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컬쳐커넥터 김도희 Apr 06. 2021

인생의 첫 질문

죽음을 인지하자 깨우친 것들

'나는 어떤 삶을 살고 싶은 걸까?'

스물둘, 내 인생에서 스스로에게 던진 첫 질문.

모든 게 가능할 것만 같고 끝없이 열정적인 삶이 지속될 것만 같았던 스물둘, 처음으로 인생의 유한함을 깨달았다. 조금 더 일찍 인생이 유한함을 깨달았다면 조금 더 많이 사랑하는 사람들과 시간을 함께 보내고, 조금 더 많이 사랑한다고 보고 싶다고 표현했을 텐데, 나는 아빠를 보내고 나서야 삶에서 가장 중요한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졌다. 인간은 참 어리석다. 소중한 무언가를 크게 잃고 나서야 비로소 작은 깨달음을 얻는다. 값비싼 대가를 치르고 나서야 스스로에게 아니 아빠가 던져 준 인생의 첫 질문.


'딸아, 삶은 유한하단다. 어떤 삶을 살고 싶니?'

삶... 짧지만 묵중한 무게의, 그 자체로 참으로 막연한 단어 앞에 그렇게 홀로 섰다.


사실 나는 질문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 질문할 줄 안다는 것은 앞만 보고 가다가도 잠시 쉴 줄 알고, 나를 둘러싼 환경으로부터 거리를 두고 비판적으로 볼 줄 아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정반대의 삶을 살았다. 잠시 쉬면 큰일이 일어나진 않을까 불안해하며 시간에 쫓겨 살았고, 선생님과 부모님의 말씀이라면 거역하는 것 없이, 정해진 트랙 위에서 조금의 어긋남도 없이 사회와 어른들이 그려 준 모범 답안대로 살아왔다.


'좋은 대학에 가면 성공하는 인생을 살 수 있어'.

10대의 나는 성공이 무얼 의미하는지는 몰랐지만 다들 열심히 공부하다 보면 언젠가는 그에 맞는 보상을 받을 거라 하니 보일 듯 말 듯한 희미한 희망을 좇았다. 그와  동시에 소위 비행 청소년 시절을 겪은 한 살 어린 동생이 '왜 시키는 대로만 해야 해?'라고 부모님께 대들고 부모님으로부터 꾸지람을 당하는 걸 지켜보며, 나도 모르게 도덕적 우월감을 키웠던 것 같다. 그래서 나는 좋은 대학에 가기 위해 밤낮없이 열심히 공부했고 부모님 말씀을 잘 들었으며, 교복을 줄이거나 지각을 하거나 땡땡이를 치는 등 사소한 일탈도 하지 않았다. 그런 나를 보고 어른들은 참 착하고 모범생이라고 칭찬했다. 말을 잘 듣는 동안 받은 칭찬은 오히려 질문하는 힘을 죽이는 독이 되어 내 안에서 스멀스멀 자라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시키는 대로만 살아온 탓일까? 20대 어른이 되어서도 나는 스스로에게 질문할 타이밍을 찾지도, 질문을 어떻게 건네는지도 몰랐다. 질문할 줄 모르니 대답도 모르는 수밖에. 그렇게 나는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도 모른 채, 방향성 없이 무조건 무언가를 열심히 하는 기계가 되어 있었다. 불안을 동력 삼아. 그리고 그렇게 무방비 상태에서 맞이한 아빠의 죽음. 가장 가까운 사람의 갑작스러운 죽음은 시간이 얼마나 유한한지 깨우쳐주는 세상에서 가장 비싼 교훈이다. 삶에서 브레이크를 건 시간이자, 내가 살아온 시간과 미래의 살아가고자 하는 시간을 내다보게끔 만든 내 나이 스물둘의 상실.


'딸아, 삶은 유한하단다. 어떤 삶을 살고 싶니?'

아빠가 던진 질문에 나는 쉽게 대답할 수 없었다. 아빠의 부재를 받아들이고 죽음을 이해하는 데는 꽤나 오랜 시간이 걸렸는데, 막연한 질문에 대답할 여유는 감정적 사치였다. 아빠의 유품 정리를 마치고 나서야 비로소 아빠의 죽음을 받아들이고 질문을 들여다볼 수 있었다. 죽음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아빠를 아빠가 아닌 한 사람으로서 이해하고 가족을 위한 당신의 희생에 감사하며 때로는 미웠던 아빠를 용서하며 떠나보내는 과정이자, 아빠가 당신의 죽음을 통해 선물하고자 한 의미 있는 삶을 위해 한발 내딛는 용기였다.


한 번도 물어보지 않았기 때문일까. 여전히 해답의 출구가 보이지 않는 길 위에서 한참을 머물렀다. 포기와 내일이 없을 수도 있다는 절박함 사이를 헤매다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이라는 책을 만났다. 루게릭병에 걸려 시한부 선고를 받은 모리 교수가 15년 전의 제자이자 바쁜 일상에 쫓기며 살아가던 미치 앨봄과 매주 화요일 인생의 중요한 것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이야기. 가족, 사랑, 죽음, 자기 연민 등 치열한 경쟁 사회에서 우리가 잊고 살아온 것들. 나에게 너무 가깝거나 너무 멀게만 느껴져서 잊고 살아온 것들이 삶에서 얼마나 중요한지 죽음을 앞둔 노교수가 전하는 한 마디 한 마디는 아빠가 내게 말하고자 했던 한 마디 한 마디 같았다.


성공, 커리어, 돈이라는 물질적인 가치들에 밀려나 잊고 있던 것들. 삶의 무한한 가능성과 희망의 환희에 젖어 망각했던 삶의 유한함. 당연한 것들이 당연하지 않을 수 있다는 깨달음. 죽음을 인지하자 처음으로 나는 나와 스스로 대화하기 시작했다.


자기 계발 분야의 대가 팀 페리스는 그의 책 '지금 하지 않으면 언제 하겠는가'에서 시간 관리의 전문가 팀 어번을 인터뷰 했다. 팀 어번은 인생의 우선 순위를 정하기 위해서는 중요성을 따져야 하는데, 어떤 일의 중요성을 따지기 위해서는 '묘비명 테스트'가 도움이 된다고 했다. 내 묘비에 지금 하는 일이 새겨지면 기쁠지 안 기쁠지 생각해 보는 것. 나 역시 아빠가 돌아가시고 중요한 결정을 내릴 때 죽을 때를 생각하곤 했는데 죽음을 생각한다는 것은 그다지 유쾌한 일은 아니지만, 주변의 소음을 차단하고 온전히 내게 중요한 일이 무엇인지 바라볼 수 있는 기회였다. 그리고 내 삶의 의미를 찾고 의미 있는 삶을 만들어 나가는 방법을 배우는 것. 굉장히 막연하지만 내 삶의 우선순위였다.


2012년 홀로 떠난 홍콩 여행은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시작이었다.

'지금 이렇게 사는 게 맞는 걸까?' 막연한 회의로 시작한 질문은 '어떤 삶을 어떤 모습으로 살아야 할까' 누군가가 정답을 제시해 주길 기다리던 수동적인 자세에서 조금씩 나아가 나의 욕구에 귀 기울이기 시작했다. '나는 어떤 모습으로 죽음을 맞이하고 싶나?'


그렇게 는 질문하는 법을 배우기 시작했다.

매거진의 이전글 엄마, 원래 우리는 유별난 존재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