 수 있을 거라 믿고, 나는 내일의 출근을 기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